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까지 은석교회에서 설교를 해오면서 인간에게 그 어떤 가능성도 둔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즉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선을 행할 수도 없고, 하나님께 예배할 수도 없고, 기도할 수도 없고 봉사할 수도 없고 구제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여러분의 솔직한 심정은 어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그 말에 대해서 정면으로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부정하면서도 꾹 참고 제 말을 들어준 것은 아니었습니까? 이것이 여러분의 신앙을 잘 알지 못한 제 개인의 쓸데없는 염려로 그치기를 기대하면서도 저로서는 이런 염려를 접어둘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는 말에 반박이 나온다면 그것은 자기 행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인간은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다고 하니까 반발이 나는 것입니다. 분명히 나는 구제하고 봉사하면서 선을 행하고 있는데 인간은 구제할 수 없고 봉사할 수 없는 악한 자라고 할 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이 인간에 대해서 무지한 결과입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모르는 것, 이것이 우리를 잘못된 신앙으로 끌고 갑니다. 자신에 대해 소경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언제 인간의 예배를 예배로 인정하셨습니까? 인간의 기도를 기도로 인정하셨습니까? 인간의 구제와 봉사를 인정하셨습니까? 그런 것들은 이스라엘 안에도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모든 것을 다 부정하셨습니다. 그것들이 의가 될 수 없음을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그 말을 그대로 전함으로서 민중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던 것이 아닙니까? 인간의 공로를 부정하기 때문에 참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할 수 없으니까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겸손해라'는 의미입니다. '네가 무엇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네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네 안에서 너를 주장해서 한 것이니까 그런 행동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라'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인간에 대해서 이해한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지 못하면 도저히 그런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비록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을 연구하고 인간에 대해서 파헤치고자 노력은 했지만 모두가 본질 자체는 발견하지 못하고 다만 인간의 내면과 행동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으로 그친 정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자신에 대해서 눈을 뜰 수 있는 어떤 도구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인간의 죄인 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받은 인간은 자기들의 노력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지킴으로서 의를 이루어 보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러한 유대인들을 공격한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유대인의 나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맡았다는 것은 말씀이 의도하는 바를 세상에 나타낼 도구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지켜서가 아니라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인간의 현실을 폭로함으로서 결국 하늘의 의가 아니면 인간은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유대인들의 불의함은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는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은 자기들의 불의함을 발견함으로서 하늘의 의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에게 주어진 유익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심으로서 인간은 스스로의 행동을 가지고 하나님께 올 수 없는 존재이며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하늘의 의를 통해서만 천국에 올 수 있다는 것을 복음으로서 세상에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늘의 의,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국 가고자 하는 신자는 필연코 자기 행위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와 자기 행위, 둘 다 붙들 수는 없습니다. 예수를 의지한 자는 자기 행위를 포기할 것이고, 자기 행위를 의지한 자는 예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자신의 행위를 칭찬하고 인정하는 다른 예수를 세워 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해서 그들에게 율법을 던져 주심으로 인간의 불의함을 나타내시고 바로 이것이 온 인류의 모습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것을 9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는 이 말씀은 세상 모든 사람이 바로 유대인과 똑같이 죄 아래 있다는 선언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우리의 죄악된 모습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알려면 이스라엘의 죄를 보면 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행동했고, 율법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했는가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모습에서 그대로 보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구약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모습들은 바로 오늘 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미리 앞당겨서 보여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나의 거울인 것입니다.
'죄 아래'있다고 하는 것은 인간은 홀로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면 홀로 독립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죄 아래 매이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떠난 자의 모든 행동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죄에 매어 있는, 즉 사단의 사고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면 사단에 매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나님도 안 믿고 사단의 존재도 안믿고 오직 자기만 믿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에 매인 자의 사고방식입니다.
10-12절에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하는 이것이 인간에 대한 정확한 평가입니다. 이러한 평가 앞에서 감히 누가 '할 수 있다'라는 말을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자기를 포기하지 못한 인간의 입에서는 '나는 깨달았는데' '나는 하나님을 찾고 있는데' '나는 선을 행하는데'하면서 마치 오늘 본문의 말씀은 자신과 상관이 없이 다른 사람에게 해당된 말씀인 것처럼 여겨버립니다.
13-18절까지의 말씀도 인간에 대한 너무 지나친 평가라고 생각이 되지 않습니까?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13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지나친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실체를 그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말들은 어떤 말입니까? 여러분의 입술에서는 과연 어떤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두가 내 이익을 위해서 하는 말이고 내 자랑을 위한 말이고 나를 높이는 말이지 않습니까? 나의 말이 모두가 독이 되어 형제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발은 또 무엇을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신을 드러내는 데 분주한 발이 아니라 형제가 피해를 볼지언정 내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서 분주한 발이 아니었습니까? 형제의 욕을 하고 비난하는 일에 빠른 발이 아니었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정확한 실체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18절) 말씀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성에 의해서 자기 좋을 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 우리들이고,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고개 숙인 우리들입니다. 과연 그러한 기도,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겠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안받으니까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받지도 않는 예배, 기도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오늘 본문의 말씀이 바로 나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씀인 것으로 인정하고 자신에 대해서 낙심하고 오직 하늘의 의만 의지하기로 했을 때, 하나님이 주신 그 의가 예배할 수 있게 하고 기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실체를 드러내고 책망을 하시는 것은, 인간의 의에 기대 걸지 말고 하늘의 의에 모든 소망을 두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나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생명을 선물로 주시지 않으면 멸망 받을 자다'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미 참 생명의 길에 서있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인간의 열성이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없는가를 깨닫고, 여러분의 마음이 한 의로 오신 예수님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