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강) 베드로후서 3:8-10  천년과 하루

 

<본문>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베드로후서 3:8-10)



<설교>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재림에 대한 분위기는 한마디로 느긋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10절에서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 말씀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이 곧 세상으로서는 마지막입니다. 온 세상이 불에 의해 해체되어 버리는 날인 것입니다.


이 날이 오늘이고, 내일이라고 생각해 보십시다. 과연 느긋할 수 있을까요? 우주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별이 지구와 충돌하여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느긋합니다.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고,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내 때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은 확실하면서도 그 때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도적같이 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긴장되어야 하는 것이 재림입니다. 그런데 왜 느긋할 수밖에 없을까요?


그것은 인간에게 있는 시간 의식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신다고 말씀한지 2천년이 지났다는 것을 긴 세월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사실 시간에 매어 있는 우리에게 2천년은 아주 긴 세월입니다. 이처럼 재림을 시간으로 의식하기 때문에 그동안 오지 않은 예수님이 오늘, 내일 오시겠는가?라는 생각에 의해 상대적으로 느긋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사도는 8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1년이 하루 같다’는 말이나 ‘10년이 어제 같다’는 말은 세월이 빠르다는 표현으로 많이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은 단지 빠른 세월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주님은 시간에 매어 있는 분이 아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2천년이라는 시간에 매어 있지 않은 주님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8절의 말대로 하면, 사람이 80년을 살았다고 해도 결국 2시간도 못살고 죽은 것이 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의 인생이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하루살이일 뿐입니다. 우리는 100년을 산 것도 오래 살았다고 감탄을 하는데 하나님께는 하루도 못살고 죽은 하루살이일 뿐입니다.


성경에서 제일 오래 산 사람이 므두셀라(969세)이지만 그 역시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하루도 못살고 죽은 하루살이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는 하루도 못되는 시간을 우리는 아주 길게 인식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간에 매어 있는 우리가 시간을 초월하여 일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하루살이에게 있어서 시간의 한계는 하루입니다. 그렇다면 하루살이의 입장에서 하루는 인생의 전부이며 긴 세월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하루는 그냥 하루일뿐입니다. 길게 느껴지는 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루라는 한계를 초월하여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것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시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주 긴 2천년의 세월도 하나님께는 잠시 잠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의 약속을 시간으로 의식하여 ‘지금까지 오시지 않았는데 내일 오시겠나? 올해 오시겠나? 안오실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말씀을 벗어나 있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말씀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말씀 안에 들어오게 되면 보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2천년 동안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만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며 사는 것이 곧 재림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세상은 끝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반드시 옵니다. 이 세상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들어 있습니다. 세상 끝날 까지 말씀이 세상을 간수하여 보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의미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재림이라는 말씀 안에 간수되어 보존되고 있는 세상에 의미 있고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귀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도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 안에 있는 신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자 애쓸 뿐입니다. 예수님만이 생명이라는 말을 참된 진리로 받아들이며 생명 되신 주님만 따르기를 힘쓰게 됩니다.


9절을 보면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에게는 주의 약속이 참 더디다고 여겨지지만 그것은 내 입장에서 재림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이 성취될 때까지는 세상은 보전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바로 택한 백성들은 단 하나도 멸망치 않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악한 자가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빨리 심판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의로운 자가 고난을 받는 현실에서 볼 때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더딘 것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께서 정한 때가 있고, 그 때는 반드시 이를 것이니 더디다고 여겨지더라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 신자인 것입니다.


하박국처럼 비록 재림의 때가 더디다고 여겨지더라도 우리는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그 때가 아직 이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을 9절에서 하나님이 오래 참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무도 멸망치 않고’라는 말은 세상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9절을 보면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대상은 세상 모든 사람이 아니라 오직 ‘너희’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백성에 불과할 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백성들이 하나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셔서 그때까지 오래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아직 오시지 않은 것은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올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신자는 이 일에 부름을 입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회개하고 아버지로 돌이키는 일을 위해 우리를 세상에 남겨 놓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도,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택하신 백성들을 회개하게 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남겨 놓으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전도해서 교회를 많이 세우고, 믿는 자를 많이 만들어 내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2천 년 전의 주님의 말씀이 지금도 살아 역사하여 우리에게 증거되고,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죄인 됨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고 아버지로 마음을 돌이키기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래 참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더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말하지만 믿음 가운데 산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믿음 가운데 산다고 말하기에는 내 속에 두고 있는 것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재림이 더디다고 말하기 전에 나에 대해 오래 참고 계시는 사랑에 감사해야 합니다. 날마다 나를 돌이키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고치시기 위해 일하시는 사랑에 감사해야 합니다. 날 구원에 이르게 하시기 위해 나에게 간섭하시는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깨닫게 된 사랑과 은혜를 부지런히 증거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되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모두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면 지체 없이 오실 이가 오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며 날마다 회개하며 예수님을 믿는 자로 사는 것이 신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