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행함을 떨쳐 버리지 못합니다. 언제나 행함에 대해서 미련을 두면서 행함을 통해서 인간적인 모습을 구현해 보려고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인간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행함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함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내시경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면의 정체를 위장하고 인간에게 다가가는 것이 행함입니다. 인간의 내면은 온통 죄악입니다. 죄로 가득차 있는 내면을 행함을 통해서 씻어 보고자 하는 것은 선에 대한 욕구 발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면이 선이 아닌 이상 외면에 지나지 않는 행함 역시 선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보기에 아무리 고상하고 거룩한 행위를 창출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선언입니다.
특별한 행함이 특별한 의미와 특별한 영광을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가령 직장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것이 더 영광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의 속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게는 직장에서 일하든 예배당에서 기도하든 그것이 관심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네 마음속에 무엇이 있느냐?'입니다. 즉 마음에 그리스도를 두고서 일을 한다면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그러나 마음에 그리스도가 아니라 온통 자기로만 가득찬 채 예배당에서 기도를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죄를 짓는 것입니다.
또 기도를 해도 철야기도가 더 낫고, 삼일 금식기도보다는 삼십일 금식기도가 더 낫다는 생각들이 곧 특별한 행위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여러분은 평생토록 행위라는 짐에 눌려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교회의 관습에 매어서 행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종교적 행위가 멋있게 보이고 신앙인처럼 보이기 때문에 나 자신도 그것을 모방함으로서 신앙에 도달해 보려는 시도도 역시 참으로 위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행함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위장되고 더럽고 악한 것을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리가 만무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나 죽으나 악한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평소에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하나님의 관심거리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행위를 통해서 자신이 신앙을 표현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어떤 특정 행위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생각도 버리십시오. 종교적인 집단 분위기에 휩쓸리지도 마십시오. 주위 사람들의 경험들을 부러워하지 마시고 자신도 그러한 경험을 하려고 하지도 마십시오. 그 어떤 경험도 행동도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으로 인도하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마시고 미련도 버리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혜 있는 신자입니다.
인간의 행위는 마음에 무엇을 두고 사느냐에 의해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돈을 두고 사는 사람은 자연히 돈이 되는 쪽으로만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이웃이 해를 입든 말든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건 관심 두지 않고 돈이 있는 쪽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그리스도를 두고 사는 사람은 자연히 그 행함도 그리스도가 추구하는 쪽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의 행위는 속 내면을 점검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행함 자체를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지 마시고, 행함 속에서 내면을 발견하고 점검하십시오. '기도했다. 그래서 나는 신자다'가 아니라 '무엇을 기도했는가?'를 통해서 내 마음이 무엇이 있는가를 찾아가는 것이 참된 신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위대한 인간의 행위를 묵살해 버립니다. 아브라함 하면 모든 신자들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면서 위대한 영웅으로 취급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행위를 본받자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집을 떠나오는 행위, 전쟁에 승리하고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치는 행위, 독자 이삭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이려고 했던 행위 등등, 위대하다고 생각되는 신앙적인 행위를 본받자는 것이 교회가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교회의 생각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롬 4:2-3절을 보면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고 합니다. 분명히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의로 여긴 바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할 때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아브라함이 믿었으니까 믿음이라는 행위가 있는 것이 아니냐'라고 반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으로 간단하게 해결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즉 믿는 것까지도 인간이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줘서 믿게 된 것뿐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행위가 개입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친 행위도 무시하라는 것인가? 예, 무시하십시오. 철저하게 무시하십시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게 된 것도 자기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게 하신 그 믿음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이삭을 바치도록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이삭까지 바칠 수 있는 아브라함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것은 로마서를 쓴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수없이 많은 곳을 다니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얼마든지 자랑거리가 될 수 있지만 바울은 전혀 자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나되게 하신 예수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를 나되게 하신 예수님만 자랑했고 예수님만 높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아는 신자의 모습입니다. 자기 행위를 보지 않고 예수님만 높인다고 해서 행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여러분을 분명히 행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아는 믿음으로 사는 신자라면 자신의 행함을 보지 않고 나를 나되게 하신 그리스도만 바라볼 것입니다.
아브람의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뀐 것도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 되게 하시겠다는 의도에서였습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된 것, 이것이 구원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구원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의 모습은 자신을 붙들고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고 그 손길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신다는 것 때문에 희망이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너 스스로 해보라고 하셨다면 우린 모두 희망이 상실된 채 어두운 죽음의 세계만 바라본 채 살다가 멸망으로 빠져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희망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희망인 것입니다.
5절에 보면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라고 합니다. 얼마나 신나는 말씀입니까? 우리는 지금껏 일을 많이 한 사람이 경건하고 믿음이 있고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일을 많이 하고 적게 하고에 얼마나 마음을 많이 두고 살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일을 아니 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 하나님을 믿는 자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고 합니다. 행위를 기준으로 해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이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들은 이 말씀을 그대로 설교하기를 꺼려합니다. 혹 교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행함이 사라질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교인들이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교회의 성장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일을 아니 해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르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약 2:21-24절의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는 말씀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분명히 여기서는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지난 주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시 간단히 말씀드리면 아브라함의 행함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낸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준 그 믿음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행하도록 한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행함을 가져오게 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행함으로 믿음을 판단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그 사랑이 여러분들의 안에서 일하실 것입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 되게 하신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을 만들어 가십니다. 일을 하지 않아도 경건치 않아도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의로 여기십니다. 신자는 행위와 상관없이 이미 복안에 있습니다. 불법을 사하심 받았고 죄를 가리우심 받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복이 있기 때문에 신자는 없어도 있는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