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강) 베드로후서 3:1-7  하나님이 간수하시는 세상

 

<본문>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베드로후서 3:1-7)



<설교>

본문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은 곧 세상의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그 때에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오시는 날이 우리가 눈으로 보고 몸 담고 살아가는 세상이 사라지는 날이고, 신자는 이런 모든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의 심판을 분명히 믿으십니까? 진심으로 믿는 것인지 아니면 믿는 척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들은 제가 말씀드린 내용으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해 보기 바랍니다.


이 땅에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우리가 눈으로 보고 만지고 살아가는 우주 만물이 하나님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다면, 그리고 그 심판은 너무 강하고 지독해서 세상 어디에도 숨을 곳도 피할 곳도 없다면, 한마디로 이 땅에 안전한 곳은 없다는 것이 정답입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마 핵무기일 것입니다. 핵전쟁이 일어나면 전 세계가 멸망한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가운데 세상의 멸망의 원인은 핵무기일 것이라는 예측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각 나라에서는 핵무기로부터 안전한 방공호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방공호가 사람을 핵무기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그 어떤 방공호로도 보호할 수가 없습니다. 바닷속 깊은 곳에 숨는다고 해도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인류를 심판대에 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땅 어느 곳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 숨을 수가 있겠습니다.


이처럼 돈 가지고도 해결할 수 없고 권력으로도 해결 안되는 것이 심판입니다. 오직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만이 우리를 심판으로부터 보호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한 곳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만을 피난처로 삼고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재림과 심판을 믿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인 재림과 심판을 현실로 바라보고 그 날을 준비하는 자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만 가장 안전한 피난처로 믿는다면, 세상에 의지할 것은 없어야 합니다. 세상을 ‘아무리 둘러봐도 내 한 몸 피할 곳은 없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돈도 권세도 나를 보호할 수 없음을 알고 결국 그리스도만이 나의 살 길임을 고백하며 주님 앞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아니면 재림과 심판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진 채 세상에 피난처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살아가는 것일까요?


사실 지금의 기독교를 보면, 재림과 심판에 대해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위기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날마다 심판에 대해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림과 심판에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세상에 피난처를 두지 않고 예수님만을 의지하고자 힘쓰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문제로 예수님을 찾고 의지하고자 하는 것이 전부일 뿐, 심판 때문에 예수님을 의지하고자 하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곧 재림과 심판에 대한 긴장감이 없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리고 재림과 심판에 대한 긴장감이 없다면 그것은 재림에 대한 시간의식 때문일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오신다고 말씀한지가 2천년이 지났다는 것이 재림에 대한 생각에서 멀어지게 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에게도 재림의 문제는 매우 심각했습니다. 하늘로 가신 후 많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들은 하늘로 가신 후 얼마 되지 않아 오실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과 핍박도 감수하면서 인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림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시간이 지연되자 다시 오신다는 말씀을 믿지 못하는 자들도 있게 되었을 것이고, 본문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들처럼 재림을 조롱하는 자들도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4절을 보면 이들은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라는 말로 재림의 약속을 조롱합니다. 3절을 보면 사도는 이런 사람들을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만물을 바라보니 만물이 처음 창조 때 그대로 존재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했으면, 만물에 무슨 징조라도 나타나야 옳은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을 보니 재림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없는 재림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들은 우주 만물이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태양이 있고 달이 있고 별들이 있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바다에 물고기가 살고 하늘에 새가 나는 모든 것들이 자연히 스스로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우주 만물 모두가 창조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움직이고 보존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주 만물을 움직였다면, 어느 순간이 되면 말씀에 의해서 모든 우주 만물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재림을 조롱하는 자들은 이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역시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주관되고 있음을 보지 못하기에 재림의 징조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조용하다는 것이지요. 때문에 자기 정욕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재림이 없다고 여기면서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 재림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나는 재림을 믿지 않는다’라고 말해야 재림을 부인하고 조롱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림을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며 재림이 없다고 여기고 살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신자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재림을 기롱하는 자들은 세상이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을 잊습니다. 그래서 5절을 보면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는 말을 합니다.


물론 여러분은 세상이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으로 창조하신 후에 말씀에 세상에 개입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한시도 세상을 떠나지 않고 주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이 말씀으로 창조된 후에 세상 만물이 스스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해서 계속 존재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다 물이 땅을 침범하지 않은 것도 역시 말씀이 바다와 땅을 가르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비약적으로 들리십니까? 이 말씀이 비약적으로 들리신다면, 그것은 지금껏 세상을 하나님과 상관없이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주관하는 세상이기에 말씀의 때가 되면 어김없이 예수님이 오시고 말씀에 의해서 세상은 무너지고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이 말씀 안에 들어 있다면, 2천년이 지나도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성취는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오시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오신다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예수님이 오시는 날을 계산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신다는 것을 믿고 살아갈 뿐입니다.


6,7절을 보면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세상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까? 물론 눈에 보이는 것 밖에 보지 못하는 우리의 눈에는 세상은 스스로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태양도 제 자리에서 지구를 비추고 있고, 달도 별도 제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말씀에 의해서 간수된 것입니다. 경건치 아니한 사람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만 하나님이 말씀으로 잘 간수하여 보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닙니다. 이 세상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습니다. 말씀이 성취되는 그 때가 되면 어김없이 말씀은 세상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사람들이 붙들고 의지했던 그 모든 것이 허상이고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조롱하고 부인하고 거부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생명의 능력이 되어서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백성들을 붙들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세상은 하나님이 잘 간수하시고 보존하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