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6:17-20 성도의 미혹

사람은 주님을 섬기거나 아니면 자신을 섬기는 둘 중의 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누구든 주님과 자신을 동시에 섬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말씀처럼 우리에게 있어서 주인은 둘 아니라 오직 하나일 뿐입니다. 다만 다른 것은 누가 주인이냐는 것입니다. 주님이냐 아니면 나 자신이냐 이 차이가 인간의 모든 운명을 결정짓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란 바로 주님만을 섬기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삶의 최선이고 유일한 목표임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주님만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 그들이 바로 주님의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교회는 항상 싸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아니라 다른 주인을 섬기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척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살려고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사고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는 것이 바로 교회의 본래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싸움이 없는 교회는 단지 인간들의 모임이며,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인간의 친교를 위한 모임에 불과합니다.

교회란 싸우면서 지키는 삶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 이것만큼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지킨다는 것이 교회의 교회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바울이 본문의 말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문안하라'는 인사 가운데 등장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누구에게 문안하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21절부터도 문안하라는 말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갑자기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에게서 떠나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성도들이 서로 문안하는 것에 어떤 영향을 주는 문제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성도가 서로 문안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안에서의 관계를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즉 단지 인사하는 차원의 문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서로 만나는 관계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문안할 자들이 어떤 일을 했는가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안에서 한 일을 언급함으로서 서로 함께 그리스도안에서 살아가는 관계임을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성도와 성도의 관계에서 모든 인간적인 조건을 초월하고 지체로 만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희생과 은혜아래서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과 은혜는 모든 인간을 동일한 조건으로 집어넣습니다. 돈, 지위, 권력과 아무런 상관없이 모든 인간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죄인이기에 그리스도의 희생과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임을 말합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으며, 믿음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인간적 조건도 구원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 로마서의 말씀이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인간의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과 은혜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동일한 자로서, 누구나 똑같이 죄인으로서 주님의 은혜와 희생이 아니었으면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으로 만나기 때문에 은혜와 희생 아래서는 인간의 구분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이며 성도는 이런 관계에서 서로 문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조건을 보지 않는다는 의미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도의 관계를 허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조건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고 말합니다.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이란 어떤 자를 말하겠습니까? 오직 은혜만을 말할 때 반발하는 자들은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오직 은혜 아래서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묵살되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쌓은 업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적인 은혜에 대해서 부정하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도 은혜를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자신에게 업적을 남기게 한 은혜이지 죄인된 자신을 죄에서 건지신 은혜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에게서 떠나라고 말합니다.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며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을 떠나라고 합니다. 대적하라는 것이 아니라 떠나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과의 사귐이 있어서는 안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사고방식에서 떠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고 분쟁을 일으키는 그가 바로 나 자신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 속에 오직 은혜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는 성품이 존재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잊어버리지 못하고 그 행위를 근거로 해서 뭇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싶고 높임을 받고 싶어하는 악한 성품으로 인해서 교회를 훼방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악한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으로 성도가 서로 문안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미 자신의 속에 구별이 있을 것이고 나보다 행함이 적은 자에 대해서는 차별과 무시가 존재할 것인데 어떻게 은혜와 사랑 안에서 문안하는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결국 나 자신이 교회에 분쟁을 일으키는 악한 자이지 않겠습니까?

신자란 오직 주님만을 섬기는 자입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임을 한시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내 속에서 내가 주인 되려는 악한 성품이 보일 때 그것으로 애통해 하면서 회개하고 주님을 찾아 나오는 자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자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신자를 미혹하는 것은 자신을 섬기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18절에 보면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이같은 자라는 것은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고 내세우며 교회에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다만 자기 배를 섬기는 자들입니다. 자기 배를 섬긴다는 것은 자신의 배부름을 위해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즉 자기 만족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기쁨과 만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교훈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는 한 우리의 행위는 어떤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의 용서를 말하는 한 우리의 행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로 신자를 미혹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훈에 대해서 신자가 미혹을 받는다면 그것은 그 교훈이 인간에게 어떤 편함과 자유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뭔가 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섬기기보다는 자신을 섬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받는 미혹입니다. 결국 인간의 행위를 자랑하는 것이나 주안에 있으면 어떤 행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나 둘 다 똑같이 자신을 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3:19절을 보면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땅의 일을 생각하며 사람들은 자기 배를 위해서 살아갑니다. 모든 관심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에 있습니다. 자기 즐거움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기 행복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자기 만족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신자에게는 큰 미혹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고난과 눈물이 없는 믿음 생활을 바라게 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현장입니다. 그런데 고난과 눈물이 없는 십자가를 원한다면 결국 그는 주님을 말을 할 뿐 섬기는 것은 바로 자기 배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섬긴다면 주님이 가신 길에 말없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비록 고난과 눈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님이 가신 길이기에 나도 가야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 주님을 사랑함으로서 주님을 따르는 신자의 모습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고달프지 않고 고생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달픈 인생을 산다고 해도 거룩해지고 온전해지는 믿음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에 모든 관심을 둬야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이 자존심입니다. 자존심으로 인해서 자를 자랑하게 되고,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유혹에 빠질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을 감사하고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이런 마음으로 만날 때 진정한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존심을 내보일 때 보이는 것은 분쟁입니다. 신자를 미혹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시고 미혹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신자로서의 바른 분별과 지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만을 섬기는 신자다운 승리가 증거 되고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는 신앙생활이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