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강) 베드로전서 3:18-4:6  고난의 유익

 

<본문>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베드로전서 3:18-4:6)



<설교>

고난은 인간의 본성상 회피하고 싶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고난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이미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길이기에 누구도 그것을 바꿀 수 없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과 함께 하고자 하는 성도는 복음과 함께 고난 받기를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자기 백성을 굳이 고난의 길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까? 왜 백성이 고난당하는 것을 뜻으로 세우시고 일하시는 것입니까?


시편 119:71절을 보면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고난으로 말미암아 주의 율례를 배우는 유익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은 시대를 초월하여 자기 백성을 유익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고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고난이 즐거운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고통스럽고 힘들 뿐입니다. 그런데도 고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신자는 오직 진리의 길만을 가고자 할 뿐인데, 세상이 가는 길은 진리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4:3-4절을 보면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신자는 이방인의 뜻을 좇아 살던 삶에서 빠져 나온 사람이기에, 신자의 새로운 삶은 이방인의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자신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는 신자를 이상히 여겨 비방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입니다. 따라서 고난은 신자가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좇아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3:18절에서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고 말합니다.


의인이신 예수님이 불의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죽으심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하나님께 인도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심이 불의한 자에게는 생명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영을 대개 사람에게 있다고 여기는 영혼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래서 19절에서 말씀하는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는 내용도, 예수님의 몸이 무덤에 있을 때 그 영혼은 지옥에 가서 그곳에 있는 영혼들에게 말씀을 전파하셨다는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영은, 우리가 생각하는 영혼이 아니라 성령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육신으로는 죽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은, 불의한 자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입고 오신 죄인의 몸은 다 벗어버리고 영으로서 살아나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으로 살아나셔서 영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성령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고난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육신으로는 죽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처럼 신자 역시 육신으로는 죽고 영으로서 사는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육신으로는 죽고 영으로 살게 하기 위해 동원하는 것이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4:1-2절이 바로 그것을 얘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다고 말합니다. 고난이 죄를 범하지 않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고난이 육신이 죽는 길로 이끌어 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난으로 말미암아 육신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게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고난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육신이 살겠다는 욕망에 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난은 육신을 향한 욕망을 끊어버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고난 후로는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난은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피하고 싶은 고통일 뿐이지만, 죽고자 하는 신자에게는 유익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이방인의 습관들의 유혹을 받으며 삽니다. 이 유혹은 육신이 살아있기에 당연히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고난을 받으라는 말을 합니다. 고난을 받음으로써 이방인의 습관으로부터 벗어나며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에서 육신이 아니라 주를 생각하게 되고, 내가 주 안에 있으며 주께서 나를 책임지심을 더욱 굳건히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고난이 내게는 유익이라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고난으로 이끌어 가심으로써 이 세상 속에서 택한 백성이 어떤 자인가를 선명하게 드러내시는 일을 하시고, 신자는 육신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이 사는 것에 모든 관심을 두는 사람은 자연히 고난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고난으로 인해 육신이 죽을 것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자는 육으로 사는 것을 좇지 않고 영으로 사는 것을 좇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세상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며 고난이 세상과 구별된 신자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기에 신자에게는 고난도 결국 기쁨이라는 열매로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신자에게는 당연히 가야 할 길일뿐입니다. 나는 세상에 대해서는 죽고 그리스도에 대해 살았음을 증거하게 해주는 것이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영으로써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앞서 말한 대로 예수님의 육신이 무덤에 있을 때 그 영혼은 지옥으로 가셔서 지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말씀을 전파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20절을 보면 지옥에 있는 영들은 노아의 때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찾아 가십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지옥에까지 선포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고 조롱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곧 지옥에 있는 영들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지금도 지옥으로 가고 있는 영들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믿지 않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영들입니다. 결국 세상을 향해서 외치는 것은 노아 때처럼 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는 것은, 그들의 죄를 더욱 분명히 선포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전파해서 말씀을 믿고 구원을 얻을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옥에 있는 영들의 죄를 더욱 더 선명하게 나타내기 위함인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이 지옥과 다름없습니다. 세상의 영들을 둘러보십시오. 무슨 생각으로 살아갑니까? 예수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집니까? 노아 때의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하나님은 육으로는 죽고 영으로 살리심을 얻은 신자를 남겨 두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악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 고난을 동원하여 육신으로 살고자 하는 이방인의 습관을 버리게 하시고 주를 바라보며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게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신자에게는 고난도 유익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