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9:27-29 남은 자

27절을 보면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별 느낌 없이 읽고 있지만 만약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이라면 경악을 금치 못할 엄청난 말씀입니다. 27절의 말씀은 한마디로 말해서 '이스라엘 너희가 바다의 모래 같이 많다고 해도 오직 남은 자만 구원을 얻을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사야의 이 말을 인용을 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남은 자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남은 자가 누구냐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부가 아니라 남은 자만 구원을 시키는 하나님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9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은 '씨'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6-8절에서도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자라야 네 씨라 칭한다는 말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계속 강조하는 것은 씨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길 자 불쌍히 여길 자, 강퍅케 할 자가 다 하나님에 의해서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남은 자만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이 이스라엘에게는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 스스로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은 이스라엘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임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인용한 사 10:22-23절을 보면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서 이스라엘은 둘로 구분됩니다. 남은 자와 훼멸 되기로 작정된 자입니다. 그리고 이미 작정되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끝까지 행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28절의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훼멸하기로 작정하신 이스라엘 안에 남은 자를 작정하시고 그들을 이끌어 내시는 것입니다. 이들 남은 자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의 자녀는 인간의 신앙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러한 말들이 온전히 들려질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훼멸하기로 작정하셨다는 말이 그들에게 이해될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훼멸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며 분노하는 것이 이스라엘로서 당연한 반응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몰랐던 것은 구원은 오직 여호와로 인해서 주어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이스라엘이라는 혈통 안에서 구원이 되어지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혈통을 보존하고 유지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으로서의 증표인 율법과 의식을 행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입으로부터 '남은 자'라고 하는 충격적인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면서 남은 자만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앞에서 계속 강조했던 말에 대해서 구약 선지자의 말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은 신약에 와서 새롭게 등장한 구원 방식이 아니라 이미 구약 때문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즉 남은 자만 구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 앞에서 우리가 무슨 할말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은 자만 구원하시겠다는데 거기에 대해서 우리들이 무슨 불만을 내세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남은 자만 구원하시겠다는 말씀 앞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럼 내가 남은 자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남은 자만 구원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작정하심이라면 우리들 스스로 구원을 이루어보겠다고 애쓰는 것은 잘못된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남은 자만 구원한다'고 하니까 남은 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찾아서 그 모습을 스스로 만들어 내려고 하기도 합니다. 즉 자신의 노력과 애씀을 통해서 남은 자의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접근하려고 남은 자의 흉내를 내는 것입니다. 즉 자기 구원을 위해서 남은 자되려고 애쓰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은 자란 인간들로 하여금 남은 자에 포함되도록 힘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모든 노력과 애씀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작정으로 되어진다는 것만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29절에 보면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합니다. 남은 자 역시 그들의 신앙이 좋아서 남은 자로 작정된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하나님이 씨를 남겨 두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남은 자냐 아니냐는 것은 속에 하나님이 남겨 주신 씨가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씨가 없다면 그가 아무리 신앙이 좋아 보인 것 같다고 해도 그는 소돔이고 고모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라는 말은 하나님이 씨를 남겨 두지 않았다면 우리가 바로 소돔이고 고모라와 같은 꼴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이 남겨 두신 씨 덕분이지 결코 우리가 뭔가 잘해서 이루어낸 대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남은 자가 누구입니까? 그는 바로 '하나님이 남겨 두신 씨로 인해서 살았다'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남겨 두신 씨가 아니면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당할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히 자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남은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남은 자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불쌍히 여기심으로 구원받았다는 말만 외칠 뿐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남기신 씨, 즉 예수님으로 인해서 남은 자된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남겨 두신 씨로 인해서 남은 자가 되었다면, 남은 자로서 바라보고 자랑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은 오직 씨에 대한 것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이 남겨두신 약속의 씨를 빼버린다면 우린 아무것도 아닌, 다만 멸망당할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 어떠한 거룩으로 옷입고 있고 그 어떠한 행실과 업적을 쌓아두고 있다고 할지라도 씨가 아니라면 우리는 멸망당할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실과 신앙을 보고 부르시거나 불쌍히 여기신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작정하심이었음을 여러분이 살아가는 날 동안은 추호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귀한 분은 예수님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유능하다고 할지라도 그 인생에 예수님이 없다면 그는 멸망당할 자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과연 이런 심정으로 자식을 대하고 세상을 대하고 살아갑니까? 우리가 아무리 돈을 벌고 직장에서 승진하고 출세했다고 해도 예수님이 없다면 그 인생은 망하는 인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과연 이 사실을 진심으로 마음에 두고 살아가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세상이 부러워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없는 인생은 이미 멸망인데 무엇 때문에 멸망의 인생을 부러워합니까? 그런데도 멸망의 인생이 부럽다면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예수님만 있으면 된다'는 심정으로 살아가지를 못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 인생에서 얼마나 귀한 분인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알고 난 뒤에 예수님을 알리기 위해서 동네로 뛰어갈 때 물동이를 버려두고 갔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었을 때의 감격과 감사와 놀라움이 그 여인으로 하여금 동네 사람들에게 달려가게 한 것이고, 손에 있던 것조차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부럽지 않으십니까?

세상 것을 거추장스럽게 여겨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미 가장 귀한 것이 나에게 주어져 있다는 넉넉함으로 인해서 이 땅의 것들이 좋아 보이지 않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까? 진심으로 주님을 발견한 자로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주님이 바로 나의 생수 되시는 분임을 알게 된 자로서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지, 주님이 내 인생에서 가장 귀한 분이시고 주님 때문에 내 인생은 이미 성공한 분임을 깨달은 신자로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오늘 다시 한번 조용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남은 자는 오직 그 속에 주님이 계시는 분임을 아시고, 과연 내 속에 주님이 계시는지 여러분의 삶의 하나하나를 통해서 스스로의 마음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