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9:22-23 그릇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이 긍휼이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강퍅케 하실 자는 강퍅케 하신다는 말씀에 대해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의문과 그 의문에 대한 답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강퍅케 하실 자를 강퍅케 하신다고 할 때, 이것이 마치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도록 하시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기 때문에 인간이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인간을 심판의 자리로 밀어 넣으시는 하나님으로 오해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의문에 대해서 답하기를 긍휼히 여기시고 강퍅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권이라는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리기를 인간에게 강퍅한 마음이 없었는데 하나님이 강퍅을 집어 넣으셨다면 하나님은 인간을 죄짓게 하시는 분이시고 심판으로 밀어 넣는 분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강퍅한 인간이고 죄인입니다. 애초에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고 강퍅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에게 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22절에 보면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의문이 또 하나 등장을 합니다. 세상에는 긍휼의 그릇으로 부름 받은 자가 있는가 하면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한가지 의문은 무엇 때문에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에 대해서 참고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이 있다'고 하시니까 '그렇다면 이왕 멸할 것 빨리 멸해버리지 왜 그냥 놔두고 있는가?'라는 반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인간의 오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왕 지옥 보내기로 작정한 것 빨리 보내버리지 뭘 기다리느냐? 지옥 보내려면 보내봐라'는 식으로 인간의 오기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노의 그릇에 대해서는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이들은 진노의 그릇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하나님을 믿는 자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라고도 얘기하지만 본문의 내용상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아무리 기다린다고 해도 그 생각을 스스로 바꾸거나 고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관용으로 기다리신다고 해서 '내가 진노의 자식인데도 하나님은 나를 지옥으로 보내지 않고 내가 돌아오기만 기다리시는구나. 내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면 안되지'하면서 하나님께 돌아올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미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도 않으신다면 무엇을 기대하고 기다리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진노의 그릇도 하나님이 쓰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노의 그릇을 통해서 하나님의 관용을 드러내시고, 긍휼의 그릇에 대해서는 긍휼의 그릇으로 부름 받은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즉 진노의 그릇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용과 영광의 부요함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겔 18:23절에 보면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겔 33:11절에도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제가 앞서서 말씀드리기는 하나님은 진노의 그릇이 돌이킬 것을 기대하고 오래 참으시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의 말씀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악인이 그 길에 돌이키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진노의 그릇이 돌이킬 것을 기대하고 오래 참으신다는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돌이키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은 다만 하나님의 마음이 이렇다는 것을 말씀하실 뿐이지 실제로 악인이 돌이킬 것을 기다리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하나님의 기쁨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자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인입니다. 인간은 날 때부터 자기 기쁨을 위해서 사는 자질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러한 인간이 자기 기쁨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살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악인이 돌이키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기쁨이지만 그러한 기대는 하지 않고 계신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도 뭔가 의문의 찌꺼기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면 모든 악인이 죽지 않도록 도우시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긍휼히 여길 자만 긍휼히 여기시고 나머지는 강퍅케 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모든 악인이 죽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곧 진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하고자 하시는 자만 긍휼히 여기신다고 말씀을 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고 반발이 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혼란입니다.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으로 생각을 하십시오. 즉 중요한 것은 악인을 살려내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에 제대로 증거 되는 것입니다. 23절에서 말한바와 같이 오래 참으심은 하나님의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래 참으시는데 여기에 대해서 할말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을 심판하시는 것이 취미가 아닙니다. 악인이 악에서 떠나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인간은 스스로 악에서 돌이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기쁨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악인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관용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관용에 대해서 무시해 버립니다. 관용으로 인해서 심판이 보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심판이 없는 것처럼, 심판이나 재림이라는 것은 단지 기독교라는 종교 단체에서 주장하는 교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여겨버립니다. 교회 안에서조차도 마치 심판이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죄에 대해서 심판이 보류되어 있는 것으로 인해서 죄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담대한 마음을 가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긍휼의 그릇으로 택한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십니다. 즉 긍휼의 그릇으로 부르신 것은 그들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긍휼의 그릇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오래 참으심 속에서 하나님의 관용을 알게 되고, 그 관용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이 우리를 살렸다는 것을 증거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긍휼의 그릇은 진노의 그릇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관용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으로 구분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긍휼의 그릇은 자신을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관용 속에서 은혜와 자비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두면서 자기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자랑하고자 애를 쓰게 됩니다. 오래 참으신다는 것 때문에 죄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담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용 아래 있는 세상이 관용을 무시하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하나님의 은혜에 두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증거 하는 신자, 그가 바로 긍휼의 그릇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는 악한 자인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긍휼과 자비를 알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에게 진노의 그릇이 보여지는 이유 역시 여러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부요한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한 것임을 잊지 마시고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의 마음이 평안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