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2-25) - 5강

사람들이 생명을 유지시키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상 것을 통해서 자기 힘으로 유지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안에서 주님의 생명과의 관계 속에서 내 생명을 유지시키는 방법이다. 전자의 경우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의 관계 밖에서 단지 자신의 육신의 생명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가면서 땅의 것을 자신의 힘으로 삼고 있는 모습이고 후자의 경우는 육신의 생명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에 관심을 두면서 그리스도안에 거하고자 힘쓰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연히 그리스도가 자신들의 힘으로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란 이름을 놓고 기도하거나 예배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내 생명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있는 생명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께만 영생이 있음을 알고 예수님 밖으로 나가지 않기를 힘쓰는 삶을 말한다. 예수님만 좋아지고, 예수님만 붙들고 싶어하는 것이 곧 믿음이 있는 신자의 마음이다. 그래서 신자는 자연히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교회 다니는 자와 다니지 않는 자의 모습이 다른 것이 아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점이다. 예수님을 아는 자는 세상에는 생명이 없음을 잘 안다. 세상의 힘이 자신을 천국 보낼 수 없음도 잘 안다. 오직 그리스도께 붙들려 있는 것만이 천국 가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자연히 자신에게 세상의 것이 있고 없고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오늘날 교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은 많아도 신자로 살아가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교인은 많지만 신자는 찾아보기가 어렵고, 하나님을 부르는 자들은 많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찾기가 어렵다. 신자가 되는 것은 결코 구제 같은 착한 일을 하고, 기도 많이 하고, 성경 많이 보는 것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느냐만 묻고 있다. 예수님 안에만 생명이 있음을 알고 예수님을 붙들기를 소원하느냐를 묻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할 때 맨 처음 외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천국이란 무엇이냐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천국이란 개념이 성경적인 개념이라기 보다는 극락이라는 개념으로 깊이 알고 있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극락의 개념으로 천국을 상상하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천국도 자기가 알고 있는 그런 천국을 말하는 것으로 당연하게 여겨버리는 것이다. 보석으로 지은 집이 있는 곳, 세상에서는 어렵게 살았어도 교회 잘 다니고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살았다면 천국에서는 큰집으로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 아픈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는 세상, 이것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천국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도 동일하게 말하고 있다. 즉 불교의 극락과 기독교의 천국이 전혀 다르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말씀한다. 즉 천국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천국이란 하늘 어딘가에 존재하는 장소로서 우리가 세상에서 신앙생활 열심히 했을 때 하나님이 들여보내 주는 그런 곳이 천국이 아니다. 신자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고 선물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모든 것이 천국을 장소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국은 누가 나를 주장하고 있느냐를 말하는 것이다. 천국은 새로운 나라이다. 즉 하나님 나라를 가리켜서 천국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 나라에 함께 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존재하시는 분에 의해서 붙들려 있는 것, 내 마음에 예수님이 오셔서 나를 주장하고 계시는 것, 그것을 가리켜서 '천국이 나에게 왔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천국에 갈 수 없다. 인간이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안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것을 가리켜서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가 천국 간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도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셔서 일방적으로 그리스도의 지체되게 하신 것이지 내가 세상에서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해서 그것을 보고 그 대가로 상을 주셔서 하나님 백성 되게 하신 것이 아니다. 때문에 신자가 천국 가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교회일 하는 것도 결국 인간의 욕심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죄인이다. 그 어떤 착한 일을 해도 죄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치신 것이다. 우리를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에 들여보내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시고 거듭나게 해서 하늘의 영광에 우리를 참여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한 자, 예수님께 붙들려서 그 마음이 예수님의 주장을 받고 사는 사람은 곧 천국이 임한 것이다.

16절을 보면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흑암에 앉은 백성은 이방인들을 말한다. 즉 이방인들의 형편이 전에는 흑암에 앉은 것과 같았는데 이젠 그들에게 빛이 비취었다는 것이다. 이 말의 뜻은 이사야가 사8:14,15에서 예언하기를 장차 나타날 메시야가 이스라엘에게는 오히려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 올무, 함정이 될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스스로 하나님의 법도를 잘 지키며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려고 애를 썼던 민족이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16절은 그들에게서 율법을 봉함 하라고 말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서 떠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도 유대인들은 요한을 붙잡아서 옥에 가둔다. 그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이것은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히려 요한을 옥에 가두어 버린 것이다. 즉 요한이 증거했던 말씀들이 유대인들에게는 거치는 돌이 되고 걸리는 반석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예수님께서 말씀을 거부한 이스라엘을 떠나서 이방인에게로 가심으로 인해서 흑암에 처한 이방인에게 큰 빛이 비취게 된 것이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빛이 비취게 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의 행위로 바꾸어 버리는 자들에게서는 천국을 빼앗아 버리고 흑암에 처해 있던 사람들은 흑암에 처해 있던 자신들의 처지를 바라보고 그런 자신들에게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는 것이다. 오직 은혜의 주로서만 영접하는 것이 곧 천국의 시작이다.

오늘날 우리는 흑암에 처해 있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우리들에게 예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빛으로 오셨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안고 오신 것이다. 이런 예수님 앞에서 우리가 내어놓을 공로가 무엇이 있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감사할 뿐이다. 그것을 말해 주는 것이 23절부터 나오는 병고침이다. 예수님은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모든 악한 것을 고치신다. 각색병,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예수님께 데려오자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여기에 나오는 질병들은 모두가 당시 인간의 의학이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할 그들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그들을 고통에서 기쁨으로 바뀌게 하신 것이다. 이 병자들은 자기의 힘을 내세울 근거가 전혀 없다. 오직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에만 감사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도 그들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고쳐주심으로 세상에 온 천국이 어떤 모습인가를 보여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천국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자,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보며 사모하는 자,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자신의 공로를 주장하지 않는 자들에게 천국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천국에는 새로운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은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보며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기쁨이다. 이것이 곧 주님과 함께 거하는 곳은 그 어디나 천국이라는 것이다. 18절부터 보면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다 내버려두고 예수님을 좇는 자들이 나온다. 이제 그들은 어부라는 인생이 아니고 주님께 매인 새로운 인생으로 시작하게 된다. 육신의 생명을 위해서 자기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일하는 자로 바뀌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들을 부르고 계신다. 여러분들이 예수님께 붙들려서 천국으로 끌려 갈 때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의 몸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인생으로 바뀐 것이다. 아무쪼록 천국에 거하는 자로서 천국의 모습을 드러내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천국은 내가 예수님께 다스려지고 있는 상태이다. 나를 위한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께 붙들려서 예수님에 의해서 간섭받고 다스려지면서 새롭게 변해 가는 인생이 된 것이다. 천국으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은혜로서 만족하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