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5:8-13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은 한 교회에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있게 하십니다. 교회 입장에서는 믿음이 강한 자들만 있기를 원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와 약한 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강한 믿음을 가지고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이 땅에서 자기 백성들을 통해서 증거될 때 비로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영광을 위해서 일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강한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자신의 믿음을 과시하고 자랑하라는 이유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강한 자에게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하시는 것은 담당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약점을 담당하셨는가가 증거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누군가의 약점을 담당하고 도와준다고 할 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내가 도움으로서 그 사람의 믿음이 강해진다거나 자라간다는 것에서 도움의 조건을 찾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약점을 담당하셨을 때, 우리를 조금 도와주거나 피를 흘려주면 우리가 나약한 모습에서 벗어나서 믿음이 강한 자로 스스로 설 수 있을 것이라는 조건을 생각하고 하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약점을 담당하신 것은, 단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그대로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이 조건이었던 것이지 예수님이 도와주면 우리의 믿음이 달라진다는 것이 조건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에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도와줘서 저 사람의 믿음이 크도록 만들겠다는 것은, 자기 영광을 생각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한다면, 내가 입은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행동할 뿐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믿음이 강한 자를 약한 자에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구약의 구절들이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것에 대한 성취이며 이방인 역시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의해서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한 바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심으로서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민족이라고 하지만, 그들 역시 말씀에 대해서 실패했으며 결국 이방인과 같은 운명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그들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그들의 노력이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 앞에서는 이스라엘이든 이방인이든 동일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든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찾아오십니다. 누군가의 조건을 보시거나 그의 일한 것을 보시면서 찾아오시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의 공로를 보시고 찾아오신다면, 우리는 열심히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는 업적을 남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공로를 보지 않으시고, 그 무엇도 조건 삼지 않으시고 다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오셨다면, 그 긍휼과 자비하심을 증거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것으로 증거 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누군가의 조건이나 가치나 자격이나 가능성을 보지 않고, 다만 나에게 담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다가갈 때, 그리고 부족함이 있고 약점이 있으면 그것을 담당하고자 할 때, 그것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셨는가가 증거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강한 자 약한 자는 결코 어떤 차이가 아니고 구분이 아닙니다. 다만 믿음이 강한 자가 알게 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나누는 관계일 뿐입니다. 그러나 만약 '저 사람이 내가 도와줘야 할 가치가 있는가 ?'를 따지게 된다면 그것은 자신 스스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도우심으로 살았음을 부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8,9절을 보면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시고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할례 받은 자들의 종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할례 받은 자들을 섬기는 분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섬김으로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혜택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이방인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거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인하여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원하는 자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도우심을 거절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우리의 어떤 조건도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긍휼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실 때 세상이 어떻게 하나 보자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그리스도를 죽일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조건이나 행함을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행동하셨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또 이사야가 가로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가 오심은 이새의 뿌리에서 열방을 다스리는 자가 일어날 것이라는 약속의 성취이지만, 그러나 과연 인간에게 하나님이 약속대로 이루어줄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그렇지 않음을 알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과연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그 약속을 믿고 살았습니까? 이스라엘의 삶은 약속과는 전혀 별개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긍휼입니다. 이 긍휼에 의해서 이방인이 구원의 혜택을 입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려거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아는 그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연약한 자가 보이고 그의 짐을 지고자 할 때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은 다만 하나님의 마음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 우리의 생각과 기준을 가지고 계산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누구에게든 하나님의 마음으로만 대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려고 했는데, 그가 나를 욕한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결국 내 마음을 가지고 대하려고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으로만 대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들에게 주어진 긍휼이 어떻게 주어졌는지를 다시금 기억한다면 내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를 대하는 것이 결코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을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했을 때 항상 우리 마음의 한구석에는 사랑에 대한 반응에 대해서 기대감을 가집니다. 내가 이렇게 사랑했으니까 나에게 고마워 하고 나에게 잘 대하겠지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가 자신이 베푼 사랑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자신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을 발견할 때 베풀었던 사랑에 대해서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희생과 섬김은 그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희생과 섬김에 대한 세상의 반응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백성의 죄를 위해서 죽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주님의 죽음에 대해서 전혀 고마워 하지 않을 때 주님이 실망하셨습니까?

여러분이 진심으로 이러한 주님의 은혜를 마음에 두고 살아가신다면 그것은 분명 형제와 나누고 약점을 담당하면서도 뭔가를 기대하지 않고 어떤 조건도 보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대하는 것으로 증거될 것입니다.

신자는 돕고 도움을 받는 자로 만납니다. 이러한 관계에서 배우는 것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섬김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어떤 것인가를 알 때 우리는 아무런 조건도 보지 않고 사랑하게 되고 나누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에게서 보여져야 할 믿음의 열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