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분부(마 28:16-20) - 59강

오늘로써 마태복음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95년 12월 첫주일부터 설교해온 마태복음을 마치면서 제가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것은 그동안 마태복음을 들으시면서 과연 무엇을 배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도인 여러분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를 확실히 알았는지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오늘 마지막 본문 20절에 보면 예수님은 부활 후에 만난 제자들에게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씀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인가 분부하셨던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마태복음을 공부한 우리들을 향하신 분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마태복음을 끝내고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대하는 여러분들은 과연 예수님이 무엇을 분부하셨다고 생각됩니까? 여러분은 그동안 예수님에게서 어떤 분부를 들으셨습니까?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하신 많은 말씀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복잡하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직 한가지 중심을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무서워하지 말고, 세상을 따르지 말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과연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믿을만한 분이십니까? 바로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마태복음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마태복음을 끝내면서 여러분들에게 남아 있어야 할 한가지는 '예수님은 과연 내 모든 것을 맡길만한 분이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여러분에게 살아있다면 여러분들은 그야말로 수지맞은 인생을 살게 되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내 모든 인생을 맡겨도 될만한 분이라는 것은 내가 예수님이란 분을 이리저리 재어보고 나서 나에게 손해가 없겠다는 판단 아래 내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아실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내가 맡긴 내 인생을 이리저리 간섭해서 성공을 시켜줄 만한 능력있는 분이라는 계산 아래 내 인생을 맡기는 것도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우리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인데 그 천국은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오직 주님만을 의지한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것만이 하나님 나라로 인도되는 길임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눈에 뜨인 자는 항상 주님의 손에서 벗어날 새라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을 살피면서 주님을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라가는 길이 절대로 평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핍박을 받고 고통을 겪으시는 인생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천국 복음을 전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당시 자기들의 생각으로 자기 멋대로 성경을 이해하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에게는 인간의 생각과 전혀 다른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해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이단으로 여겨졌습니다. 자기들의 종교를 해치는 말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수없이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들의 손에 의해서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양보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천국 복음은 오직 하나만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세상과의 결별입니다. 세상에서의 명예, 권력, 재물을 향한 욕심은 복음을 향한 눈을 멀어버리게 합니다. 천국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천국은 말하고 하나님도 말하는데 전혀 다른 천국, 다른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믿고 있고, 천국을 소망하고 있고, 열심히 주님을 따르고 있다고 착각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을 합니다.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자기를 돋보이기 위한 신앙, 자신의 종교를 지키기 위한 신앙,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미련을 두고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복음을 외면해 버리는 신앙 아닌 신앙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조직과 힘을 동원해서 죄인으로 몰아 세워서 십자가에 달리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가신 길입니다. 그리고 성도인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여러분, 이 주님의 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임을 인정하십니까? 내가 그 길을 가는 자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여러분의 마음속에서부터 기쁨으로 나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마태복음을 잘 들으신 것입니다.

믿음이란 오직 주님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주님 외에 다른 것에는 전혀 의미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에도 미련이 없으며, 재물에도 미련이 없으며, 세상의 성공에도 미련이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하에 찾아볼 수 없는 귀한 보물을 이미 소유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쓸데없는 것을 가지고 아옹다옹하지 않습니다. 산다는 것이 고통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살려주시는 대로 살아갈 뿐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유익되는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설사 당장 죽는다고 해도 그 죽음조차도 복으로, 은혜로 다가오게 됩니다. 남들같이 건강하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지내는 신세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세상 사람같이 낙심하고 신세타령을 하지 않습니다. 천국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내어붸김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당당하게 기쁨으로 그 자리를 물러 날 수 있습니다. 주님만이 힘이고 교회에 미련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믿음 위에서 담대하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세상에서의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힘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힘없는 자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자신에게 힘이 주어지기를 원합니다. 병이 들었다고 해도 낫고,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기도하면 해결되고, 닥칠 재앙도 하나님이 미리미리 막아주는 그런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정작 마태복음을 통해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오히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먹을 것 입을 것을 위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 것은 이방인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부자가 천국 가기는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합니다. 영생에 관심을 두고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에게는 모든 소유를 다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을 믿기를 주저주저합니다. 불안해합니다. 내 인생이 실패하지 않을까 조바심을 가지게 됩니다. 마태복음에서 제자들도 항상 그런 모습만을 보여줬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데 불안해하고 조바심을 가지는 모습만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오늘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계속해서 아무 걱정 말고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합니다. 무조건 걱정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맨 처음 하신 일이 사단과의 싸움입니다. 