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7:9-18 짐승의 비밀

여러분은 사탄의 존재를 믿습니까? 물론 성경을 보면 분명 사탄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단지 성경상으로 존재하는 사탄으로 인식할 뿐,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서 사탄의 활동이 강력하게 제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여길 뿐, 실제 삶에서 사탄이 활동하고 있음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단지 성경에만 등장하는 가상의 존재가 아닙니다. 분명 실존하고 있으며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역사가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는 사탄이란 존재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합니다. 심지어는 사탄이란 존재에 대해서 하찮게 여겨버리기도 합니다. 사탄은 자신의 믿음과 의지만으로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탄에 대한 깊은 착각과 무지에서 나온 생각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사탄을 윤리와 도덕의 차원에서 인식을 합니다. 즉 윤리와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을 사탄의 활동의 결과로, 사탄의 유혹에 빠진 결과로 인식을 하는 것입니다. 즉 선과 악의 체제에서 선을 천사의 활동으로 악을 사탄의 활동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악에 대한 유혹을 참는다거나, 악한 일을 행하지 않으면 사탄을 이기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해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미 사탄의 유혹에 빠져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선악의 체제 안에서 살게 된 것은 사탄의 유혹에 빠진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선악체제란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탄의 활동으로 인한 결과가 분명합니다. 즉 선악의 체제로 산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사탄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선악의 체제 안에서 선은 천사로, 악은 사탄으로 구분을 함으로서 자신의 착한 행위를 근거로 삼아 '나는 사탄과 관계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린다면 그것이 이미 사탄에 빠져 산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탄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벧전 5:8절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이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자기 백성을 지키신다면 그것은 사탄의 활동으로부터 지키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주무시지도 졸지도 않으실 만큼 사탄의 활동은 왕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교회는 사탄에 대해서 너무나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아예 사탄이란 존재에 대해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교회가 사탄의 존재에 대해서 언급을 한다고 해봐야 기껏 말도 안되는 설교 시간에 졸게 하는 '졸음 마귀'가 아니겠습니까? 또는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방해하는 마귀, 봉사를 하지 못하게 막는 마귀, 십일조를 하지 못하게 하는 마귀, 이정도의 수준이 교회가 인식하는 사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사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습니까? 사탄의 활동이 어떤 것이고, 무엇을 목표로 하고 활동을 하고 있으며, 신자를 삼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며, 사탄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 존재가 사탄이고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과의 전쟁을 말씀하심으로서 하나님이 보내신 분과 뱀의 후손은 서로 타협할 수 없는 극과 극의 관계일 수밖에 없음이 드러났다면, 소위 그리스도의 편에 있는 교회라면 절대 극의 관계에 있는 사탄의 존재에 대해서 명확히 아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이 말하는 사탄에 대한 것은 모두가 인간의 상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윤리와 도덕이 기초가 되어서 사탄의 존재와 활동에 대해 결정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에 대해서 명확히 말해주는 것은 성경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사탄을 하늘의 전쟁에서 패해서 땅으로 내어 쫓긴 존재라고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활동이 어떤 식으로 세상에 나타나는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의 상상이나 세상이 말하는 사탄에 대한 인식을 모두 버리고 성경이 말하는 사탄의 존재에 대해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나와 교회, 세상에서 활동하는 사탄의 존재를 실제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군사다운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대적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군사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본문은 세상에서 활동하는 사탄의 존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본문을 그대로 읽고 있으면 사탄의 존재는커녕 무슨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아리송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내용이나, 요한계시록의 여러 부분들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문자 그대로 이해를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즉 문자에 대한 해석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수수께끼 같은 말씀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는 말씀을 보면 본문은 짐승의 비밀을 밝히고 있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짐승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습니다. 이 짐승은 본문에 처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13장에 등장한 짐승입니다. 13장에 보면 바다에서 짐승이 나오는데 열 뿔과 일곱 머리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머리에는 참람한 이름들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용이 이 짐승에게 자기의 권세와 능력과 보좌를 주었습니다. 결국 이 짐승은 용, 즉 사탄의 능력과 권세를 부여받고 사탄의 자리에서 세상을 미혹하고 다스리는 역할을 하는 짐승입니다. 따라서 이 짐승의 비밀을 안다면 결국 사탄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짐승은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용의 권세 아래서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13장을 봐서는 짐승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알 수가 없습니다. 단지 세상이 짐승에게 경배하고 짐승을 따른다는 것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어떤 점 때문에 경배를 하는지, 그리고 짐승을 따르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 비밀이 본문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일곱 머리와 열 뿔의 비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9-11절에 보면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고 말씀합니다.

