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2:14-21 선으로 악을 이기라

악을 행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비록 악을 행함에 있어서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악을 행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을 행하는 사람은 있습니까? 이 물음에 대해서도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을 행하고 살아간다고 답할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생각하는 인간은 악과 선이 함께 공존하면서 수시로 악을 행하기도 하고 선을 행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악과 선의 무게를 달아봐서 악이 더 많을 때는 지옥을 가고 선이 더 많다면 천국을 간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은 악을 한번 행하면 선을 두 번 행해서 자신의 악을 가볍게 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양심과 도덕에서 나오는 생각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 21절을 보면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 대한 우리들의 보편적인 생각은 어떤 것입니까? 악이 생각날 때 선을 생각함으로서 악을 행하지 않도록 하라는 의미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악을 이긴다는 것을 악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말하기 전에 먼저 악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악을 이기라고 했다면 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바른 이해를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본문에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갑자기 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악이 무엇이냐는 문제는 이미 12장에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2절에 보면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악은 이 세대를 본받아 사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대가 어떻게 살기에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합니까? 신자가 본받지 말아야 할 이 세대의 삶은 자신을 위한 자기 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삶은 몸을 하나님에게 산 제사로 드린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삶이 3-2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내 몸이 없고 그리스도에게 드려진 몸이기에 그리스도라고 하는 한 몸의 지체로 사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지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지체의 자리에서 서로 지체의 관계로 살아가는 것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이고, 2절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실현되고 실천되어지는 곳이 바로 주님의 피로 세우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각자의 몸으로 모이는 것이고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지체로 모이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로 모이면서 자신의 몸을 포기하지 못한 채 모인다면 그것이 곧 이 세대를 본받아 사는 것이고 오늘 말씀처럼 악에게 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은, 교회면 교회다운 모습으로 존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신 뜻은 절대로 교회의 성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소망은 교회가 부흥되고 기독교라는 종교적 세력이 확장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아프리카 구석에서까지 '하나님'을 부르는 소리가 있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면모가 드러남으로서 그리스도의 나라가 어떤 것인가가 증거 되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이러한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받으시고자 합니까? 우리의 몸을 받으셔서 무엇을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에게 무슨 도움을 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이미 그리스도의 몸을 받으심으로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받으시고자 하시는 것은 우리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시고 증거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일에 있어서 방해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몸이기에 우리 몸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의 지체로 살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럴 때 교회다운 교회가 증거 되는 것이고, 그 교회를 통해서 천국이 증거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대는 그리스도의 몸을 증거하기 위한 지체가 아니라 자기 몸을 증거하기 위한 몸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악입니다. 이러한 악으로 인해서 드러나는 것은 자신의 몸에 대해서 해를 입히는 자에 대한 보복이며 용서하지 않음입니다.

가령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서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입니까? 두말할 것 없이 핍박하는 자는 축복하는 것이 선이고 저주하는 것은 악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을 핍박하는 자를 저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장려하고 좋은 일이라는 말은 못하지만, 할 수 있으면 핍박하는 자라 할지라도 축복해 주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자신을 핍박하는 자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심지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다고 해도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며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인간의 양심과 도덕을 기준으로 해서 결론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우리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저주받아 마땅한 우리를 축복하시고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산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냥 사랑과 자비를 주시기 위해서입니까? 사랑과 자비를 주는 것으로 하나님의 일은 다 끝났고 너는 너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부르셔서 사랑과 자비를 주셨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도구로 삼아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증거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결국 신자가 악에게 지는 것은, 그리고 악을 행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왜 나에게 사랑을 주시고 자비를 베푸셨는가를 잊어버린 데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하나님에게 드리지 못하는 것이고, 끝까지 자기 몸을 보호하고 지키는 자로 살아가기 때문에 핍박하는 자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이 증거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지 못하는 것이 악입니다. 높은데 마음을 둠으로서 형제와 마음을 같이 하지 못하는 것이 악입니다. 항상 악을 악으로 갚으려고 하는 것이 악입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지 못하는 것이 악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지 못하는 것이 악입니다. 원수를 친히 갚으려고 하는 것이 악입니다. 원수가 주릴 때 먹이려고 하기보다는 원수의 고통을 즐거워하는 것이 악입니다. 왜 이것을 악이라고 말합니까?

악은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즉 핍박하는 자를 저주한다는 것 자체가 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 대한 사람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악입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악에서 핍박하는 자를 저주하는 행동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삼 일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그리하지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외칩니다. 그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단의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라고 말씀을 합니다.

베드로가 생각한 사람의 일이란 그리스도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대가 생각하는 사람의 일입니다. 자신의 몸이 살아있기 때문에 나는 불행을 당하면 안된다는 의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이며 악입니다.

우리가 핍박하는 자를 저주하게 되고, 원수가 고통을 겪는 것을 기뻐하고, 형제의 즐거움을 같이 즐거워 해주지 못하고 도리어 시기하고, 마음을 높은데 두고 살아가는 모든 이유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체의 자리에서 지체로서의 역할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대를 본받는 것이며 악에게 지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까? 선이란 그리스도의 지체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자신을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세상은 여러분의 일을 이루기 위한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인생을 주신 것은 여러분의 일을 이루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시기와 경쟁이 나올 때 이것이 과연 누구의 일인가를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누군가를 싫어할 수는 있습니다. 핍박하는 자를 마음껏 저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일이 훼방된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하나님의 일로 인해서 저주받아야 할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신자라면 자신이 핍박을 받고 욕을 먹고 무시는 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내가 바로 주님에 대해 그런 자였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풀어진 사랑과 자비하심이 너무 감사하기 때문에 핍박하는 자에게 축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이 이기는 것이지 우리의 신앙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베풀어진 선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우리 자신이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를 생각하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에게 주어진 사랑과 자비하심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악을 이기는 자로 살아가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