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베드로전서 1:1-2  흩어진 나그네

 

<본문>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베드로전서 1:1-2)



<설교>

베드로 전서는 사도 베드로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등지로 흩어진 신자들에게 쓰는 서신입니다. 그것은 소아시아의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있는 신자들에게 서신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말씀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권면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닥쳤던 핍박과 어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신자들을 가리켜서 나그네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과 어려움을 어떻게 이기라는 것을 말하기 전에 나그네라는 신자의 본질에 대해 먼저 말함으로써 신자에게 있는 고난과 어려움들은 당연한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그네라는 것은 편한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 나그네에게는 그가 머무는 모든 곳이 떠나야 하는 곳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세상에 정착할 것이 없는 것이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기업이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나그네의 삶은 힘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흩어져 있는 신자들을 ‘나그네’로 부름으로써 그들에게 주어진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임을 알아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나그네라는 신자의 본질을 말함으로써 어려움과 고통의 환경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힘쓰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어려움의 환경에서 세상은 나의 나라가 아님을 인식하고 주님의 나라에 돌아가 영원히 사는 것을 소망하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신자라는 존재에 대해 참으로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2절의 내용을 보면 나그네 된 신자의 존재가 서글픈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2절을 보면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라고 말합니다.

2절의 말씀은 나그네 된 신자가 어떤 은혜를 누리는 자인가를 보여줍니다. 신자는 세상에서는 나그네이지만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우리의 행실도 보지 않으시고, 돈도 보지 않으시고, 그 어떤 조건도 보지 않으시고 택하시고 부르시는 은혜 때문에 나 같은 자도 하나님의 택함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셔서 다른 세계에서 살도록 하셨기 때문에 참으로 복된 존재가 나그네인 신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택하셨다는 이 말씀이 과연 여러분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씀으로 다가옵니까?

지금 베드로는 고난과 어려움에 있는 신자들을 나그네라고 부르면서 또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자’라는 이 호칭 속에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것이 들어 있는 것입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신자라는 이 호칭에 담겨 있는 놀라운 은혜와 권위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항상 문제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대한 무감각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셨다는 것에 대해서도, 택한 자만이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는 다는 것에 대해서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인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은혜를 말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그 마음이 빠져들지를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은혜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신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기에 은혜의 필요성에 절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시큰둥할 뿐입니다.

로마서 5장에 의한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란 진노의 대상이고 멸망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택하시고 그리스도의 피 뿌림의 은혜를 얻게 하셨습니다. 원수에 불과한 우리에게 이러한 은총이 쏟아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 뿌림의 은혜 안에 있게 된 신자에게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감사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고난과 어려움에서도 감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뿌림의 은혜와 비교할 만한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 세상에 있겠습니까? 피 뿌림의 은혜는 멸망의 자식인 우리를 하나님의 자식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피 뿌림의 은혜만으로는 성이 안찬다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다른 것을 향하고 있습니다. 마치 10원짜리 사탕만 먹고 싶어 아이가 만원짜리를 주면 버려 버리고 십원짜리 달라고 졸라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를 인도하신 그 자리가 얼마나 엄청난 자리인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오직 세상만 보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붙들렸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권세에서 구출 받고 하나님의 간섭을 받으면서 진리의 길로 인도받는 자리로 불려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의 권세에 붙들려서 멸망의 권세로 달려가던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를 모르십니까? 이러한 은혜를 입었는데 또 뭐가 부족하다는 것입니까? 만원짜리를 손에 쥐어 주셨는데 10원 안준다고 불평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우린 너무 어리석고 무지합니다. 하나님을 말하면서 마음을 하나님께 두기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조그만 일에 대해서도 낙심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놀라운 은혜가 우리를 어떻게 달라지게 했는가를 보지 않기에 세상을 보면서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것을 주셨는데도 좋은 것을 좋을 것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무지한 것이고 미련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예수님의 피 뿌림의 은혜 안에 있다면 세상을 떠나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소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상 속에서 자신을 나그네로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나그네이기에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핍박과 어려움에서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세상에서 얻는 것과 비할 바가 없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빠져드는 것입니다. 나 같은 자를 택하시고 피 뿌림을 얻게 하신 은혜를 생각하십시오. 은혜와 평강이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