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베드로후서 1:1-2  보배로운 믿음

 

<본문>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베드로후서 1:1-2)



<설교>

1절의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말하는 내용을 보면 사도는 믿음을 보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도에게는 믿음이 그토록 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믿음을 어떻게 대접할까요? 귀한 보배로 여기고 있습니까? 만약 믿음이 우리에게 세상의 온갖 좋은 것을 누리게 한다면 누구나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믿음이 귀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결과가 내 마음에 드는 것으로만 주어지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내가 큰 고초를 겪고 있고 고통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나의 환경을 전혀 개선해주지 않는다면 그래도 귀하고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의 서신은 초대교희 그리스도인들에게 쓰여진 것입니다. 당시 초대교회의 신자들의 형편이 어떠했는가는 베드로전서에서 이미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여러 가지의 고난과 고통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사도는 그런 처지에 있는 신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위로하고 힘을 얻게 하기 위해 서신을 쓴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고 견디면 하나님이 좋은 세상을 주신다’는 말이 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도는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믿었으나 여전히 고난과 고초를 겪고 있는 신자들에게 보배로운 믿음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즉 믿음의 가치와 귀함은 다른데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외부적인 환경에 의한 고초와 더불어 교회 내부적인 문제로 인한 혼란도 함께 겪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만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심각한 문제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초대교회가 겪었던 것과 똑같은 문제 속에 있는 교회가 어떤 믿음에 있어야 하는가를 사도의 서신을 통해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는 교회에서 발생한 내부적인 문제와 연관된 서신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신자를 흔들고 유혹하고 요동하게 하는 문제들이 무엇이며, 그러한 문제들에게 대항하여 믿음에 굳게 서게 하기 위해서 이 서신이 쓰여진 것입니다.


신자가 그리스도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고 힘든 환경이 전혀 달라지지 않을 때 믿음에 대한 의심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자신의 삶의 환경을 좋게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면 그러한 의심은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당시 초대 교회에는 다른 믿음을 얘기하는 거짓 선생들이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서 신자들의 믿음이 훼손될 위기에 직면했던 것입니다.


특히 복음의 가치를 흔들어 버리는 거짓 교훈을 증거함으로써 신자들로 하여금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고, 심판의 때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바라보고 사는 삶에 대해 의심하게 하고 그러한 것들이 부질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신을 갖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의심과 불신이 신자들을 흔들며 믿음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가치보다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더 가치를 두게 하면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천국을 소망하고 사는 것을 마치 분명치 않은 막연한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의심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조차도 십자가를 얘기하고, 주님의 재림과 심판을 얘기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그러한 내용들이 사람들에게 확고한 무엇인가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 수 있는 내용을 십자가에 첨가하고, 재림과 심판에 첨가해서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 교회가 처해있는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복음을 변질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현대 교회의 심각한 위기는 생명을 전파하는 교회가 생명의 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죄만 있는 곳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은 신자가 보배로운 믿음위에 굳건히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 죄가 무엇인가를 증거하고 그리스도가 유일한 소망일 수밖에 없음을 전파하는 자로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삶에 대해 관심이 없고 다만 내 개인의 삶을 위해 산다면 교회 밖의 사람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세상에 죄만 있다는 것이 심각한 위기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삶에 관심이 없고 마음이 떠나 있으면서도 자신을 신자로 여기는 교회의 현실이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부흥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라고 말합니다. 교회 부흥을 교회의 본질로 삼고 부흥을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교회가 세상에 무엇을 증거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교회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요?


교회의 본질은 진리입니다. 아무리 많은 수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진리 위에 서 있지 않은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성경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교회입니까? 아니면 진리로 오신 그리스도입니까? 분명 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위에 서 있기를 소원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진리를 품고 살아가는 것을 교회의 전부로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지금의 교회가 세상을 향해 보여주고 있는 믿음은 참으로 초라하고 보잘것없습니다. 아무런 힘도 없고 권위도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비웃음을 살 뿐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서라도 결코 버릴 수 없는 귀한 보배를 내어 놓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세상 누구나 추구하는 것을 하나님의 힘을 빌어서 얻고자 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 한다고 말합니다. 즉 사도는 초대교회의 신자들을 자신과 같은 자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도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종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자를 말합니다. 사도 역시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대로 전파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도와 동일한 믿음을 받았다면 초대교회 신자들 역시 사도처럼 말씀을 그대로 전파하고 증거할 자로 부름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말씀의 수호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믿음 역시 사도와 동일한 믿음입니다. 즉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은 우리를 사도와 동일하게 말씀을 전파하고 증거할 자로 세웠음을 뜻합니다. 사도가 전파했던 그 말씀만을 전파할 자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믿음이 보배로울 수밖에 없는 것은 믿음으로 인해 의롭다 여김 받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문제가 여러분께 귀하다면 보배로운 믿음으로 인해 사도와 함께 기뻐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순간에서도 사도가 증거한 복음만을 내어 놓고자 할 것입니다. 믿음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줍니다. 모든 관심을 생명의 문제에 두십시오. 그럴 때 믿음은 가장 귀한 보배로 여러분의 마음을 차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