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마 22:1-14) - 39강

제가 여러 사람들에게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절실히 느낀 것은 '인간이 이래서 죄인이구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르칠 때 그것을 거부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였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있던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해왔던 모든 신앙의 전통이나 관습들, 지식들이 한순간에 별로 잘 알지도 못하고, 유명하지도 않고 신학박사도 아닌 한 목사의 성경관에 의해서 와해되어 버리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모습에서 끝까지 자기 중심의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를 지키려고 하는 죄인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인간이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되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일임을 절실히 느꼈던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배우는 사람들이 그 성경을 거부할 때 저에게서는 울분이 일어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자기 중심적인 모습에 불과했습니다. 목사는 자기가 갈고 닦은 성경 지식이 아니라 성령께서 깨닫게 한 것만큼만 전하고 가르치면 그것으로 할 일은 다하는 데도 제가 가르치는 성경을 거부하는 것을 곧 나 자신에 대한 거부와 도전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울분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역시 자기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죄인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면 나는 이미 나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즉 나는 나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할 말을 내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전달할 뿐이라면 그 말속에 이미 나는 없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말한 대로 단지 소리일 뿐입니다. 신앙은 하나님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이란 나를 버리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던 것, 여러분이 경험한 신앙의 체험들, 지금까지 지켜온 종교적인 전통들을 가지고 오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그 옛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버린 것 같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버리고 내 마음에 드는 예수 아닌 예수를 찾아가게 될 뿐입니다.

지난 시간에 예수님은 우리의 머릿돌이 되심을 말씀드렸습니다. 머릿돌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모습이었습니다. 전통에 의해서, 사람들의 종교적인 지식에 의해서, 사람들의 고집에 의해서 버림받은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버림받으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심판 받을 세상의 죄가 무엇인가가 분명히 보여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죄는 예수님을 거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님이 죄인인 인간들에 의해서 버림당하게 하심으로 세상의 죄를 보이셨고, 그 죄속에서 구원하실 자기 백성은 버림받은 예수님을 좇는 자임을 나타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버림받으신 예수님을 좇는 자는 자기 또한 주안에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주'라고 부른다고 해서 아무나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주'가 과연 어떤 '주'인가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성경을 통해서 주님을 버린 세상의 모습을 발견해야 하며 그 죄의 모습이 바로 내 안에 있음을 찾고 회개하는 것이 곧 주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회개란 내 삶을 고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회개한 자는 주님의 길을 가게 될 수밖에 없고, 주님의 길을 가기 때문에 자연히 세상이 주님께 반응했던 그 반응이 나에게도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아들을 중심으로 일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중심으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자기를 버리고 주님을 중심으로 살고자 하는 자만이 주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불려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불려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의 열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달려듭니다. 하나님의 아들 되신 주님 안에서만 나도 주님과 함께 아들로 여김 받는다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자기의 열심있는 종교생활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여김 받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심판의 대상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중심으로 일하신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해서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 유대인들은 모두 자기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는다고 하면서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려고 하지 않고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은 바리새인 중심으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신 예수님 중심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교단이 많고, 한국에도 많은 교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단이 하나 발생할 때마다 제각기 내걸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단들은 지금도 하나님은 자기 교단을 사랑하신다고 공공연하게 말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교단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움직이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은석교회가 속해있는 재건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재건교단을 가장 사랑하신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일제시대때 신사참배를 안했다는 과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중심으로 일하시지 어떤 교단의 전통과 과거를 중심으로 일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어떤 전통 과거라고 할지라도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두 저주해 버리시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철저하게 주님을 중심으로 일하십니다. 만약 그 어떤 교단이라고 할지라도 전통과 과거를 앞세우며 하나님을 찾고자 할 때 그들은 오직 주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말씀을 무시한 것이고 또 주님의 피를 무시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그럼 교단을 다 없애 버리고 개 교회로 하자는 말이냐'라고 반박을 합니다. 교단이 있든 없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을 중심으로 살고자 하느냐입니다. 재건교회이든 고신이든 합동이든 상관없이 교단에 전혀 의미를 두지 않고 교단을 앞세우지 않고 주님만을 중심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단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단을 위해서 존재하는 교회는 단지 인간의 조직체일 뿐이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지 교단의 몸이 아닙니다. 