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31-32 무슨말하리요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미리 예정하신 것에 대해서 말씀을 사는 것이고, 신자는 예정이라는 말 앞에서는 자신의 의를 포기할 수밖에 없음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미리 예정하셨다는 것은 기능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즉 무엇을 위해서 미리 예정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29절에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으로 밝혀집니다. 즉 미리 정하시고 부르신 것은 예수님을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 되게 하기 위해서지 우리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 일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미리 정하신 것도 우리의 구원이 기초가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기초가 된 것이고, 우리를 부르신 것도 예수님 때문에 부르신 것이고, 의롭게 된 것도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주어져서 의롭게 된 것이고, 영화롭게 된 것도 맏아들 되시는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되었기 때문에 그 영광이 우리에게 주어져서 영화롭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 되게 하시기 위해서 미리 우리를 정하시고 불렀다는 것은, 우리가 부름을 입고 신자되고 교회로 나오게 된 모든 이유와 목적이 오직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것은 오직 예수님 중심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따라 살아가는 자로 택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만 영화롭게 하라고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일에 대해서 우리는 뭐라 반문할 수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일을 인정하고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고 계시기 때문에 인간 편에서 만들어 낸 일을 가지고 하나님이 일이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기독교적인 일이라고 해도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즉 부르심을 입은 형제들이 진심으로 '주님만이 참된 아들이시고 주님만이 의로우시고 주님만이 영광 받으셔야 할 분입니다'라는 고백으로 그리스도께 나오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택하신 자들을 이렇게 만드시겠다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 일에 대해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31절에 보면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미리 정하시고 정하신 자들을 부르셔서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것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 자신만이 말씀할 수 있는 것이지 인간은 다만 침묵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착하기 때문에 택하신 것도 아니고 의롭기 때문에 의롭다 함을 받은 것도 아니고 태어나서부터 죽기까지 불의함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의롭다 하셨기 때문에 의로운 자로 여김 받게 된 것이라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인간으로서는 할말이 없을 뿐입니다. 단지 왜 이렇게 하셨는지,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서 알아갈 뿐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정하셨다는 것은 인간의 착함과 의가 하나님의 결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9:11-13절에 보면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 자식이란 에서와 야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셨습니다. 하지만 야곱이 사랑할만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고 에서가 미워할 만해서 미워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태어나기도 전에, 선과 악을 행하기 전에 사랑할 자와 미워할 자를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우리는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선악을 보시고 택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 역시 우리의 선과 악을 따져가면서 택함의 여부를 계산해서는 안됩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바라보는 것이지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자신을 바라보게 되면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는 자신감과 떳떳함을 가질 것이고,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는 불안해하고 초조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직 주시는 분이시지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땅에 우리가 드려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그것을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성경을 읽고 공부한다고 해서 받으시겠습니까?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로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부를 인간에게 쏟아놓으신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땅에 하나님이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 아들과 비교할만한 가치 있는 것이 있습니까?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다고 해서 하나님의 아들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과 비교될 가치 있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어떤 목사는 '하나님은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에게 내어 주셨는데 왜 여러분은 자기 것을 아끼려고 하고 하나님께 내어놓지를 않는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끼셨던 아들과 우리가 아끼고 있는 돈이 서로 비교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구상에 있는 돈을 다 끌어다가 바친다고 해도 하나님이 아끼셨던 아들과는 비교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는 것인데 어떻게 예수님과 돈을 비교할 수 있습니까? 그 렇기 때문에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준다는 말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내어 놓으셨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놓으셨는데, 그 댓가로 인간에게 요구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택하신 것은 아들을 내어준 댓가로서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라고 택하신 것입니다.

아들을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만 그 아들을 믿고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냐? 그러니까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어야 한다는 말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은 32절에서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는 말씀에 어긋나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아들을 보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고, 십자가에 달린 것이 예수님의 일이라면, 그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사람이 해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도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은 아들을 내어 주실 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신 분입니다.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셨다는 것은, 예수님을 주시고 예수님과 함께 병고치고 방언하고 귀신 쫓는 힘을 주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들과 함께 주어지는 은사는 믿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들을 보내심과 함께 아들을 믿고 아들을 영화롭게 하고 아들을 기뻐하는 능력까지 함께 주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고 인간은 단지 받아 누리는 존재입니다. 받아 누리는 존재로 살아라고 우리를 택하셔서 부르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 '그럼 우리보고 뭘 하란 말입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것입니까?'라는 반문을 하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도 '그런즉 우리가 이 일에 대해서 무슨 말하리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오직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살아가라고 부름 받은 자가 곧 신자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런 말에 대해서 '그래도 신자가 전도도 하고 선교사도 보내고 뭔가 해야 지구상에 예수를 믿는 자가 늘어가고 기독교로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것이지 그냥 가만히 받기만 한다면 될 일도 안될 것이 아니겠습니까?'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언제 기독교로 세상을 정복하라고 하셨습니까? 그것은 인간의 야심이고 포부이지 하나님의 야심도 아니고 포부도 아닙니다. 인간이 전도를 안하며 교인수가 안늘어 간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전도도 안하고 있는데 교회가 부흥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부흥되는 것은 인간의 일이지 하나님의 일은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자꾸 인간의 일에 하나님을 결부시키지 마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기독교라는 종교의 일이라고 해서 하나님을 위한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극히 기독교적인 것에 죄가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시고, 우린 단지 받아 누리는 자입니다.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시고 그 아들을 믿고 의지하고 영화롭게 하는 믿음이 능력까지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십시오. 이런 은혜와 사랑 안에 살게 된 자는 오직 택한 자밖에 없습니다. 신자로 부르신 것에 더욱 감사하시면서 인생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함께 선 자리에서 돌아보십시오. 그럴 때 섭섭한 것도 있을 수 없고 부족한 것도 있을 수 없고, 오직 넘치는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밖에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