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나라(마 20:1-16) - 33강

지난 시간에 영생은 소유가 아니라 무소유된 상태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말씀드렸습니다. 무소유된 상태라고 말할 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소유의 상태란 세상의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소유를 재산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이해하게 되면 결국 천국은 돈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옹호해주고 그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되어 버리고,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천대받고 살았던 한을 풀어주는 곳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무소유라는 것은 나에게 세상의 것이 얼마가 주어져 있든 그 소유물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자신에게 있는 것을 사랑하거나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버린 자가 영생을 상속받는다고 말씀 하신 것은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이냐를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버린다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님은 신자가 영생을 상속받는데 있어서 세상의 것은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가 세상의 것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까? 영생의 가치를 아는 자입니다. 천국의 가치를 아는 자만이 세상의 것을 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천국을 소망한다고 말하며, 영생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임을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의지하고 삽니까? 내가 천국 백성임을 알고 세상의 것이 있든 없든 주님만 의지하는 삶을 삽니까? 물론 하나님 나라가 영광의 모습으로 완성되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때가 되면 신자 아닌 사람들까지도 진짜 영광되고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가서 천국에 들어갈 자와 들어가지 못할 자로 구분하시는 것이 아니고 이미 이 땅에서 그 모습이 구분된 자로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살면서 이미 천국에 가 있는 자로 살아가는 사람을 신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신자들은 이미 천국을 알고 살기 때문에 세상 재물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세상에 가치와 소망을 두지 않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자가 세상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는 자이며 이 모습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의 구별된 모습입니다.

