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4:7-12 주의 것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상당한 부담을 안겨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는 이 말씀은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개인의 삶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삶이란 인간이 태어나서 죽는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인데 어느 한순간도 나 개인을 위한 삶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말씀이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에 대해서 반발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신을 찾는 이유는 자신의 삶을 더욱 더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철저하게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이룩하기 위해서 신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살지 말자는 것입니다.

본문 7-8절을 보면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신자에게 있어서 삶의 질적인 평가 기준이 무엇인가를 말해줍니다.

흔히 교회에서 말하는 신자로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삶의 질적인 평가는 무엇입니까? 거의 모두가 교회에 대한 행함을 말합니다. 교회에 어떻게 했느냐에 의해서 신자로서 얼마나 질적으로 훌륭하게 살았느냐가 결정되어지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에 한 것이 곧 주님에게 한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를 위하여 살고 죽는 삶을 교회를 위하여 살고 죽는 삶으로 대체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고 주님을 위하여 죽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뭘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는 것입니다.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 죽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죽을 때 '나는 주님의 은혜로 죽는다'는 고백을 해야 주님을 위해 죽는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서 산다는 것에 대해서 혼란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분에게 뭘 어떻게 하는 것이 그분을 위해서 하는 것인지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단지 말로만 주님을 위해서 살자는 외침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린 모두가 죄인입니다. 죄인에게서 나오는 것은 죄밖에 없습니다. 살아도 죽어도 오직 죄를 중심으로 행동하고 움직이는 것이 우리들의 실체입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위해서 살수가 있다는 것입니까?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 한가지 길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에게 속한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몸을 주님에게 산 제사로 드린 자로 살아갈 때 그는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에게 속한 자로 살아가는 신자의 삶은 무엇인가를 증명하게 됩니다. 그것은 '나는 주님에게 속한 자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모든 행동이 '나는 주님에게 속한 자다'는 것을 증거 하게 되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는 오직 신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행동이 있습니다. 그 행동은 주님에게 속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의도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해야지'라는 계획 아래서 행동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보여지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구제도 아니고 기도도 아니고 예배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아는 신자에게서 보여지는 증거물, 그것은 바로 '나는 주님이 흘리신 피의 은혜로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입술의 고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동이 이 고백을 기초로 해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 한 예가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음식과 날의 문제입니다. 음식과 날의 문제를 가지고 형제가 서로 비판하거나 판단한다면 결국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로 구원 얻었음을 입술로는 고백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것은 우리의 행함을 근거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나 자신의 행위를 보지 않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의 행함도 보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나 자신이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얻었다면 함께 그리스도의 몸된 모든 지체 역시 행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얻은 형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의 행함을 보지 않듯 형제들의 행함도 보지 않아야 합니다. 즉 형제들이 음식을 구분한다고 해도 날을 구분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그들을 판단하거나 비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피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즉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느냐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서 하라는 것은 행함을 요구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들의 어떤 행함도 주님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죄인에게서 의가 나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죽는다는 말을 합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는 말을 합니다.

과연 사도 바울은 어떤 의미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을까요? 분명 바울은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는 삶을 살고 있었기에 이런 말을 할 것입니다. 그 삶이 과연 어떤 것이겠습니까? 여기저기 다니면서 전도하는 삶이겠습니까? 사실 바울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얼마나 많이 다니고 많은 지역에 복음을 증거 하느냐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만을 증거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주님을 위한 바울의 삶이란 많은 곳에서 예수를 증거하고 교회를 세웠다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가든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파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즉 바울은 주님을 증거 하는 증거자로 산 것이지 자신을 증거 하거나 자신의 공로를 세우기 위한 삶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주님을 위한 삶이었던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는 말씀은 나는 내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내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삶은 나를 위해서, 즉 나를 증거하고 나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을 세우기 위한 삶입니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을 증거하기 위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나는 주님의 은혜 때문에 삽니다'는 이것이 바로 주님을 증거 하는 삶이고 주님의 것으로서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신자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는 문제가 마치 우리에게 행함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주님을 위한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간섭하십니다. 성령을 보내셔서 여러분을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로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되시는 표징이고 능력입니다.

9절에 보면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이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와 속하지 못한 자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곧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인해서 산 자이며 속하지 못한 자는 생명에서 끊어졌기 때문에 죽은 자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들의 주가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주가 된다는 것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근거로 해서 세상을 심판해 버리시는 것이 곧 주되신 그리스도의 권세입니다. 그리고 산 자의 주가 되시기 때문에 산 자들로 하여금 주의 것으로 주를 위해서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주되시는 분입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사나죽으나 주의 것이기 때문에 결국 주님을 증거 하는 몸으로 세상에 보내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가 먹지 말아야 하는가? 날을 지켜야 하는가 지키지 말아야 하는가를 증거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며 주되시는 분임을 증거 하라고 있는 삶입니다. 항상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만약 돈이 있어야 산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면 결국 주의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밀쳐내고 돈을 세워놓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그 어떤 행함도 생명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주님이 흘리신 그 피만이 나의 생명임을 증거하며 살아갈 때 그것이 바로 먹든지 마시든지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고,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 죽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