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  그리스도의 마음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그리스도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무작정 그리스도께서 행동하셨던 것처럼 행동하고, 그리스도께서 시셨던 것처럼 살아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행동하시고 사셨다면 그 행동과 삶이 어떠한 정신과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는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동하고 살아가는 정신이 어떤가를 비교하면서 우리의 잘못됨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로서의 삶은 그리스도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신자의 삶은 어떤 특별한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의 삶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윤리와 도덕 그리고 양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신자로서 산다는 문제는 ‘신자인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나는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 안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신자로 산다는 것, 이것은 앞서 말한 대로 그리스도안에 감추어져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알지 못하고서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배제한 채 무작정 신자로 사는 문제를 생각한다면 결국 보여지는 것은 인간이 상상하고 머리에 담고 있는 종교인으로서의 삶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자에게는 길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다만 천국을 가기 위한 길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천국을 가기 위한 길로만 생각한다면 결국 우리에게는 두 길이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천국에 가기 위해서 선택한 길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남과 같이 살아가기 위한 길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에게 두 길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길만 있을 뿐입니다. 천국을 가는 것이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든 길은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로 살아가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하는 문제로 연결되어지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이 없이는 신자로 사는 삶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이 자연히 신자라는 존재로 살아가는 삶을 만들어 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가 신자로서 사는 삶에 마음을 두고 있다면 어떤 특별한 행동을 신자의 삶으로 구별지어서 그러한 행동을 의도적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배우고 그분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2:3절에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툼, 허영으로 하지 말라는 것은 굳이 성경이 아니라도 세상이 가르치고 있는 덕목일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것 역시 세상이 가르치는 인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구절을 보면서 ‘다툼이나 허영을 버려야지’라든가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지’라는 의도를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말씀을 이루는 것이 되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그리스도에게 복종함으로써 보여지는 신자의 삶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신자의 삶은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으로 되어지는 것이지 우리들의 힘과 노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신자는 주 예수라는 길에서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도 우리 스스로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스스로 그리스도에게 복종할 수 있었다면 애당초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복종으로 이미 구원이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이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복종을 예수님이 이루심으로서 예수님의 복종 안에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예수님으로 완성되어진 구원을 알기에 예수님에게 복종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종은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는 마음에서 표출되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는 마음이 없는 복종은 있을 수 없고 예수님에 대한 복종 없이 천국을 말하고 영생을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신자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을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생각해 본다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5절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는 말씀을 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이 마음’이란 3-4절까지 말씀하고 있는 마음을 말합니다. 즉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이고,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을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마음을 품으라는 말을 쉽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다시 말해서 ‘이 마음을 품으라’는 말에 ‘내가 이 마음을 품어야지’라는 생각으로 그러한 마음을 스스로 품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윤리적인 차원에서 생각합니다. 겸손하고 다른 사람의 일을 내 일처럼 챙겨두고 사랑하는 것을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곧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해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처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면 그리스도의 마음은 굳이 신자만 아니라 신자아닌 자에게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품을 수 없는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지 않는 사람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마음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윤리와 도덕의 차원에서 이해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마음이 우리 스스로 품을 수 없는 것이라면 왜 사도 바울은 이 마음을 품으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본문의 내용을 살펴볼 때 그리스도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마음에 복종하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종은 오직 신자들에게서만 가능한 복종인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스스로 품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알고 그리스도가 하신 일이 무엇이며 그 일이 우리에게 이루신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에 자연히 그리스도의 그 마음에 복종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마음을 품는 것, 즉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래적인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인해서 그 마음이 새롭게 됨을 얻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에 복종할 수 있고 그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성령의 새로운 세계 안에 있는 자들임을 알기에 이러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필히 그 마음에서 보여진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행동은 마음의 증거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행동은 예수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증거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령 예수님의 마음을 겸손이라고 할 때 겸손의 마음에 의해 보여진 행동이 무엇인가를 본다면 겸손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겸손은 대개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내세우지 않는 것을 겸손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겸손은 무엇입니까? 물론 예수님이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랑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을 가지고 겸손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6-8절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행동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마음이 겸손이라면 과연 무엇이 겸손인가를 알게 해주는 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2:2-4)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을 품으라고 말하면서 이 마음은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예수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세상에 오신 낮아지심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2-4절과 같은 모습은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결코 보여질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의 겸손이 어떤 것이었는가는 하나님에 대한 복종으로 증거되고 있습니다. 8절에서 말한 대로 죽기까지 복종하신 복종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이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뜻이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뜻에 복종하시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예수님의 겸손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겸손은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종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겸손 역시 인간의 관계에서 말하는 덕목이나 도덕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으로 이해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고자 하셨다면 스스로 종의 형체를 가지는 낮아진 자리에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자리나 권리를 원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은 단지 예수님이 이런 분임을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그 삶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이 보여질 것인가를 말해주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위나 힘에 맞는 대우를 받기를 즐겨합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지위에 굴복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줘서라도 굴복하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목사가 목사라는 직책에 맞는 대우를 받으려고 하고, 장로 역시 장로라는 직책에 맞는 대우를 받으려고 하는 그러한 모습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떠나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나님의 본체시면서도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을 여기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목사라면 자신의 지위, 또는 직책을 누리고 그 직책에 맞는 대우를 생각하기보다는 무엇이 목사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인가로 고민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사람이 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다툼이나 허영으로 일을 하게 되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합당한 대우를 누리려고 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시되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에서 다툼이 발생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허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허영은 아마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됨과 성공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대다수의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또는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고 요구합니까? 바로 자신의 성공이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허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하나님앞에서 복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여기십니까? 사람의 본질은 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멸망당해야 하는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그러한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으로 인해서 비로소 살길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신자라면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삶이 되어야 하는데, 자기 성공과 잘됨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찾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타락한 인간이라는 분수에 넘치는 바램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그것을 허영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연히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해야 마땅한 분이었는데 오히려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즉 십자가에 죽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내가 하나님인데 어떻게 나를 하찮은 인간의 몸을 입게 하고 또 인간에 의해서 십자가에 죽게 하는 것입니까?’라는 반발이 전혀 없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이며 겸손입니다.



