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설교는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하신 설교로서 5장부터 7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산상설교에 대해서 가지는 오해는 산상설교는 우리들이 지켜야 할 규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산상설교는 지켜야 할 규례가 아니다. 지닌 시간에 산상설교의 맨 처음에 나오는 팔복은 현재 이 땅에 와 있는 천국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 천국을 영접한 천국 사람의 모습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것이 곧 산상설교의 내용이다. 즉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통해서 천국 백성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 신자들에게 천국 모습과 다른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여 우리의 죄악 됨을 깨닫고 온전히 천국에 거하고 있는 삶의 모습을 나타내기를 힘 쓸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땅에 와 있는 천국을 영접한 자의 모습이다. 다시 말해서 산상설교는 이렇게 해야 천국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천국 사람이 된 자로서 천국 사람다운 모습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모습이 자신을 통해서 나타나기를 힘쓰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지난 시간에 천국을 장소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또 세상에 있을 때 열심히 봉사하고 착하게 살았던 것 때문에 그 보답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천국으로 들여보내 준다고도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미래의 천국은 분명히 영광된 곳이고 죽음과 고통이 없는 곳이지만 이 천국은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상의 영광을 버린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을 위해서 고통을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영광된 새 하늘과 새 땅의 천국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관심 두어야 할 것은 현재 이 땅에 와 있는 천국의 모습이지 미래에 주어질 천국은 아닌 것이다. 아예 관심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현재의 천국을 모르는 자는 미래의 영광된 천국과도 상관없는 자가 되기 때문에 현재의 천국에 대해서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관심도 내가 천국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가지는 관심이라면 잘못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어떻게 되느냐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말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현재 이 땅에 천국이 있게 하시고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때 천국의 모습이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여러분들 마음속에 있고 여러분들 주위에 있는 것이다. 팔복의 천국 모습을 알고 세상의 영광보다는 의를 위해서 목마르고 주리면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세상의 장애물을 하나 하나 치워 가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입은 긍휼을 아는 자로서 남을 긍휼히 여기고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그 마음이 천국이고, 그 모습이 천국이다.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멸시하는 자는 이 천국도 따라서 멸시하고 무시할 수밖에 없다. 이 자는 장차 주어질 영광된 천국과도 영원히 상관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수치와 고통을 아는 자는 이 천국을 귀하게 여기며 자신 또한 이 천국의 모습을 나타내기를 소원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금의 천국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사람들이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은 모습으로 와 있기 때문에 세상과 천국 사이에는 십자가라는 걸림돌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 땅에서 천국은 하나님이 주신 것만 가지고 기뻐할 때 그 자리가 곧 천국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만 가지고 기뻐한다는 것은 내가 기지고 있던 것에 또 다른 것을 더해 주신 것 때문에 기뻐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더 많아진 것을 기뻐하는 것밖에 안된다. 하나님이 주신 것만으로 기뻐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있던 기존의 것을 빼앗아 가시고 대신 나에게 하나님을 더욱 깊이 보게 하고 의지하는 은혜를 주셨다면 그 은혜로 인해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의 모습인 것이다. 때문에 신자는 하나님이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빼앗아 가셨다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또 다른 것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그 자리는 천국으로 되는 것이다. 만약 십자가를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소원하고 부러워하는 모습이라면 그것은 천국이라 할 수 없다.
신자를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신 말씀도 이런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흔히 소금과 빛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소금은 썩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니까 세상의 썩어짐을 방지하는 역할을 신자가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는 것이니까 신자는 세상에서 맛을 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빛의 특성을 들어서 말하기를 빛은 어두운 곳을 비추는 것이니까 신자는 세상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삶이 되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들을 때 신자들은 무엇을 생각하게 되는가? 일단 주눅이 들게 된다. 그리고 마음에 중압감이 오게 된다.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어두움을 비취고 맛을 내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할 텐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또 하지도 못하고 있는 자신 때문에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사실 신자가 어떤 역할을 한다고 해도 세상은 변화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죄악된 땅이기 때문이다. 죄악된 땅이 인간이 뭔가 선한 일을 한다고 그것을 보고 변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세상이 다른 인간의 선한 행위를 보고 변화될 수 있다면, 썩어지는 것이 방지될 수 있다면 예수님은 괜히 세상에 오셔서 죽으신 것이다. 그런데도 신자들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 그것을 위해서 선한 일을 하고 이웃을 위해서 뭔가를 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없고, 어두운 곳에 빛을 비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신자들에게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고 말하는가? 소금이고 빛이라는 것은 분명히 세상에서 무엇인가 감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그 역할이 무엇인가? 천국을 보여주는 역할이다. 신자가, 천국 사람이 천국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짠맛을 잃은 소금이고, 말 아래 둔 등불이다. 그러나 신자가 보여야 할 천국 모습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좋은 것이 아니다. 신자가 보여야 할 천국 모습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심판 받아 마땅한 자임을 알고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그런 모습을 통해서 천국을 보이는 것이다.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고 하신 것은 이 땅에 온 천국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나타내 보이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에 천국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람들은 꼭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만이 하나님의 일이 되어지는 것으로 착각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십자가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겸손함으로 나에게 주신 것으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소금과 빛의 역할인 것이다. 즉 우리가 할 일은 세상에 나가서 뭔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보냄 받은 자리에서 주님의 사랑으로 만족하며, 주님만 의지하면서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그러한 삶 자체를 무시하고 멸시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천국이 그들 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지 못하고 오히려 거부하고 멸시했던 것이 그들로 하여금 마지막 심판 때에 핑계치 못하도록 할 것이다.
신자로서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이 땅에 온 천국의 모습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자신에게 그러한 모습이 요구돼도 거부하지 않고 그 모습을 입기를 소원하고 살아가는 것이 소금과 빛의 역할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신자라고 하면서 세상에서 고통 없는 천국을 원하고 모든 일이 잘되는 천국을 원하고 세상의 영광을 누리는 그런 천국을 원한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이 소금의 맛을 잃어 가는 것이고 빛을 말 아래 두는 것임을 잊으면 안된다. 소금이 맛을 잃었을 때 사람들의 발에 밟힌다는 것은 소금 그 자체도 아무런 거치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금이란 소금의 형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짠맛이 중요한 것 같이 신자도 세상에서 무엇을 얼마나 소유했느냐, 얼마나 열심히 봉사하고 일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연 천국 모습을 보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여러분은 이미 천국에 들어 온 자로서 항상 감사하며 세상에서의 영광보다는 하늘의 영광을 더욱 소망하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소금이고 빛의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