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5-8 생명되는 생각

4절에서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하고 5절에서도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과연 육신을 좇는 것은 무엇이고 영을 좇는 것은 무엇입니까? 흔히 이 말씀을 가지고 신자들 가운데 육신을 좇아가는 자가 있고 영을 좇아가는 자가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교회의 일에 연관지어서 말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즉 교회에서 철야기도회를 하는데 집안 핑계 대고 바쁘다는 핑계를 대어서 기도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 육신을 좇아가는 것이고, 다른 일 다 제쳐 두고 기도회에 나오는 것이 영을 좇는 것이라고 구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중대한 문제가 하나 발생합니다. 6절에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철야기도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 육신을 좇아가는 육신의 일이라면 철야 기도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 사망의 이유가 되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목사들은 단지 하늘의 상급의 차원에서 말할 뿐이지 구원의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핑계를 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망이란 상급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지옥에 간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육신을 좇는 것을 교회의 일이나 종교적 행사와 연관 짓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된 정도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이미 육신을 좇는 것이고 육신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철야기도회하는 것이 육신이 일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시간에는 이것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육신을 좇는 육신의 일이 무엇이고, 영을 좇는 영의 일이 무엇인가를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는 심각한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와 영을 좇는 자는 신자의 등급을 구분하는 말이 아닙니다. 육신은 사망과 연결되고 영은 생명과 연결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이것은 사망과 생명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로 구분하고 있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좇는다'는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인간 편에서 육과 영을 선택하는 차원에서 하는 말로 이해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날 때부터 육으로 나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을 하고 사는 자로 태어납니다. 즉 사망에 처한 자로 태어나는 것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육신으로 난 자가 스스로 영을 좇아가고 영의 생각을 하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결국 인간은 날 때부터 육신을 좇아 살게 되어 있고 영은 거부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런 인간이 어떻게 영을 좇아갈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영을 좇아간다는 것은 내 스스로 영을 선택한다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생각할 수 있는 자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의 일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곧 영을 좇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육신의 일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육신을 좇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먼저 육신이란 무엇을 말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천지 창조를 보면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말에 대해서 의견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생령이 되었다는 것은 단시 숨을 쉬며 살아있는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단시 숨을 쉬고 산다는 것이 인간이 창조된 이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몇 번씩이나 말씀을 드렸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숨을 쉬게 된 것은 그냥 살아있다는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모습으로 나타낼 수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생령입니다. 즉 사람으로서 생령의 상태는 영의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세상에 펼쳐낼 수 있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생령이 된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육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자기 육신을 생각했기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내 육체가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 같이 된다는 말에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앞으로 자기 육신에 기대를 걸어 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신이 상태입니다. 결국 영의 상태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살지만, 육신의 상태는 자기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이 주관하에 있다는 것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무시할 때 인간은 자신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주를 믿게 되고 힘을 의지하게 되고 세상 사람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것이 육신을 좇는 것이고, 세상을 의지하는 생각이 곧 육신의 생각입니다. 때문에 육신의 생각이 사망이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앞서 말씀드리기를 인간은 날 때부터 육신을 좇는 자로 난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의지하는 자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아담의 형상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가 자기의 주인 되어서 자신의 뜻과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힘씁니다. 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세상을 의지해야 합니다. 세상을 이용해야 합니다. 가령 취직을 하는데 친척 중 누군가가 대기업에 높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친척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친척을 이용해서 취직을 하고 그것으로 자기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생각,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의지하는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사망이란 천국과 단절된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육신의 생각은 생명이라는 문제 앞에서는 쓸데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 힘을 이용해서 자신이 존재하는데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것은 세상에서는 통용될지 모르지만 천국과는 단절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육신의 생각을 하지 말고 영의 생각을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천국을 알고 그 마음에 생명을 담고 사는 사람은 자연히 영의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천국을 마음에 두고 사는 사람은 결코 육신의 생각을 안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육신에 매인 자로서 세상의 것을 이용해서 존재하고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마음에 그리스도가 살아있는 신자라면 그것이 육신의 생각임을 알게 될 것이고, 결국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죄에 대해서 탄식을 하면서 예수님에게 자신을 맡기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역시 나는 주님 때문에 천국 가는 자입니다 나는 뭘 해도 그것은 가치 없는 것이고 오직 예수님의 피만 가치 있습니다'라고 할 때 그것이 영의 생각이고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생명 안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7절에 보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나님과 원수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가능성을 포기하게 합니다. 즉 육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의지하게 하는 것이 법입니다. 이 법에 굴복치 않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가능성을 두는 것이고 내 힘으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생각은 '인간은 할 수 없다'는 말에 반발을 하게 됩니다. 법을 주면 그것을 내 힘으로 지켜보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원수된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만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것이 사망의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영의 생각이 생명이 되는 이유는 확실합니다. 자기 육신을 의지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데 그분을 의지한다는 것은 곧 생명 안에 있음을 말합니다. 내 육신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육신으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육신으로부터의 자유함은 평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이미 하나님과 원수된 것인데 어떻게 육신의 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자들이 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느니 헌금을 많이 하면 기뻐하신다느니 주일을 지키면 기뻐하신다는 말을 하는 것은 결국 육신을 쫓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입니다. 내가 잘하고 있으면 구원이 확실한 것 같고 못하면 구원에서 멀어진 것 같은 생각들이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못하는 육신의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