신자와 불신자는 교회 출석을 가지고 구분하지 않습니다. 교회 출석이란 불신자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즉, 그 마음에 천국이 없는 자라 할지라도 교회는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를 단지 자기의 소망과 욕심을 이뤄주는 곳으로만 이해합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 위해서 교회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채우기 위해서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전혀 다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로서 천국 백성된 것에 감사하면서 교회로 모입니다. 은혜를 서로 서로 나누기 위해서 모이고, 은혜를 아는 자로서 바르게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하며 십자가를 바라보고 회개하기 위해서 모이고, 자신을 천국의 소망으로 더욱 더 채우기 위해서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현재 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며, 무소유로서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신자의 모습은 우리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된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때문에 신자들은 항상 이런 모습을 사모하면서 주님께 기도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천국은 어떤 법칙과 원리로 살아가는 나라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라고 말합니다. 즉 본문에 나오는 집주인의 마음이 곧 천국이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포도원 주인과 품군의 품삯의 관계를 잘 살펴보면 천국이 어떤 곳인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포도원 주인이 품군을 얻기 위해서 이른 아침에 나갑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 삼 시, 제 육 시, 제 구 시, 제 십일 시에까지 계속 나가게 됩니다. 유대인의 시간 계산법은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를 12등분해서 해뜨고 몇 시간 경과, 이런 식으로 계산합니다. 따라서 해뜨는 시간을 아침 6시, 해지는 시간을 저녁 6시로 볼 때 제 삼시는 해뜬 후 세시간을 말하는 것으로서 아침 9시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포도원 주인은 품군을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서 아침 9시, 12시, 오후 3시, 5시에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품군으로 부름 받은 시간은 각각 다르지만 일을 마치는 시간은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품군들이 불려 나온 시간에 따라서 일을 한 시간도 각각 다르기 마련입니다. 만약 세상적인 방식으로 계산한다면 일을 한 시간에 따라서 품삯이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포도원 주인은 일한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모두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의 품삯을 줍니다. 한 데나리온이란 당시 어른들의 하루 일당을 말할 때 쓰는 단위입니다. 현재로 계산하면 약 3-4만원 정도의 액수입니다. 그런데 모든 품군에게 동일하게 품삯을 줬다는 것이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일찍 온 품군들이 포도원 주인에게 원망을 한 것입니다. 즉 늦게 와서 한 시간만 일한 사람들과 온 종일 일한 자기들이 똑같은 품삯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포도원 주인은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합니다. 나중에 온 사람에게 똑같이 주는 것은 주인의 마음이고 어쨌든 너는 약속한 대로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았으니까 불평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일찍 온 자로서 아무리 약속한 대로 품삯을 받았으니까 할말이 없다고는 하지만 늦게 와서 1시간만 일한 사람도 똑같이 받는 것을 볼 때 불평이 나지 않겠습니까?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포도원 주인은 그 불평이 드러나도록 합니다. 만약 주인이 품삯을 계산할 때 일찍 온 사람부터 계산하여 돌려보낸 후 늦게 온 자들에게 품삯을 줬다면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일부러 늦게 온 자들부터 계산을 함으로서 일찍 온 자들에게 뭔가 기대를 갖게 만든 것입니다. 일찍 온 자들이 늦게 온 자들이 받는 품삯을 보고 자기들은 더 받을 것으로 기대하였다는 것은 자기의 공로를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1시간 일한 저사람보다는 하루 온종일 일한 자기가 더 공로가 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 공로가 더 크니까 더 받아야 한다는 것은 세상에서는 당연한 생각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천국은 세상과는 반대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이와 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교회에 먼저 출석한 자가 나중되고 늦게 출석한 자가 나중 된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본문을 통해서 천국에서 먼저된 자가 누구인가를 말씀하고 있을 뿐입니다. 교회를 일찍 출석하든 늦게 출석하든 하나님 앞에서 먼저 된 자는 자기의 공로를 생각하지 않고 은혜를 생각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은혜를 아는 자의 편이지 인간의 공로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신자가 하나님이나 천국에 대해서 오해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많이 한 자를 칭찬하시고 천국에서도 일을 많이 한 자가 더 많은 상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많이 한 자가 많이 받는다는 것은 세상적인 방식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세상과는 반대입니다. 세상적인 법칙과 원리가 결코 통용되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늦게 온 품군은 1시간 일하고서도 하루 품삯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일한 것에 대해서 그 대가가 엄청납니다. 아마도 이 품군은 하루 품삯을 받으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했을 것입니다. 놀고 있던 자기를 불러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기 때문에 얼마를 주든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들고 갔을 것입니다. 품삯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감사를 알고 은혜를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놀고 있던 자기를 불러준 것에 대한 감사와 은혜를 가지고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미 은혜를 받은 자로서 일을 했기 때문에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다른 칭찬이나 대가를 주장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아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미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만 해도 은혜가 넘치고 감사로 충만한데, 또 다른 대가나 칭찬을 바라거나 욕심 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는 은혜로 채워져 있는 나라입니다. 은혜와 자비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인간의 공로는 전혀 개입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뭔가 잘해서 들어오거나 상을 받는 나라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천국은 은혜로 들어가지만 상은 인간의 공로에 따라서 차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내 공로가 아니라 은혜로 천국에 들어왔다는 것을 아는 자가 자기의 공로를 주장하겠습니까? 만약 은혜로 들어왔다고 하면서 자기의 공로를 주장하고 상을 기대한다면 그것이 바로 본문에 먼저 온 품군과 같은 모습이다. 이런 자는 분명히 나중 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온 자와 나중 온 자를 들어서 말씀하시고 싶은 것은 세상을 살아갈 때 이미 은혜와 자비를 받은 자로서 살아라는 것입니다. 이미 은혜와 자비로서 내 마음이 채워져 있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것을 버린 자로서 살아가는 모습이고, 이것을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과연 여러분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서 채워져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분은 세상의 다른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이미 채워져 있기 때문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채워져 있지 않은 자는 항상 부족을 느끼게 되고 결국 자기가 한 일에 대한 대가를 기대하게 됩니다. 날마다 만족이 아니라 불평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사람은 세상의 것을 버릴 수 없습니다. 내가 버리겠다고 해서 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버리려고 할수록 더 애착이 가는 것이 세상 것입니다. 버린다는 것은 이미 받은 자에게만 가능합니다. 받은 것을 모르는 자가 버리려고 한다고 버려지겠습니까? 여러분이 받은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온 자나 나중 온 자나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포도원 주인에게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불러주지 않았으면 한 데나리온은 만져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놀고 있던 자가 부름 받은 그 은혜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한 데나리온을 받게 된 것은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부름받았기 때문에 한 데나리온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각각 다른 시간에 품군을 부른 것입니다. 1시간 일한 사람도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인간의 노동과는 전혀 상관없이 부름 받은 은혜 때문에 받는다는 것을 교훈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한 일은 천국에 가는 것이나 천국에서 상받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그 어떤 선한 일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칭찬 받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먼저 된 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있어도 됩니까? 예,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있어도 천국가는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또 사실 인간이 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나 그 일을 우리 인간을 통해서 하실 뿐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담아서 그 은혜가 드러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일은 교회 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살아가는 삶 전체가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 때문에 그 은혜가 나도 모르게 나를 통해서 보여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육신의 생존을 위해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아는 자로서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주어진 인생입니다. 생존의 문제는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모습으로든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생존의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할 일입니다.

신자는 땅의 것 때문에 사는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받은 것이 있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것은 필요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삶이 되기 위해서 주님이 주신 힘으로만 만족하면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품삯에 관심을 두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하면서 주님만을 보여주는 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천국을 맛보며 살아가는 삶이며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이런 인생이 되기를 바라며, 이것을 위해서 주님께 기도하는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