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요구(마5:43-48) - 8강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봐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가를 찾아가지 아니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결정지으려고 하는 잘못함이 많이 보여지고 있다. 사람들의 생각을 모두가 자신을 유익되게 하는 방향으로 결정한다. 이런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결국 자신을 유익하게 하는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읽으라고 요구하시는 것도 나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이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도 우리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우리에게 그런 식으로 요구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요구는 힘이 아니고 경쟁이 아니고 세상 영광이 아니고 팽창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요구일 뿐이다. 인간의 요구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으로 바꿔놨을 뿐이다. 이것은 결코 복음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본문은 산상설교 중의 한 부분이다.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신다. 그 마음은 한마디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힘을 추구하고 힘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고 수고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사랑은 힘을 추구하는 것과 반대이다.

오히려 나에게 있는 힘을 이웃을 위해서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사랑이다. 결국 사람들은 이런 복음에서는 떠나고자 한다. 자신의 유익과 상관없고 오히려 손해를 유발시키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고 생각해 버린다. 결국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자로 남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교회는 절대로 세상의 방식을 따라 가서는 안된다. 힘을 추구하는 교회,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교회,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으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도록 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닌 것이다. 교회는 철저하게 버리라고 외쳐야 한다. 십자가만 외쳐야 한다. 그럴 때 이 십자가만을 원하고 교회를 찾아 나오는 사람들을 진정한 신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이 택하신 신자이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신자인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누가 십자가만을 바라보는가를 생각해야지 누가 돈이 많고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는가를 생각하면 결국 그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인간의 교회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잘되기를 소원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져서 나에게는 손해가 있을지언정 다른 이웃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보일 수 있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달라는 그런 교회, 그런 신자가 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이런 기도에는 자기의 꿈과 소망을 포기해야 하는 아픔이 실려 있다. 이 아픔이 실려 있는 기도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인 것이다. 언젠가 실천적 무신론자라는 말을 한적이 있다. 하나님을 알고는 있고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는데 실천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오늘 우리들이 바로 그와 같은 모습이 아닌가를 심각하게 돌아봐야 한다.

마5장에는 '하지 말라' 하라는 부분이 많이 나온다. 살인하지 말라 하면서 미움까지도 살인이라고 말한다. 간음하지 말라 하면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라고 한다. 이것은 겨국 우리는 끊임없이 살인하고 간음하는 존재라는 것둁르 고발하는 말씀이다. 또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모두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나의 머리카락까지도 하나님의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은 세상은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계신다는 것이다. 결국 세상의 그 어떤 일에도 우리는 개입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흔히 사람들은 '이 일은 내가 꼭 이루겠다'는 다짐을 많이 한다. '교회를 부흥시키겠다' '신자들을 제대로 양육해보겠다'등등 많둁느 각오와 결심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실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스스로 어떤 일에 대해서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하고 움직이면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결국 자기 계획을 들어줄 것을 하나님께 요구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누구시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망각한 모습에 불과하다. 물론 이 말이 어떤 계획도 세우지 말고 아무렇게나 살고 일하라는 것이 아니다. 계획을 세우되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일이 잘되든 안되든 그 일에 대해서 실망하거나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자는 오직 주어진 자리가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자리로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백성된 모습이며 피조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이다. 어떤 자리에서 살아가든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는 삶이 되라는 것이다. 자신의 욕심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곧 하나님의 종이다.

또 예수님은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 뺨도 돌려대라고 한다. 오른편 뺨이 맞는 것은 상대방이 손등으로 때렸을 때이다. 손등으로 맞는다는 것은 엄청난 모욕을 당한 것이다. 그럴 때라도 대적하지 말고 오히려 왼편 뺨을 대라고 한다. 이것은 모든 자를 대할 때 자신의 자존심을 갖고 대하지 말라는 말이다. 또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주라고 한다. 겉읏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침구와 같은 역할을 했던 담요 같은 것을 말한다. 이것은 최소한의 삶의 도구이다. 이것까지도 포기하라는 것은 자신에게 힘이 남아 있을 때 남을 돕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억지로 오리를 가게 허거든 십리를 동행하라고 한다. 당시 로마군인들은 무거운 짐이 있을 때 옆에 있는 유대인에게 오리를 들고 가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럴 경우에 오리만 가는 것은 할 수 없이 가는 것이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십리를 동행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는 거절하지 말라도 한다. 이 말씀대로 한다면 신자는 모두가 빈털터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요구이다. 결국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신자의 수준을 우리의 생각으로 마음대로 상상하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이웃을 사랑한다고 해도 내게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남겨두는 것이 인간이다. 이런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선하고 착하다고 생각하는 행동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감히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자랑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라는 것을 알리는 말씀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자, 나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적인 반응이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에게 잘해줄 때 사랑하는 것은 인간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누구에게나 공평한 사랑이다. 하나님은 악인이나 선인에게 동일하게 비를 내리고 해를 비친다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만약 우리 같으면 악인과 선인을 골라서 비를 내리고 해를 비추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군가를 고르지 않고 동일한 혜택을 주신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판단으로, 또는 자신에게 있는 감정으로 상대방을 대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한다. 상대방이 아에게 어떻게 하든 내가 상대방을 향한 사랑에는 변함이 없는 것, 이것이 사랑이다. 상대방이 변한다로 내가 따라 변하고 상대방이 식어진다고 나도 따라서 식어지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 사랑은 보이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사랑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어떠한 해를 입혀도 그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이것을 온유라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된 모습이다.

산상설교 앞에서 나를 바라볼 때 남을 미워하고, 간음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내 힘을 믿었고, 남이 나에게 하는 대로 나도 악은 악으로 갚으려고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려고 하는 그런 자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나를 위해서 자기의 피를 흘리신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교회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신자가 세상에서 잘되는 것인가? 아니면 교회가 번창하는 것인가?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자기의 욕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지 절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신자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모습으로 자라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를 이해하고 그 피로 인해서 구원받는 사람으로서 피의 은총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깨끗한 자를 위해서 흘리신 피가 아니라 나같이 더럽고 악한 자를 위해서 흘려지신 피라는 것을 알고, 그 피의 은총과 자비가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들은 영원한 멸망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했음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그 귀한 사랑을 받았은즉 나도 그 사랑으로 세상을 살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는 자가 신자이고, 이 신자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습이다. 여러분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욕심으로 세상을 살 때 그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고, 그 사랑, 그 자비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을 포기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자의 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