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마 18:15-20) - 30강

교회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할 때 사람마다 여러 가지의 대답이 있을 수 있지만 과연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교회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교회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구원의 방주라고 하기도 하고, 교회가 신자를 천국으로 가게 하는 중보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간다고 말은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표를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에 다녀야 천국간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모든 정성을 쏟는 것도 아마도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일이면 교회나오는 이유도 교회나오는 것이 신앙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표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신앙의 표시로서 교회나오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에 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하는 것이고, 복을 얻는 길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교회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가 현재 자신의 신앙생활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교회에 나와도 기쁨이 안된다는 말을 많이 할 것입니다. 또 사실 오늘도 교회에 나왔지만 기쁨과 즐거움으로 나온 분이 얼마나 될지 참으로 의문스럽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자신에게 기쁨이 없고 즐거움이 없는 그 모든 원인은 교회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분위기나, 설교, 만나지는 사람들, 교회가 하는 일들 이런 것들이 내 맘에 안들기 때문에 나에게 기쁨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교회 분위기가 좋고, 설교가 내 맘에 꼭 들고, 만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친절하게 해주고 할 때 기쁨은 저절로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들의 크나큰 착각입니다. 교회 나오는 기쁨이 없든 즐거움이 없든 그 모든 원인은 본인에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교회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기쁨은 교회가 제공해주지 않습니다. 신앙의 기쁨을 교회가 제공해주려고 할 때 교회는 자연히 앞서 말한 대로 예배 분위기나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보려고 애를 쓰게 될 것이고, 목사는 신자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는 말을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 신앙인들은 교회를 부담없이 다니고자 합니다. 그 어떤 짐도 지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교회를 원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신앙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서만 교회에 발을 들여놓겠다는 심사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생각들이 있다면 하루속히 그 생각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신자들이 교회에 대해서 오해할 때 같이 오해되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할 일이 뭐냐는 것입니다. 교회가 할 일이 무엇인가? 여러분들의 머리에는 일단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 떠오를 것이고 그 다음에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선교하는 것, 다음은 구제하는 일, 즉 복음전파와 사회사업이 교회가 할 일의 전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신자들은 교회가 이런 일을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소속된 교회가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 열심히 복음 전파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자신의 의로 여기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내교회가 저런 좋은 일을 한다는 것 때문에 마음뿌듯해 하고 자신도 헌금을 해서 그 일을 도왔다는 생각에 교회 일을 자기 소유화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가 무엇인가 열심히 하는 것이 곧 자기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교회가 무엇인가 할 일을 자꾸 제공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일에 참여함으로 신앙의 만족을 누려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아무런 할 일이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무얼 하라고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불만이 있으신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불만은 교회가 열심이 없다, 뜨겁지가 않고 냉랭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뜨거움, 열심은 교회 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신앙의 모습은 교회의 일로도 보여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적인 열매로서 보여지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뭔가를 알고서 스스로 움직이는 신자, 교회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준 분위기에 대한 기쁨이 아닐 진심으로 하나님을 아는 기쁨으로 누군가가 강요한 것도 아니라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움직일 때 그것이 교회에서 여러 가지로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뜨거움이고 열심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이 이런 신앙생활을 하기를 원합니다.

교회라고 하는 것은 단지 사람들의 모임에 불과합니다. 다만 왜 모였느냐? 어떻게 해서 모여지게 되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왜 모였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해서 모여지게 되었습니까? 오늘 여러분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해서 모여지게 되었습니까? 오다가다 만나서 우연히 모이게 된 것입니까? 그냥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다고 생각합니까? 사람들은 교회는 내가 가고 싶으면 마음대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교회를 무시하는 생각입니다. 교회란 내 마음대로 가고 싶으면 간다는 생각은 나를 교회로 가게 한 보이지 않는 손길의 힘을 무시해 버리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생각 때문에 교회가 할 일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도 오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교회로 모이게 된 것은 절대로 여러분 스스로의 의지가 아닙니다. 뭔가 여러분을 간섭한 손길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찾고 교회를 찾을만한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인류역사를 보면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원수로 등장한 일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 오히려 사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여러분들 스스로를 생각해 봐도 결론은 뻔합니다. 여러분들에게 과연 하나님을 위해서 한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일주일의 삶은 누구를 위한 삶이었습니까? 하나님을 위한 삶이었습니까? 여러분 자신을 위한 삶이었습니까? 교회를 나온 것도 겨우 신앙을 지탱하는 명목으로 나온 것은 아닙니까?