짐승의 일곱 머리가 의미하는 비밀은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일곱 왕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산과 왕의 동일한 의미로 쓰여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산이란 어떤 의미로 하는 말일까요? 먼저 렘 51:25절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온 세계를 멸한 멸망의 산아 보라 나는 네 대적이라 나의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바위에서 굴리고 너로 불탄 산이 되게 할 것이니"라는 말씀이나, 겔 35:3절의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세일 산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할지라"라는 말씀을 보면 '산'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로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산은 어떤 의미에서 여호와를 대적하는 존재로 표현되는 것입니까? 슥 4:6-7절에 보면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에서도 역시 산은 하나님에 의해서 멸망을 당할 존재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멸망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는 6절의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는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대적은 힘과 능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존재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되는 것을 거부하고 나의 힘과 능력으로 일을 이룰 수 있음을 내세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은 '큰 산'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결국 심판을 받을 존재에 지나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힘과 능이 있기에 스스로 크다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볼 때 본문에서 산과 왕을 동일한 의미로 말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왕 역시 힘과 권세가 있는 존재이고, 자신의 힘과 권세를 믿고 살아가는 대표적인 존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곱 머리는 여호와의 신으로 되어진다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권세와 힘과 능력을 믿고 자랑하며 살아가는 존재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곱 산과 일곱 왕의 의미입니다.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숫자에 민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일곱 왕이 누구누구를 가리키느냐에 관심을 두게 되면 일곱 왕이 의미하고 있는 것을 놓쳐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절에 보면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1절에서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며 일곱 중에 속한 자이고 멸망으로 들어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덟째 왕은 일곱 중에 속한 자입니다. 즉 일곱 왕의 속성을 그대로 이어받아 등장한 왕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볼 때 장차 등장해서 멸망으로 들어갈 여덟째 왕은 자기 힘과 능력을 의지하고 살면서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진다는 것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속성을 가진 이 세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3:1절에 보면 일곱 머리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고 합니다. 참람된 이름이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을 뜻합니다. 즉 '여호와의 신으로 되느니라'는 말씀에 대해서 '우리의 힘과 능으로도 되어질 수 있다'고 외치는 세력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일곱 머리, 즉 일곱 왕은 여호와의 은총으로 되어짐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힘과 능력을 믿고 살아감으로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무시하는 세력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또 다시 왕이 등장합니다.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는 말씀에서처럼 일곱 왕과 달리 열 왕이 또 다시 등장하는 것을 볼 때 일곱 왕은 무엇이고 열 왕은 무엇인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일곱 왕, 열 왕에 민감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이면 됩니다.

13장을 보면 열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면류관이란 이긴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긴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힘있는 자입니다. 힘이 곧 승리의 조건이기 때문에 열 면류관을 가진 열 왕이란 힘있는 자들이고 힘과 권세로 세상의 영광을 취하는 이 세상 나라 자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본문에서 말하는 짐승의 비밀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짐승은 곧 여호와의 은총으로 되어짐을 거부하며 인간의 힘과 권세를 의지하고 자랑하는 세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력에 속한 자로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이며 짐승과 함께 멸망에 처해질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적입니다.