사람에게 머리 숙이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 역시 겸손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진짜 겸손은, 진심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인해서 보여지는 신자로서의 겸손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으로 증거 됩니다.



겸손이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면, 신자의 겸손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보여질 수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보여진 그리스도의 행동이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이라면 역시 그 마음으로 살아가는 신자에게서 보여질 것이라고는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인해서 보여지는 신자의 겸손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가 되게 하시든 하나님이 되게 하신 그 존재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 참고 살아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알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살게 하신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알고 거기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 현재의 자신에 대한 만족과 감사의 모습으로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다툼이 항상 서로가 더 나은 사람으로서 세상에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생각해 볼 때, 뭐가 되고자 하는 자기 욕망으로 살기보다는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다툼이 없는 일을 기대하게 하는 힘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이란 아무리 나아진다고 해도 그 본질은 동일합니다. 나아졌다면 살아가는 환경과 겉모습일 뿐입니다.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아니라면 멸망이라는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회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본질을 인간 스스로 버리거나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멸망이라는 자기 본질에서 유일한 희망인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바라보기보다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보다 나은 인간으로 대우받고 싶어하는 욕망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의 반발을 겪으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어떤 마음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이렇게 하도록 하신 것입니까? 바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위치에 걸맞은 대우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누리는 영광에만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보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으로서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는 것이었으며 그것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 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그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신자가 성령으로 인해서 그 마음에 새로워진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 사람이라면 신자는 분명 그리스도에게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고, 그리고 그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신자는 바로 그러한 사람으로 부름을 입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2-4절의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성령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마음에 참예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옛본성으로 사는 것을 더 즐겨함으로서 그리스도의 마음에 복종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지금도 가르치십니다. 그리스도가 어떤 마음으로 십자가에 죽으셨는지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씀합니다.



신자는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되어진 사람임을 다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를 배우시고 과연 신자라고 일컫는 우리들에게서 보여지는 것은 우리의 옛본성으로 행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들인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이 겸손이며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세상에서 위대한 자로, 성공한 자로 여김 받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지 마시고 하나님에 의해서 높임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이 높이시는 자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자입니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