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받으심(마 4:1-11) - 4강

신자가 세상에서 살면서 신앙 생활을 하기가 힘든 이유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 혼자 세상을 살아간다면 내가 뭘 소유하고 있든 소유하지 않고 있든 그것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것이 적다는 기준을 내릴 상대방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소유를 가지고 적다 많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모두가 내 옆의 사람과 비교해서 내리는 결정입니다. 상대방이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내 것이 적을 때 스스로 나는 적게 소유하고 있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따지고 보면 좋은 것이라는 것은 타인을 이기고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 주는 도구로서 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도 남보다 뛰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편하게 살기 위해서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을 벗어버리기 위한 믿음이 아니라 타인과 경쟁하며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믿음을 요구하고, 욕심을 벗어버리기 위한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더 채우기 위해서 신의 힘을 빌리는 목적으로 믿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예수님은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성령에게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성령께서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사단에게 시험을 받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시험을 받도록 하십니까? 그것은 어떤 것이 하늘의 모습이고 어떤 것이 하늘과 상관이 없는 세상의 모습인가를 구분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우리가 볼 때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사단의 것이 되고, 예수님께서 제시한 것은 우리가 볼 때 아무리 싫은 것이라고 해도 하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너무 쉽게 남발합니다. 자신이 생각할 때에 좋은 것이라면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 되고 좋지 않은 것이라면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삶의 길을 가셨는가를 잊으면 안됩니다. 흔히 신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과 죽으심을 우리를 살리러 온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그렇게 해야했다라고 간단하게 생각해 버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왜 하필이면 그렇게 죽으셔야 했는가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예수님은 꼭 고통과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우리를 구원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결국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어떤 것인가라는 그 실체를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 외에는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를 구원시키지 못하고 생명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주님이 죽으신 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야 할 우리의 인생의 길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더 잘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하나님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길을 가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아니라 미워하는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이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은 세상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님도 좋아하실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반대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이 좋아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미워하시고 싫어하신다는 것을 우리 신자들은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예수님이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사건입니다.

에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은 성령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 이유는 어떤 것이 마귀의 모습이고 어떤 것이 예수님의 모습인가를 분명히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즉 예수님의 시험받으심은 분리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좇을 때 무엇을 소원하고 좇느냐를 통해서 마귀의 편과 예수님의 편으로 구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험을 보면 마귀가 제공하는 것과 예수님이 제공하는 것이 다릅니다. 마귀는 떡과, 이적과, 세상의 영광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지 말씀만을 제공하실 뿐입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세상에 대한 관심은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첫 번째 시험은 돌을 떡으로 만들어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고 합니다. 사단이 이렇게 하는 의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의 떡을 위해서 오신 분이라고 오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지급 신자들은 거의 이런 사단의 시험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의 떡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여기서 떡은 하루 세끼 먹기 위한 떡으로까지 발전합니다. 떡이 없으면 죽을 것 같고 세상에서 살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들이 모두 사탄의 시험인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이 시험에 예수님은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시면서 시험을 물리치십니다. 시험을 물리치시기 위해서는 성경보고 기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단순히 성경 본다고해서 시험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신 8:3절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주신 것은 사람은 떡이 아니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하신 말씀을 예수님께서 그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주신 이유는 만나를 단지 배를 불리는 음식으로 주신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을 안식으로 이끌어 가는 양식으로 주신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을 떡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떡으로 살면 배부를 때는 만족함이 있지만 배고픔을 느낄 때는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말씀으로 사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떡이 없어서 들어가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없어서, 믿음이 없어서 들어가지 못하는 곳입니다.

두 번째 시험은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하나님의 아들이면 뛰어 내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시 91편의 말씀을 인용해서 네가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시험합니다. 사단은 거룩을 눈에 보이는 어떤 건물로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은 예수님의 피와 연관된 것만이 거룩한 것인데 사단은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거룩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들이 교회와 연관되어 있으면 그것을 거룩한 것으로 오해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 안에서 하는 것은 다 거룩한 일이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거룩한 일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거룩은 우리의 행위도 정성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세 번째 시험은 마귀가 예수님에게 세상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합니다. 마귀가 제시한 세상의 영광이란 우리가 평소에 원하고 바라는 것들입니다. 결국 마귀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들어주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영광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 경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라는 말씀은 모든 관심을 하나님께만 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이 내 힘이고 세상의 것이 있어야 산다고 생각할 때 자연히 관심은 세상으로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자유롭게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너무 두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받을 멸시와 수치를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모든 것은 악한 것이고 결국 멸망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신자가 항상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세상의 것이 나에게 없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보다는 다른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포기하기를 두려워 할 때 결국 우리들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세상의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분명히 그것을 '사단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것은 세상을 말씀으로 살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된 존재로 사는 것이고,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만 경배하기 위해서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