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강) 베드로전서 2:9-10  불러내신 뜻

 

<본문>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베드로전서 2:9-10)


<설교>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두게 된다면 그것부터가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모두 자기만족과 행복을 위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향할 뿐 인간의 만족과 행복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두고 산다면 그것은 자기만족과 행복을 위해 살지 않는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현대 인간에게서는 도무지 볼 수 없는 기이한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자기만족, 그리고 인간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행복과 연관이 없다고 할 때 분명 많은 사람들은 반발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만족을 꾀하고 자기 행복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한순간에 신앙의 이유와 목표를 잃어버리는 말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부르신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 뜻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9절을 보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를 백성으로 불러내시고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은, 우리를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내시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이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도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두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미 자신에게 모든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자가 하나님께로 그 관심을 돌린다는 것은 인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백성에게 성령을 보내심으로 인생의 참된 가치와 행복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행복을 자기만족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고 참된 생명을 얻은 것에서 찾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인간됨이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기적의 사람인 것입니다.


신자는 신자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신자라는 신분은 우리가 원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고 우리의 힘으로 얻은 것도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신자는 교회를 하나 정하고 출석하는 사람을 일컫지 않습니다.


신자는 맹목적으로 교회를 출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불러냄을 받았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러 내셨음을 알고, ‘왜 나를 불러 내셨는가?’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자신만을 향하던 관심이 하나님을 향하기 시작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란 바로 그러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1:2절에서 성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신자는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택하신 자입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살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게 하기 위해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나 한 사람 천국 보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신자를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신자라는 존재를 추켜세우거나 높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자가 어떤 존재로 부름을 입었는가를 말하고자 함입니다.


신자에 대한 이같은 여러 표현들은 신자가 하나님께 얼마나 큰 은혜를 입은 존재인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은혜는 은혜로 여기지도 그리고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내 욕심이 채워지는 것을 은혜로 여기는 것이 우리의 습성입니다.


출 19:5-6절을 보면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하나님에 대해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열국과는 구별된 거룩한 나라로 부름 받은 것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거룩나라로 구별하시고 부르신 것도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세워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택하신 족속이라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신자를 세상의 모든 족속 중에서 특별히 구별하시어 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기 때문에 신자를 결코 방치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신자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이 아닌가?’ ‘나를 그냥 방치하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나 신자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 택하심을 입은 자라면, 하나님의 뜻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일이 중지 되지 않는 이상 택하신 족속을 그냥 방치하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입으신 영광에 신자가 참여될 것임을 뜻합니다. 영광에 참여될 자로 부름 받았기에 어떤 시련가운데 있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자에게 주어진 영광은 예수 안에서 약속된 영광이지 세상은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예수 안에서 약속되어진 영광을 소망하며 살아감으로써 세상이 추구하는 영광은 헛됨 것임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10절에서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나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이다’는 것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백성이 아니었던 자신을 생각해야 하고 긍휼과 상관없던 자신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입은 것이 얼마나 크고 귀한 은혜인가를 잊지 않게 될 것입니다. 부름 받기 전에 처해있던 어둠과 비참함이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생각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은혜가 어떠함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는 어려움에 있는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존재인가를 알게 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단지 어려움에 있는 신자를 위로하기 위함이 아니라 어둠에 있던 자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의 아름다운 것을 세상에 선전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어떠함을 알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나타내고 증거 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를 신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할 일은 자신이 처한 모든 환경과 형편에서 신자에게 입혀진 은혜와 긍휼과 사랑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자가 어려움으로 인해 낙심하고 절망한다고 해도 그냥 두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위로하시고 힘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내 이익과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하심이 어떠한가를 증거 할 자로 굳게 세우시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신뢰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