신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 것이지 교단에 속한 존재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결국 충성의 대상도 주님이지 교단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할 때 또 반박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교단에 남아 있느냐, 교단을 탈퇴하면 될 것이 아니냐'라고 합니다. 참으로 답답합니다. 교단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존재한다면 교단에 있든 없든 그것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기존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에 반발해서 독립교회, 또는 무교회라는 것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알지 못한 것은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즉 교단을 탈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렇게 하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지 어떤 인간 조직체에 반발해서 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 '교단에 반발하니까 너는 필요 없다 라고 해서 쫓아낸다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목사 입장에서 교단을 예로 들어서 길게 이야기하였지만 신자입장에서는 가장 가까이 자신이 속한 교회를 예로 들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하지 말고 주님을 중심으로 사시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중심이 곧 주님 중심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주님 중심에서 벗어나게 되면 기독교라는 종교는 결국 사람들의 오락이요, 취미 생활로 전락될 수 있으며 교회는 인간의 조직체요 사업체로 뒤바껴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교회를 지칭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서, 또 이 글을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도 역시 죄인으로 이 땅에 왔기 때문에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참된 예수님을 멀리하는 이상, 우리는 잘못된 기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헤매이다가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절대로 예수님을 멀리하지 않아'라고 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앙이란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한 대로 우리 안에서 죄의 본성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참된 예수님을 멀리하고 가짜 예수님을 좇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언제나 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께서는 날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케 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2절을 보면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아까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일하신다는 것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천국은 잔치를 베푼 것인데 그 잔치는 임금을 위한 잔치가 아니라 아들을 위한 잔치였습니다. 아들의 혼인 잔치입니다. 천국이 예수님 중심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섬겨 가지고는 천국 못간다는 이야기와 동일합니다. 이게 또 무슨 괴변이냐? 하실지도 모릅니다. 흔히 사람들은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잘 섬기면 천국 갈 것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예수님을 믿는 것인 줄로 여겼던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섬겨서 천국을 간다면 바리새인들은 왜 못가는 것입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입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잘 섬긴 것과는 상관없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였다면 그 누구도 천국가지 못한다는 결론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길을 함께 가는 것을 '섬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 중심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학적인 어려운 얘기이기 때문에 깊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천국이 아들 중심의 나라라는 것은 오늘 비유에서 청함을 받았으나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참석지 않으며 오히려 임금이 보낸 종들을 죽인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랐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고 말합니다. 아들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멸망의 원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아들 중심으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는 단 한 번의 잔치로서 세상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그 혼인 잔치에 참석한다는 것은 아들을 위하는 임금의 마음을 안다는 것입니다. 즉 임금이 아들을 위하듯, 임금의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혼인 잔치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청 받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참석을 거부했습니다. 주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 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뜻은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하나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다면 먼저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영접하고 주님이 가신 길을 함께 가야 합니다. 나에게 손해라고 피해버리고, 어렵다고 거부하고, 힘들다고 그만둬 버린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임금의 마음이 아들을 향해 있는 이상 우리의 마음도 아들을 향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임금은 종들을 보내어서 길에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임금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사환들에게 말하여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13절)고 합니다. 예복이란 당시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주인이 내어주던 옷을 말합니다. 따라서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주인이 베푼 잔치를 함께 기뻐하는 마음으로 참여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아들에 대해서 무시하는 것이며, 아들을 위한 임금의 마음도 무시해 버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들에게 나오긴 나왔지만 단지 구경하는 마음으로 나온 것입니다.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주님을 중심을 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께 나아와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린 다같이 길에서 떠돌던 사람들이었는데 잔치에 부름을 입은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순종하면서 오직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사는 사람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모인 것을 천국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주님을 중심으로 삽니까? 아니면 아직까지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까? '나는 잘하고 있다'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주님의 길을 보여주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