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강 민 32:20-32 함께가라 98.1.4

교회의 본질은 '몸'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관계를 떠나서는 교회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의 몸이며 신자는 그 몸의 하나의 지체로서 서로 연합되어 존재한다는 것이 곧 교회입니다. 그러나 몸이라는 관계, 또는 지체라는 관계는 같은 교회에 다닌다는 것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신자라는 것은 단지 인간 관계일 뿐입니다. 즉 세상에서 인간들이 서로 연합되어서 결성하는 단체나 모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의 신자들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교회 =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관계성에 대한 것입니다.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희박하고 희박하다 못해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교회로 모일 때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모입니까? 내가 만나는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가 사랑해야 할 지체로 인식하고 모이고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은 이 점을 가슴 깊이 묻고 또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분명히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 개인의 구원에만 관심이 있다면 교회에 모일 필요가 없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교회에 나오는 것이 구원의 필수조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디서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비록 교회로 모이지 않는다고 해도, 여러분 혼자 집에서 찬송 부르고 예배드리면서 지낸다고 하더라도 믿음이 있다면 구원받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홀로 집에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 때 여러분이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누구에게 생명을 나눠주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누면서 영생의 기쁨을 같이 공유하겠습니까? 여러분 가족입니까? 가족은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가족이 아니고 친척이 아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안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단지 천국 가기 위해서라면 굳이 힘들게 교회까지 나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은 교회로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라는 생각도 가지지 마십시오. 믿음의 증거는 자기를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이지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 나오는 것이 믿음의 증거라면 한국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에게 교회 나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조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만 자기 개인만 생각하고 교회에 나오신다면 교회라는 본질이 전혀 살아 있지 않은 인간의 종교단체에 불과할 뿐임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인간의 종교단체에 불과하다면 굳이 교회로 모일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힘들게 교회로 모여서 예배하는 것이나 각자 집에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뭔가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십자가의 은혜를 안다면 '나홀로 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교회를 교회되지 못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리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드러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원인은 '나홀로 신앙'입니다. '나만 잘되면 된다' '나만 교회 잘다니면 된다' '나만 신앙 있으면 된다' 이러한 생각들이 나홀로 신앙입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관계가 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때문에 아무리 100명 200명이 모였다고 해도 각자 나홀로 신앙으로 모였다면 결국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자기 개인 하나로 그쳐버리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혼자 있어도 '나' 하나이고, 같이 모여도 '나'하나라면 굳이 같이 모일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 같이 신자는 자기 편의 위주로 살아가는 습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기 편의 자기 중심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의 본질을 깨뜨리는 주범입니다. 르우벤과 갓지파가 자기 편의를 위해서 같은 형제인 10지파로부터 떨어지고자 하는 것이 형제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의 이익과 편의만 생각하는 나홀로 신앙입니다. 신자는 이런 사고방식과 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싸움을 위해서 신자는 서로 만나야 하고 만나서 우리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개인중심인가를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홀로 살아가면 이러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자기 혼자 최고인줄 착각하게 되고 믿음에 선 줄로 여기게 됩니다. 자신의 문제점과 악한 모습을 전혀 발견하지 못한채 살아갑니다. 그렇게 되면 십자가의 은혜는 단지 입술에만 존재할 뿐 마음에 자리하지는 못하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또한 자기를 포기하지 못한채 믿는척하는 것으로 그쳐버릴 위험이 많은 것입니다.

인간의 실패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발견하지 못한데 있습니다. 인간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세상에서 성공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인간에 대해서 깨닫지 못한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실패의 길을 걷고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세상의 성공을 성공으로 보지 않고 모두 헛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 그것을 가지고 지혜라고 합니다. 그 지혜는 인간에 대해서 바르게 알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입니까? 인간들 스스로는 능력이 있고 마음만 먹으면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지만 그렇게 힘있고 능력이 있고 똑똑한 인간이 왜 죽는 것입니까? 자기 몸 하나도 겨우 70년 80년 버티는 것이 전부이면서 능력 운운하면서 큰소리치는 것을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가소롭겠습니까?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죽어서 흙으로 사라져야 할 인간이 그리스도안에서 예수님의 기업과 영생을 누린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진짜 인간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한 인간은 모두 육에 불과하다는 것이 성경의 선언입니다. 육의 인간은 육만 생각합니다. 즉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잘되면 그것으로 최고의 만족이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만 여깁니다.

