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17 믿음으로 살리라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믿음으로 믿음에'라는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고 그 복음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복음이 주어졌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조건이 제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즉 복음을 주시고 그 복음을 믿으면 구원해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외치는 교회들은 하나같이 '예수를 믿으면 천국 간다. 우리 다같이 예수를 믿읍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일이고, 그 예수님을 믿는 것은 우리들이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구원에 인간의 공로가 포함되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믿음에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을만한 자질도 없는 인간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믿음을 주셔서 믿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된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내 믿음이 아니라 주님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된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7절 마지막에 '기록된 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합니다. '기록된 바'라고 하는 것은 이미 앞에서 누군가가 한 말을 사도 바울이 인용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합 2:4절에 나오는 말로서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했던 말입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왜 사도 바울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을 하면서 하박국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박국의 말씀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을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게 된 동기는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불만이 섞인 질문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왜 하나님을 믿으면서 의롭게 사는 선민들이 불의한 자들에게 핍박을 받으면서 사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의로운 자들이 핍박을 받고 고통을 당하고 반면에 불의한 자들은 잘사는 것을 보고 불만을 터뜨린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재앙을 당해야 할 자는 따로 있다고 여깁니다. 남에게 해를 입히며 살아가는 악한 자들이 불행을 당해야 하고 착한 사람은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재앙은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신앙이 좋은 사람 좋지 않은 사람, 구분 없이 찾아옵니다. 요 며칠 폭우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죽고 재산을 잃었지만 그 폭우가 나쁜 사람에게만 골라서 내렸습니까? 교회 안다니고 신앙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골라서 내렸습니까? 아닙니다. 누구나 구분 없이 폭우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 그동안 믿음으로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러한 일이 있게 합니까?'라는 하소연을 할 수 있습니다. 그 하소연에 하나님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사고가 나고 불행한 일을 겪어도 믿음으로 참고 견디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우리가 믿음을 소유해서 어떤 불행한 일도 이겨나가자'는 뜻이 아니라 의인이란 어떤 경우에서도 믿음을 드러내는 사람이다는 뜻입니다. 우린 자꾸 '의인'하면 의를 행하는 사람으로 연상을 합니다. 어떤 불행도 꿋꿋하게 이겨나가고, 힘든 일도 잘 극복하는 사람을 믿음으로 사는 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의인은 의를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을 보여주는 사람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인간에게는 의가 없습니다. 우린 죄에 갇힌 자들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믿음을 주셔서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를 주셨다면 우리가 '메시야'가 되버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를 주신 것이 아니라 의인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은 하늘에서 의인이 오셔서 그분의 의로 내가 구원받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를 의인이라고 하는 것은 의가 주어졌고 의를 행하기 때문에 의인이 아니라 그분의 의를 의지하기 때문에 의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의를 의지하는 것, 이것을 믿음이라고 말하고 의인은 바로 이 믿음을 보여주는 사람을 뜻합니다.

신자가 교회 다니면서 의를 행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신자란 의를 행하는 자가 아니라 의인으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대리 행위자를 믿는 자들입니다. 때문에 자기 의나, 자기 잘남을 보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자기 못남을 자랑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신자는 오직 믿음만 드러내면 됩니다. '주님의 의 때문에 삽니다'는 믿음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불만을 터뜨린 것은 '믿고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합니까?'라는 것이고, 하나님이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은 '세상에서 믿음의 표를 얻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표란 세상에서 자기 잘남을 통해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도 속에서든 하늘의 의를 의지하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의인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디.

다시 말씀드리지만 믿음으로 이겨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믿는다면 그 의만 바라보면 되는 것이지 세상에서 어떤 일이 있든 왜 그것을 바라보는 것입니까?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3:1절에서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의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말합니다. 결국 하박국 선지자는 믿는 신자가 왜 세상에서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느냐는 믿음에서 우리를 의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이루어 가실 것이고 하나님의 그 뜻을 성취하실 것이다는 믿음으로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핍박을 받든 진노를 받든 어려움에 처하든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고 우린 다만 하나님의 의를 믿고 살뿐이다'는 믿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신자가 애매하게 당하는 것을 참지 못했는데 이제는 애매하게 당하는 가운데서도 그것을 하나님의 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의인의 모습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17-18절에서 어떤 경우에서도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겠다는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었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하느냐가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산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소출이 풍성한 것만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오직 구원의 여호와로 기뻐하고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의 뜻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진짜 열심히 믿음으로 살았는데 세상 적으로 볼 때 불행한 일을 겪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닐 것입니다. 그때 하박국처럼 '하나님, 내가 믿음으로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있게 합니까?'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직까지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이 어려움도 내가 믿음으로 이겨야지'라는 것도 역시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환경에 지기 싫다는 자기 자존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내가 잘나서 예수 믿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믿음을 나눠주셔서 믿어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있게 하는가?'라는 말을 못합니다. 애당초 내가 믿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의를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을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의인이 드러내는 믿음은, 주님의 의가 나를 살리는 것이지 내 의가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알고 주님의 의만 의지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내가 의를 행하려고 하면 결국 어떤 불행이 닥칠 때 '이만큼 했는데'라는 불만을 내뱉게 됩니다. 그러나 내 의가 아니라 주님의 의였음을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잊지 않는다면 어떤 일을 겪는다고 해도 '나는 이런 일을 겪어도 할말없는 사람'임을 앞세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주님의 행위를 믿는 삶입니다. 그 믿음까지도 주님이 주셨다는 것을 아는 신자, 성경은 그 사람을 가리켜서 의인이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