인간은 죄악 가운데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자기만을 바라보고 자기를 위해서 세상을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인간이 누군가를 위해서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뭔가 나은 사람을 골라서 구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혹시 자신이 죄인이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좀 낫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그래 난 죄인이야, 그래도 도둑질하고, 강도질하고, 살인하고, 사기쳐서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보다야 낫지' 이런 생각은 없습니까? 남이 나에게 '너는 교도소에 있는 죄수하고 똑같은 인간이야'라고 했을 때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들보다야 낫다고 할 수있겠죠. 그러나 교도소에 갈만한 행동을 안했다는 것이 구원을 받은 조건은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과 똑같은 죄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이나 나나 같은 것은 이기주의라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은 같습니다. 단지 이기주의가 커져서 교도소에 갔을 뿐이지 우리들에게도 이기심은 동일하게 존재하고 그 이기심이 알게 모르게 다른 이들에게 해로움으로 존재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선택이라는 구원의 방식을 채택하십니다. 즉 인간의 모습은 전혀 보지 않으시고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선택을 보여주는 것이 구약성경입니다. 아벨로 시작해서 이어지는 선택이 지금 이시간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이는 것도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이 자리로 밀어 넣으신 것이지 여러분의 신앙으로 스스로 찾아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교회라고 합니다. 인간이 스스로 모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의 힘에 의해서 모여진 모임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모여진 교회를 누가 무시합니까?

이렇게 모여진 교회라면 그 교회가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나를 교회로 모이게 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과 부르심과 나를 붙드시는 그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할 일입니다. 보여주고 선포하는 것이 교회의 일입니다. 인간의 의로움과 열심과 사회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것이 교회의 할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들은 하나님을 보여준다고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다고 할 때 남을 돕고 구제하는 쪽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은 참으로 쉽습니다. 왜냐하면 남들이 좋아하고 환영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도와주는 것을 싫다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왜나하면 자기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도와주는데 하나님을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여준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보여준다는 것은 자기 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어리석고 멸망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것을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때문에 어렵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삶이란 인간의 본성을 거스리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삶이라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생업도 여러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여러분의 모든 인생까지도 여러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없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어떤 모습으로도,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너무 너무 어려운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때문에 교회가 할 일을 쉽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주일 오전 한시간 나와서 신앙을 지킬 수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으로 신앙생활한다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그렇게 편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희생도 없이 아무런 부담도 없이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여러분, 눈을 들어서 주님이 계신 자리를 바라보십시오. 주님이 계시는 자리는 십자가이지 호화스럽고 편안한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 십자가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들어가기를 싫어하면서 어떻게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자의 운명은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우리를 그곳으로 밀어 넣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 천당가는 길은 없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인간은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 누구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부르셔서 천국가는 자가 되게 하시고 교회로 모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럼 그 교회가 할 일은 하나님의 그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랑을 나타내는 것은 결국 용서받지 못할 자가 용서함 받은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용서받은 자로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서론이 아주 길었지만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교회가 할 일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형제가 죄를 범하면 권고하고 듣지 않으면 나중에는 교회에까지 말했다가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같이 여기라고 합니다. 이것은 교회는 죄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는 것을 확고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죄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만약 회개하지 않는 자는 교회에서 추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죄가 교회에 들어올 수 없다면 죄 없는 자가 누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누구입니까? 결코 죄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 교회라면 그 교회에 누가 들어 갈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로 모일 수가 있다면 그 죄의 문제를 누군가가 처리한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용서함을 입고 교회로 들어왔기 때문에 교회로 모인 우리가 할 일은 용서받은 자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죄는 하나님의 용서함을 모르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용서함을 아는 자가 소자이고, 용서함으로서 천국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누가 크냐'는 경쟁과 다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용서받은 것을 아는 자는 남을 용서하는 자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21-35절의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신자들이 생각하는 교회의 할 일은 뭔가 일을 해야 하고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관심 두어야 할 일은 용서받은 자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나는 교회 나왔으니까 천국갈 것이다'라든가 '나는 이만큼 일했으니까 신앙이 좋은 신자다'라고 하면서 자신이 교회에 뭔가 한 것을 내세우는 사람은 교회에 합당치 않은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 용서함 받은 것을 아십니까? 용서함 받아서 교회 왔다는 것은 내 잘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기의 것을 전혀 주장하지도 않고 내세우지도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분은 천국에 사는 분입니다. 언제나 예수님을 찾고자 교회에 나오십시오.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무엇을 해도 나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여지고, 용서가 보여지고, 사랑이 보여지는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에게 무엇에 관심을 두고 사느냐를 묻습니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자인데 왜 백 데나리온을 포기하지 못하고 살아갑니까? 그것이 죄입니다. 아무쪼록 용서를 바로 아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서 보여지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교회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