98년이 처음 시작하는 1월 1일에 팔공산 갓바위에 자기의 소망을 빌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에게 무엇을 빌었는지 물어보자 하나같이 '우리 가족이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갓바위에 자기의 소망을 가지고 나왔을 때 교회에서는 무엇을 하였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송구영신예배, 신년축하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무엇을 가지고 나왔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잘되는 것이 최고의 소망인 사람들, 이것이 육만 생각하는 육의 인간입니다. 갓바위를 찾아 나오든 하나님을 찾아 나오든 육의 인간이라는 것에는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임을 알고 그리스도를 아는 신자는 나는 못났고 예수님만 최고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성경은 인간을 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더욱 죄되게 드러낼 뿐입니다. 자기의 죄를 알 때 세상의 심판이 보이고, 하나님의 긍휼이 보이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도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아는 인간은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도 '나처럼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로 바라보게 됩니다. 똑같이 심판 받아야 할 인간인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구원받았음을 안다면 그 사람은 신앙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의 선후배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를 먼저 나왔든 뒤에 나왔든 그것이 우리를 구원시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긍휼로서 구원받는다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감히 긍휼 앞에서 신앙의 높낮이나 선후배를 따지겠습니까?

인간을 알고 하나님의 긍휼을 안다면 절대로 자신이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나은 인간 되봐야 결국 죄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인간 스스로 수준을 정하고 그 수준으로 도달하려고 애를 쓸 때 사람들은 자기보다 낮은 수준에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무시하게 됩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더 나은 인간 되는 것에 목표를 두지 마십시오. 이것 역시 나홀로 신앙입니다. 나만 잘되고 나만 신앙 좋으면 된다는, 교회를 교회되지 못하게 하는 나쁜 생각입니다.

교회는 죄인인 내가 더욱 죄인되기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보다 더 나은 인간 되려고 교회 나온다면 그 생각 때문에 자기보다 못한 자를 무시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교회가 깨어진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신자는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상태를 죽을 때까지 유지해야 합니다. 재산이 많든 적든, 무식하든 유식하든 죄인의 상태는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차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되고 본질이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것은 교회란 자기 개인의 신앙을 위해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로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된 신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도와주고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해서 서로 붙들어 주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개인의 유익과 편의를 위해서 형제를 외면하고 낙심케 하는 것은 교회를 깨뜨리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항상 함께라는 인식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여기에 대한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르우벤과 갓 자손은 자기들의 목축을 위해서 요단을 건너가지 않고 동편에 머물겠다는 요청을 모세에게 하게 됩니다. 모세는 그들의 요청에 대해서 옛날 가나안 정탐꾼의 경우를 들면서 형제를 낙심케 하는 말이라고 책망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모세에게 말하기를 유아를 위해서 견고한 성읍을 지은 후에 형제와 함께 요단을 건너가서 그들과 함께 싸우고 형제들이 기업을 얻도록 도와준 후 돌아와서 요단 동편의 기업을 얻겠다고 합니다.