맨처음 인간은 사단과의 싸움에서 실패했습니다. 당시 사단이 제공한 '하나님같이 된다'는 유혹에서 실패했습니다. 자기 성공을 보장하는 사단에게 자기를 맡겨버린 것입니다. 그 사단이 이번에는 예수님께 다가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보장합니다. 나에게 경배만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말씀으로 산다'는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는 세상과의 싸움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염려를 가져오고, 불안을 가져오고, 두려움을 가져오게 하는 세상과 싸우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누구와 어떻게 싸우시는지, 그리고 누가 승리하는지를 똑똑히 보고 제발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편에 서서 살아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곧 예수님의 모친이요 형제요 자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신자가 주님 편에 서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사단의 사고방식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짐이 되는 것은 세상이 곧 사단의 사고방식에 지배받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우리에게도 사단의 사고방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사고방식은 육신의 성공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떡을 위해서 살아가고,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해서 일하고, 남을 위한 희생보다는 자기를 위한 삶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사단의 방식입니다. 내 한몸 잘되는 유혹에 빠져서 살아가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과 싸운다는 것은 결국 자기 포기이며 세상에서 내 육신이 잘되는 것에 소망을 두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조차도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배후에 계시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무능력을 고백하고 조용히 예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당혹하게 한 것은 그토록 믿고 따랐던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손에 힘없이 못박혀 돌아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운 능력으로 그 난국을 헤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실망하고 낙심하여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부활하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자기 갈길로 가고 만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조차도 이기신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을 끝내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께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께 있습니다. 세상은 사단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권력과 힘도 예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일을 조정하시고 있습니다. 사람의 죽고사는 모든 문제가 예수님의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셨고, 지금 우리가 그분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면 더 이상 걱정될 일이 무엇이며 근심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단이 권세로서 우리를 붙들고 있을 때는 우리를 죄로 이끌어가고, 멸망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 였지만 이제 예수님께서 권세를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것은 죄가 아니라 의로, 멸망이 아니라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일하십니다. 그런데 무엇이 불안하고, 무엇이 두렵습니까? 여러분의 배후에는 주님이 계십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이 여러분의 배후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 분을 믿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것은 지금 교회에서 하고 있는 물세례의 의식을 베풀어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권세가 우리의 죄를 씻어주심을 보여주라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권세가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음을 보여줄 수 있습니까? 내가 주님의 권세로 죄씻음받은 것 같이 남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용서는 단지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그냥 용납하고 넘어가 주는 그런 용서를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용서는 먼저 내 죄를 씻어주신 주님의 권세에 내가 굴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죄를 용서하신 주님의 권세에 굴복하는 것은 자신이 진심으로 죄인 됨을 알때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자기도 주님으로부터 죄용서 받아야 할 존재인데 어떻게 남의 죄를 따질 수가 있느냐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도 주님의 죄사함의 은혜 안에 거하고, 그 배후에는 주님의 권세가 있는 자로 대하게 됩니다. 이것이 죄사하시는 주님의 권세를 가르치는 것이고 모든 사람에게 세례를 주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명령대로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부터 예수님의 권세아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도 예수님의 권세를 느끼지 못하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권세를 알려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된 자는 언제나 예수님의 권세를 느끼며 사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예수님의 권세 아래 있음을 아는 신자만이 불안함과 두려움이 아니라 담대함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된 우리부터 살아가는 삶에서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똑같은 방식이 보여지고, 세상 사람과 똑같이 세상일 때문에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면 누가 그런 모습을 보고 예수님의 권세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제자된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것은 세상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세상 것은 모두 헛된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매여 산다는 것은 곧 멸망을 자초하는 것임을 알아라고 하십니다. 세상은 절대로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세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지만 만족은 얻지 못합니다. 만족이 없는 곳에는 기쁨도 없습니다. 비록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일순간의 기쁨은 있지만 계속되는 기쁨은 없습니다.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족을 누리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권세 아래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예수님의 권세 아래 있기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 의지한다는 것만이 우리를 만족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권세는 저 멀리 밀쳐버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힘으로 자기 욕심 안에서 모든 일을 계획하고 이루어 보려고 하기 때문에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는 낙심하게 되고 욕심 때문에 염려하고 불안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아직도 예수님의 권세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세상의 힘을 통해서 자신의 욕심을 성취해 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마태복음을 마치면서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세상 것이 여러분을 살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통해서 행복을 누리고 싶어하고, 기쁨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주님의 권세 아래 들어감으로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을 찾고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세상을 이기셨고, 우리는 그 권세 아래로 부름을 입었습니다. 우리의 배후에는 주님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주님의 권세 아래 있는 제자로서 세상을 살아가라는 것이 주님의 분부입니다. 주님은 세상끝날까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