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강) 베드로전서 2:13-17  신자와 세상

 

<본문>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베드로전서 2:13-17)



<설교>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에서 신자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이 신자의 입장을 생각하고, 신자의 편리를 봐주고, 신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세상의 제도가 신자에게는 불리하고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 과연 신자는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가가 항상 고민거리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바로 그런 문제를 생각하게 해주는 내용입니다. 먼저 13,14절을 보면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고 말합니다. 


사도가 이러한 얘기를 하는 당시 형편은 믿는 자가 지금 우리처럼 편안한 환경에서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믿음을 이유로 로마 황제로부터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세상의 제도는 믿는 자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왕과 방백 또한 신자 편이 아니라 오히려 신자를 핍박하는 원수와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사도는 그런 형편에 있는 신자들에게 세상의 모든 제도에 순복하고 왕이나 방백들에게도 그리하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초대교회 신자들과 같은 형편에 처해 있다면 사도의 말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세상의 제도가 분명 부당하고 왕과 방백들 또한 믿는 자를 핍박하는데 그런 그들에게 순복하라는 사도의 말이 뭔가 불합리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13:1-2절을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도 역시 세상의 권세에 복종하라고 합니다. 도대체 왜 그래야 할까요?


세상의 권세와 제도에 복종하되 선한 제도에만 복종하고 악한 제도에 대해서는 거부하는 것이 옳을까요? 그러면 선한 제도, 악한 제도는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결국 기독교에 유익이 되는 것은 선한 제도, 반대로 기독교에 불리하다고 여기는 것은 악한 제도라고 규정하지 않겠습니까?


가령 예를 들어서 교회도 헌금에 대해 세금을 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분명 기독교를 핍박하기 위한 부당한 법이라고 하면서 반발할 것입니다. 물론 헌금도 수입이니까 세금을 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타종교의 헌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거나 교회는 세금을 두 배로 내야 한다는 제도를 정한다면 그래도 순복할 마음이 나겠습니까? 하지만 사도의 말이 그런 경우에도 순복하라는 의도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무리 성경 말씀이라도 부당한 제도에 대해서는 순복할 수 없다는 마음이 앞서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세금 문제로 질문을 한 내용이 있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두고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가이사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 동전은 가이사의 것으로 인정해주라는 것입니다. 동전이 가이사에게 돌아갈 것이 있고 하나님께로 가야할 것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가이사가 만든 동전은 가이사의 것으로 여겨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세금을 바쳐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가 달라고 하면 줘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두고 이해한다면, 앞서 말한 대로 국가가 교회에게 세금을 내라고 한다면 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왜 다른 종교에게는 세금을 내라고 하지 않느냐고 반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설사 두 배로 내라 할지라도 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우리는 자유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 매이지 않았고 돈에 매이지 않았음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돈에 매어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만을 증거 해야 할 하나님의 군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돈에 매어 있고, 세상과 똑같이 돈에 대해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세상의 제도에 대해 순복하지 못하게 됩니다. 돈을 뺏기지 않고 지키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노력들이 결국 수입을 적게 신고하여 세금을 줄이려고 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모습들이야 말로 하늘에 속한 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결국 사도가 세상의 모든 제도에 순복하고 왕과 방백에게도 그리하라는 것은, 신자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임을 증거하는 존재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당할 수밖에 없는 제도에 순복함으로써 신자는 세상 것을 위해 살아가지 않음을 증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을 보면 사도는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해 순복하라고 합니다. 세상 제도에 순복하는 것이 주를 위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해서 세상 제도에 대한 순복이 주를 위한 것이 될 수 있습니까?


14,15절에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세상의 왕과 방백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권세를 주고 세워서 악행 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상주게 하시면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즉 왕과 방백도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세워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사회의 질서도 인간의 힘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운 왕과 방백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세상은 자신들의 힘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고 무지한 말은 하나님이 없이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을 지키고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신자는 비록 자신에게 불리한 것이라고 해도 왕과 방백도 하나님이 세워서 세상을 다스리고 있음을 증거하기 위해 순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를 위한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의 제도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봐야 합니다. 아무리 신자에게 불리한 제도라고 해도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세운 권세자들에 의해서 되어진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제도가 아무리 신자에게 불리하다고 해도 그 제도가 신자를 하나님에게로부터 끊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모든 제도에 순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갑니다. 때문에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불리한 제도에는 반발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세상의 의식으로 살아간다면 본문의 말씀에 대해서는 귀를 막아 버릴 것입니다. ‘신자가 무엇인가?’보다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것이 곧 신자임을 생각한다면, 주를 위해 육신의 어떤 손해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자가 가야하는 길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이 길을 가기를 소원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속한 신자에게는 억울한 일도 불리한 것도 없습니다. 다만 어떤 일에서도 하나님께 속한 사람다움을 증거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으로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 곧 신자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