14절에 보면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고 말합니다.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는 '저희들'이란 짐승의 세력에 속한 자들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힘과 권세로 세상을 살고자 하는 자들이며, 그들이 바로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는 어린 양의 대적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얘기는 장차 있을 사건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상상의 나라를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본문의 얘기는 곧 우리들의 현실을 그대로 요한에게 보여준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즉 우리의 삶에서 사탄의 활동이 어떻게 전개되는 가를 보여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사탄에 대한 상상력을 버리고 성경에서 드러내고 있는 사탄의 정체에 관심을 기울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탄이 무엇을 목적으로 어떻게 활동하는가에 대해서 명확한 이해가 있을 때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무엇이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하나님의 활동 결과를 모두 인간의 공로로 돌려버립니다. 대상 21장에 보면 다윗이 이스라엘을 계수 함으로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계수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로 되어진 이스라엘을 계수 함으로서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절에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 하게 하니라"는 말씀을 보면 결국 다윗은 사단의 유혹에 빠짐으로서 이스라엘을 계수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사탄이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 하게 한 것이 무슨 이유이겠습니까? 다윗 한 사람을 죄짓게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하려는 의도이겠습니까? 그렇다면 다윗 한 사람을 치면 되는데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을 치는 것입니까?

사탄이 다윗을 격동시켜서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은총 자체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즉 사탄이 목적으로 하는 활동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모독이며 하나님의 은총으로 되어지는 질서 자체를 무너뜨리기 위함인 것입니다.

사탄이 거부하는 것은 인간의 힘과 공로가 아닌 외부의 공로로 구원받는다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인간의 공로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메시야를 죽이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는 힘과 권력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완성되어지는 구원에 대해서 의심하게 하고 결국 자신의 공로와 행위를 의지하도록 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활동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고대하는 자들이 누구이겠습니까?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알고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자들이며 그들이 곧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인 것입니다. 사탄은 바로 이들과 싸웁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들이 사탄의 대적이며 사탄은 세상의 힘과 권세와 영광으로 신자를 미혹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탄의 활동 목적은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가 세상에 전파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라고 해서 모두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란 오직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만을 고집하는 무리들을 말합니다. 힘과 자기 행위를 공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행위에 모든 공로가 있음을 고백하는 무리들이 곧 교회입니다. 이들은 힘으로 살지 않습니다. 자기 공로를 보지 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외칠 뿐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활동에서 이기는 자로 살아가는 신자의 모습이며 참된 교회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교회가 인간의 활동을 강조하고 인간이 활동하지 않으면 교회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탄의 세력에 속한 자로 살아가는 것이며, 교회가 아니라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어린양으로 오신 그리스도와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오로지 어린양의 희생 정신이 유지될 때 교회로 여겨집니다. 구약에 이스라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 유월절 어린양의 정신을 잃지 않고 살아갈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 정신을 망각하고 자신들의 힘을 모아서 세상에서 부강해지려고 시도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방인과 같은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멸망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사탄의 세력으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고 말합니다. 음녀는 짐승의 힘과 세력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짐승에 의해서 망한다고 합니다. 힘을 의지하는 자가 힘에 의해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검을 가진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힘을 의지하는 힘으로 망한다는 말씀입니다.

힘과 힘은 하나 될 수 없습니다. 항상 투쟁과 경쟁 속에서 서로 싸울 뿐입니다. 그리고 약한 자는 결국 힘에 의해서 망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싸움이 없다는 것은 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각기 힘으로 살지 않고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중심으로 모인 것이 교회이기 때문에 다툼과 경쟁이 있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천국을 보여주는 교회입니다.

사탄의 활동은 바로 이러한 교회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힘을 의지하게 하고, 교회를 경쟁의 도구로 삼게 합니다. 이러한 사탄의 활동에 대해서 이기는 것은 끝까지 그리스도의 은혜를 고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분명히 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에만 관심을 두게 하는 것입니다.

우린 오늘 본문을 통해서 어린양에 대한 짐승의 싸움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질서를 은혜가 아니라 힘에 의해서 유지되게 함으로서 어린양의 은혜가 전파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이러한 짐승의 세력 안에서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 말함으로서 교회됨이 증거될 것입니다. 이것이 이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