교회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한다면 사람들은 각기 나름대로 교회에 대해서 설명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설명도 여러 가지 방향으로 되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에서 교회를 설명할 때도 획일적으로 하나만을 가지고 교회라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마다 각기 다른 시각에서 교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교회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특성들이 사람들이 보는 시각에서 각기 다르게 표현되어질 뿐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말할 때 결코 빠져서는 안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교회에는 사람의 것은 개입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만 보여지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배당이 있다고 교회가 아니고, 모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교회가 아니며, 목사가 있고 교인이 있어 가지고 매주일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신자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그 교회는 사람이 흉내낼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는 일들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보여주지만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라고 이름 붙이고 교회 흉내만을 내는 교회 아닌 교회는 모두 사람의 일들만이 보여질 뿐입니다.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모이고, 세상의 복을 위해서 모이고, 내가 변화되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 교회 아닌 교회가 하고 있는 사람의 일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을 찾을 때 과연 어떤 하나님을 찾겠습니까? 나를 복주고, 잘되게 도와주는 그런 하나님을 찾게되는 것입니다.
교회란 그리스도를 알고 십자가를 알게 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사람이 십자가를 알게 되었다면 그는 거듭난 사람입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하늘로부터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교회가 거듭난 사람들의 모임이고, 거듭난다는 것이 땅의 일이 아니고 하늘의 일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일이라면 그런 사람들이 모였을 때 보여질 것은 오직 그리스도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구분함에 있어서 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현대인의 사고방식을 개입시키지 않고 정직하게 성경을 공부하며 성경이 말하는 바만 따라가면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대로 모든 것을 현대인의 사고방식에 맞추어서 생각해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 사람의 윤리와 도덕으로 그쳐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교회가 현 사회에서 추구하고 있는 윤리와 도덕적인 모습들을 많이 나타내면 그것이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줄로 착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교회 아닌 교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들의 교회 사업이 목적이 되어 버립니다. 물론 내세우는 말은 하나님의 일이고 교회가 할 일이라고 말하지만 결코 하나님의 일은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2:2절에 보면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아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교회를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안다면 분명히 무엇인가 표가 있어야 하고, 그 표는 사회에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집약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윤리와 도덕적인 모습을 교회의 표로 삼아버리는 것입니다. 소위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것을 종교 단체로서 윤리와 도덕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는 사명으로 주어진 명령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 그리스도적인 생각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천국가는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교회인 것과 교회 아닌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한 교회의 원리와 얼마나 일치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시는 것은 세상이 예수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궁금하시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에 대한 세상의 생각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실리도 없지만 모르신다고 해도 거기에 관심을 두실 예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예수님을 아는 자들과 모르는 자들의 생각의 차이점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자들의 예수님에 대한 시각과,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의 시각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 혹은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자기들의 시각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내린 평가입니다. 이들에게는 예수님이 단지 어떤 위대한 일을 행하고 있는 인물로만 보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위대한 일을 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이익이 주어진다는 그런 시각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잘 압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남에게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가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내 주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주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 나의 모든 인생을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나의 인생을 주관하시고 나는 예수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겠다는 것이 예수님을 내 주로 영접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일을 평가하는 입장에 있으면 예수님을 내 주라고 말은 할지언정 예수님께 내 인생을 맡기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신자들이 예수님을 평가하는 입장에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도 평가하는 입장에서 말합니다. 때문에 십자가를 말할 때 그 십자가에서 나도 주님과 함께 달려야 한다는 것은 삭제해 버리고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나에게 돌아온 혜택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이 죽으셔서 나에게 구원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나에게 어떤 혜택으로 돌아오는가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자신이 아주 착실한 신자이고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고 있던 베드로의 고백은 다릅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합니다. 즉 '당신은 나의 주인입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평가하는 시각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철저하게 예수님께 종속된 자라는 입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 즉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그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알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8절에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여기 보면 17절에서는 베드로를 바요나 시몬아라고 부르시고 18절에서는 베드로라고 부르십니다.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베드로 같은 신앙고백이 있는 자들이 모여서 교회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 인해서 새롭게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새롭게 변화된 자들이 모여서 교회가 된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예수님을 평가하는 입장에 서서 예수님의 모습은 이래야 한다, 교회는 이래야 한다고 하면서 인간편에서 교회가 할 일을 정해 버린다면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교회는 아니다고 봐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내 주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내 주이기 때문에 주님의 교회에 속한 모든 자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은 자입니다. 세상이 힘이 아니요, 자기의 행위가 의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힘이고, 주님의 십자가만이 나의 의로서 나는 오직 은혜로 그 의에 속한 자가 되었다는 것을 깊이 아는 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예수님을 연구하고 공부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고백이 아닙니다. 하나님 편에서 알게 하신 고백입니다. 하늘로부터 새롭게 태어난 존재, 거듭난 존재입니다. 이런 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을 알게 된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하십니다. 결국 복은 주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시몬은 베드로로 불립니다. 시몬은 육신으로 난 사람 그 자체이지만 베드로는 주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된 하늘로부터 새롭게 태어난 존재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권위가 있습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것입니다. 즉 땅에서 교회가 하는 일이 하늘의 일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교회는 지상에서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일과 동일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지상에 보여주는 역할을 할뿐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계획하고, 움직여야 하는 것은 없습니다. 교회는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만 보여주면 되는 것입니다. 은혜로 주어진 구원, 하늘의 소망, 영생,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죄가운데 있고 악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하나님만 힘으로 삼고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교회의 모습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기 때문에 남을 비판하고 평가하는 위치에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용서하는 것, 이것이 교회가 나타내 보여야 할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 아닌 모습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21절부터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앞으로의 일을 알리시기 위한 것보다는 앞서 말씀하신 교회가 나타내야 할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교회가 나가야 할 길은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 같이 십자가를 져야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십자가를 진다고 말하고 고생과 고통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란 고생과 고통의 대명사로 쓰이는 말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진 하늘의 생명을 알게 된 것이 너무 기뻐서 세상의 것에 대한 소망이 자연히 소멸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본질은 기쁨이지 고생이 아닙니다. 만약 세상의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인해서 뭔가 어려움이 있다해도 그것을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기쁨이 그 어려움을 어려움으로 여기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회가 단지 사람들이 모여서 간판을 내걸고 예배를 드리고 사회적으로 활동하고 구제하고 선교한다고 해서 발생되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말할 때 베드로가 그것을 만류합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베드로를 향해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23절)라고 책망하십니다. 앞에서는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으로 칭찬을 들었던 베드로가 뒤에는 사단이라고 하는 책망을 들은 것입니다. 그러면 앞에서 했던 신앙고백은 거짓말이냐는 의문점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일의 중심을 이해하면 쉽게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성경은 당시 등장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아닙니다. 즉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을 본받아라거나, 본받지 말라는 의도로 기록된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은 하나님께 쓰여지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나타내시기 위해서 쓰여지는 도구이기 때문에 우리는 한 인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리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면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서 교회가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고 나서 교회 아닌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를 베드로에게 사단이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심으로 보이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 아닌 교회, 즉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단에 속한 교회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십자가가 없는 예수님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천국을 말하는 것이 교회 아닌 모습입니다. 세상을 포기하는 것 없는 영생을 말하는 것이 교회 아닌 것입니다. 세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세상에 더욱 소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 교회 아닌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교회와 교회 아닌 것이 어떻게 다른가를 깊이 이해하고 우리 교회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