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자유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을 내세우면서 신자는 자유함을 얻은 자이기 때문에 무엇에든 거리낄게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것은 죄에 구속당한 자를 자유케 한다는 것이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음대로 살아가도록 허락하셨다는 자유는 아닙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는 자신에게는 좋을지 모르지만 결국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줍니다.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자유는 자유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의 자유를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신앙의 자유는 형제를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상 제물을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형제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그 자유를 포기하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의 자유는 언제나 형제를 유익되게 하는 방향으로 쓰여집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자유한 자입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자유한 자가 되었습니까? 자유함을 누리고 산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유함을 이해함에 있어서 교회에서 구속당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자유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에서 이것 해라 저것 해라 간섭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것을 자유함을 누리는 것으로 이해를 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지 않음으로서 형제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자유는 자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 유익과 내 편함을 추구하는 나라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평화와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다시 읽어보면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16-18절)고 말합니다.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는 것은 우리가 선하다고 생각해서 하는 것들이 도리어 사람들의 비방거리로 나타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령 음식을 먹는 것에 있어서 음식은 모두가 깨끗한 것이기 때문에 먹어도 되는 사람은 그것이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한 것은 먹으면 안된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역시 그것이 선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함이 서로 충돌이 되면 결국 사람들의 비방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경우에 있어서 잘못된 것은 신앙이라는 명목 아래 각자 자기 것을 선한 것으로 고집하는 것입니다.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명백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문제로 서로 싸우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먹고 마시는 문제가 중요한게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목적 아래서 우리의 행동이 자제되고 중지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자유이며 강한 자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진실로 선한 것은 먹고 안먹고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선함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추구하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위해서 자신의 행동이 중지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자유함을 누린다고 할 때 그 가치는 마음껏 자유함을 누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위해서 자신의 자유가 절제되고 구속되는 것에 있습니다. 하기 싫은 것을 안해도 되는 자유가 분명히 있지만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기 싫은 것을 안하는 것이 신앙이 강한 것이 아니라 안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자유도 있지만 형제를 위해서 하게 되는 것이 바로 진정으로 강하고 선한 자유함을 누리는 신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껏 많은 말씀을 드렸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음식을 구분하고 구분하지 않는 것으로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음식을 구분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날을 구분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날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의가 되고 음식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의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전혀 쓸모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음식의 문제로 다투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이 평강과 희락은 형제가 같이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교회에서 그 흔적이 보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평강과 희락이지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든 먹지 않을 수 있고 또 먹을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다는 기준은 없습니다. 물론 먹지 않음으로서 그것이 의가 되어서 구원을 얻고 복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의 구속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음을 말해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옳지 않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을 위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말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신앙이라는 명목 아래 칼을 휘두르는 것입니다. 칼을 휘두를 때 그 칼에 맞을 자가 누구겠습니까? 바로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모이는 형제들을 형제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마음껏 칼을 휘두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휘두르는 칼에 누가 맞을지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칼을 휘두르는 재미를 누리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었다는 것을 무기 삼아서 휘두르기도 하고, 주일을 지킨다는 것을 무기 삼아서 휘두르기도 합니다. 때로는 봉사한 것을 무기 삼아서 봉사하지 못한 신자를 향해서 칼을 휘두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일이 선한 것이 아님을 증거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지 우리들의 생각과 판단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들의 생각과 판단을 고집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성경이라고 여기고 그것을 고집하고 싸우는 것이 곧 성령의 뜻이라고 여깁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의와 평강과 희락은 자신들이 불의라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해 버리는 것이고, 자신들의 생각과 일치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평강이고 희락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에 맞고 자신의 생각과 일치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누리는 평강은 굳이 성령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보여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서로 가지는 평강과 기쁨은 오직 '끼리 끼리'라는 원칙 아래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각이 맞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의 관계에서 자연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평강과 희락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기준이 되어서 서로 일치한 사람들끼리의 평강과 희락이 아니라 내 생각과 내 판단이 포기된 가운데 나타나는 평강이고 희락입니다. 즉 누구든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두고 있고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리스도에게만 영광을 드리기를 원하는 모임이라면 그 안에서 내 생각과 판단을 고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만 섬깁시다'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평강과 희락을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항상 우리들의 마음이 예수님에게만 향해있다면 음식의 문제 날의 문제는 문제될게 없습니다. 음식을 가린다고 해서 십자가의 은혜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기에 믿음 약한 형제를 위해서 얼마든지 내 자유를 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와 평강과 희락에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며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