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2:1-3 판단

인간들의 신앙과 예수님의 신앙이 다릅니다. 여기서부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지금 인간들의 문제점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신앙을 칭찬하고 계신다고 착각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를 봐도 하나님은 인간의 신앙을 칭찬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 1:10-15절의 말씀이나 미 6:6-8절 등의 말씀을 보면 인간들의 신앙을 책망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신앙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에서 목사들이 가르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신앙을 칭찬하시고 불신앙은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칭찬 받는 신앙이 되기 위해서 실천해야 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항목을 정해주기도 합니다. 분명히 성경에서 인간이 신앙으로 생각하고 실천했던, 제사를 드리는 것이나 제물을 바치는 것들에 대해서 책망을 받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교회는 그러한 말씀들은 아예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도려내 버린 듯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심히 한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걸고 책망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마음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목사님 분명히 성경에는 믿음을 칭찬 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라는 반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믿음이 칭찬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칭찬한 믿음은 인간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종교성에 의해서 드러난 열심 있는 믿음을 칭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발생한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주는 믿음을 칭찬한 것입니다. 즉 인간 자체를 칭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증거 되고 있는 그 자체를 칭찬하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마음이 증거 되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이고 인간은 그 도구일 뿐이다는 결론을 내려볼 때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주신 믿음을 칭찬하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인정하실 신앙이란 인간의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앙인 것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칭찬하실만한 신앙이 있을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 1:24-32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저희를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셨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합당치 못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고 말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으로 아주 간단히 생각해 버립니다. 세상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온갖 악함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교회에서 말 몇 마디 한 것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참으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1절에 보면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판단이란 비판을 말합니다. 남을 판단할 때는 판단할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판단이란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즉 옳은 것으로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이 판단입니다. 그른 것이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옛말에 '똥 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란다'라는 말이 있듯이 똑같이 틀렸고 잘못되어 있으면서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서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만약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한다면 판단하는 자신에게는 판단의 기준이 되는 옳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띰음을 가지고 그름을 책망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판단에 있어서 전제되는 것은 우리에게 옳음이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옳음이 있어야 남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땅에는 옳은 자가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것이 1:24-32절의 말씀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악하다고 선언합니다. 악한 자가 남이 악하다고 나무랄 수 없습니다. 내가 남을 판단할 때 판단하는 그 모습이 바로 나에게도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결국 내가 나를 정죄하는 결과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 7:1-2절에서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비판하지 말라는 것은 세상에는 남을 비판할 격이 있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이 사형에 해당되는 악을 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인간의 신앙을 내세움으로서 인해서 옳고 그름을 자기 못대로 정해버렸습니다. 하나님께 책망을 받았던 인간 종교의 모습이 오늘날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으로 탈바꿈해 버렸습니다. 주님의 믿음이 나에게 있느냐가 관심이 아니라 다만 열심히 믿고 많이 믿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이 신앙 기준을 '열심히 많이'로 내세울 때 자연히 열심히 하지 않고 많이 하지 않은 것은 판단의 대상이 되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서 판단하는 것도 '왜 기도를 안합니까' '왜 성경을 안봅니까' '왜 십일조를 안합니까' '왜 봉사를 안합니까'가 되버린 것입니다.

자기의 악함을 보지 못하고 인간의 신앙이 기준 되어서 남을 판단할 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내가 남을 판단할 때 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판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판단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판단이 진리대로 된다고 한다는 것은 진리가 판단하는 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말입니다. 진리란 무엇입니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진리는 그리스도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기준 되어서 판단하는 자를 판단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남을 판단하기 전에 필히 자신과 비교해 봐야 할 분은 예수님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쉽게 자기의 행동을 기준으로 해서 남을 판단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렇게 하는데 너는 왜 이렇게 못하느냐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뭔가 잘한 것이 있어 보인다고 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없습니다.

남을 판단한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를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나로 하여금 하도록 하셨다가 아니라 내가 했다가 되버리기 때문에 우쭐거리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자기보다 못한 듯 보이는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1장의 말씀입니다. 죄인이면 모두가 동일한 죄인입니다. 악한 죄인이 있고 덜 악한 죄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똑같이 죄인입니다. 도둑질하고 살인한 것과 상관없이 똑같은 죄인입니다. 도둑질 한 사람의 마음이 나에게 없는 것이 아니고, 살인자의 마음이 나에게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마음을 적당히 위장하고 드러내지 않고 살았을 뿐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간음한 여인에게 돌 던지는 자의 위치에서 주님께 나오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간음한 여인을 기다리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돌 던지는 자의 위치에서 나왔던 사람들은 모두가 주님으로부터 판단을 받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자기의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끌만 드러내고 판단하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은 필연코 하나님의 판단을 받게 될 것입니다.

판단하지 말라는 것은 너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잘났고 너는 못났다는 입장에서 남을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잘못이 보이거든 나는 옳은데 너는 틀렸다는 위치에서 판단하지 말고 나도 틀렸는데 너도 틀렸다는 입장에서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즉 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말씀되어서 나와 상대방을 같이 판단하는 것입니다. 나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판단 받아야 할 사람임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단순히 신자에게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행동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네 자신이 하나님으로 판단 받아야 할 죄인임을 아느냐'를 묻고 있습니다. 이것을 묻는 이유는 나 자신에게서는 결코 판단이 기준이 될만한 선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율법을 지킨다느니, 노력을 해야 한다느니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오직 주님의 은혜로 산다는 말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오로지 주님의 은혜로만 살아가는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