모세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형제와 함께 싸워서 형제가 기업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에게 맞는 땅이 있다고 해서 다른 형제는 기업을 얻든 말든 관심이 없이 자기가 찾은 땅에 주저앉아 버리는 것은 자기만 생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세는 바로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나안에 들어가는데 장애가 되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만약 르우벤과 갓 자손의 개인 편의주의에 의해서 다른 지파들이 낙심해 버린다면 비록 그들끼리 요단을 건너가서 가나안과 싸운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점령했다고 할지라도 땅을 분배하거나 다른 모든 문제에 있어서 르우벤과 갓 자손과 똑같이 개인만을 생각하고 개인의 이익을 주장하는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사람의 구별됨이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르우벤과 갓 자손을 요청을 결코 들어줄 수 없었고 함께 요단을 건너가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를 앞세우고 하나님의 긍휼을 말하면서 모이는 교회들이 각자 개인의 편의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편의 때문에 형제가 어떤 손해를 당하고 낙심을 겪게 되는지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은채 오직 자기 편의와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렇게 개인 중심으로 움직이는 우리들의 잘못에 대해서 책망을 들어야 할 것이고, 언제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관계성을 잃어버리지 않은채 교회로 모여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함께 자라가고 함께 천국에 들어가야 할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잘했다고 해서 나 혼자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기뻐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몸을 생각하지 않고 나 혼자만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다섯이 있다고 할 때 넷은 부모 속을 썩이고 망나니 같은 짓을 하며 다니는데 자식 하나가 성공했다고 할 때 과연 부모가 기뻐하겠습니까? 또 성공한 자식이 말썽부리는 다른 형제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면서 '나만 잘되면 제일이다'라고 살아갈 때 그 자식의 성공이 부모에게 기쁨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교회를 기뻐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들이 서로 지체로서 한몸으로 여기고 사랑하고 도와주면서 구원을 이루어갈 때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사랑하기보다는 나를 사랑해 달라고 아우성들입니다. 위로해주기보다는 자기가 위로 받으려고만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사랑 받고 위로 받기를 원하는 사람으로만 가득차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누어주고 공급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나누어지는 풍성한 모습의 교회가 아니라 모두 자기만 생각하는 메말라버린 모습만 보여줍니다. 교회가 이렇게 된 것은 르우벤과 갓 자손같이 자기 편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요단을 건너서 형제를 위해서 함께 싸워주는 그 정신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여러분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옆을 돌아보고 형제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도록 하고, 그것을 위해서 격려하고 때로는 책망을 하기도 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함께 가고자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형제가 구원을 이루어가고 하나님을 알아 가는 일에 내가 도움이 되어주는 것, 이것이 신자이며 교회입니다. 모세가 두 지파에게 같이 가자는 것은 바로 이런 사고방식이 천국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까? 그 사랑을 누군가에게 주려고 하십시오. 여러분의 복의 근원의 자리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복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복을 내보일 수 있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지체된 신자들의 조화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 혼자로서는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같이 어울리고 조화된 가운데 아름다움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이란 긍휼과 자비를 중심으로 모이는데 있습니다. 돈과 지식, 권력 등 세상적인 기준이 중심이 아니라 오직 긍휼과 자비가 중심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는 자신의 못남을 아무리 고백을 해도 무시가 없고 조롱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못난 모습이라고 할지라도 그 모습이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것들을 마음놓고 고백하면서 자기의 죄인 됨을 외칠 수 있는 교회가 진실로 아름다운 교회이며 열린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가 없습니다. 있다면 하나님의 긍휼로 살아난 죄인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순간 여러분에게 영생을 주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무엇을 하겠습니까? '나는 영생이 있는데 너는 왜 없나?'라고 하면서 누군가를 조롱하고 무시해야 합니까? '나는 기도도 많이 하고 예배도 안빠지고 헌금도 잘해 가지고 이렇게 영생을 얻었다'라고 하면서 영생 얻은 자신을 자랑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 영생이 주었다면 그순간부터 우리가 할 일은 나에게 주어진 영생, 즉 생명을 형제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다른 형제를 생명으로 이끌기 위해서 나에게 주어진 생명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신자로서 할 일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이 흘러나오기 위해서는 내가 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깨어지심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다면 우리도 내가 깨어짐으로 생명이 흘러나오는 사람될 때 그것이 곧 교회인 것입니다. 내가 소유하는 것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나눠줌으로서 기뻐하는 살아있는 신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모세는 두 지파에서 요단 동편 땅이 좋고 그것을 가지기를 원한다면 먼저 형제가 함께 요단을 건너가서 싸우라고 합니다. 그후에 원하는 땅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내가 원하는 땅을 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로 힘을 합하고 사랑을 나누며 은혜를 나누어야 할 때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준비하시고 여러분을 기다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두지파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시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르우벤과 갓지파와 같은 사고방식은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천국에 도달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부모로서 자녀를 양육할 때도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주고 분배하면서 내 자식과 함께 천국에 가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세상의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부모의 만족과 기쁨을 위해서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한 자녀가 되기만 원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망하고 심판 받는다고 말하면서 자식은 그 심판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부모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교회를 나오면서도 머리 속에는 나 개인으로 가득차있고, 뭔가 나누고 공급해주려고 하기보다는 내가 소유하는 것으로 기뻐하려고 하는 르우벤과 갓과 같은 사고방식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나홀로 신앙'으로 교회를 나오지 마십시오. 교회로 모일 때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까?'를 염두에 두고 모이십시오. '내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까?'에 여러분의 관심이 모아져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가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편의로 나갔다가 말씀을 통해서 회개하고 형제와 함께 하고, 또 다시 자기 편의로 나갔다가 회개하고, 이것이 교회로 모이면서 반복되어질 때 여러분은 조금씩 형제에게 뭔가 나누어주는 사람으로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