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0:2-4 율법의 마침

출납 장부에는 지출과 수입을 기록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지출과 수입을 잘못 기록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겠습니까? 수입을 지출에 지출을 수입에 기록하는 실수를 하게 된다면 결국 잘못된 통계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가령 100원이 있는 사람이 100원을 지출했는데 수입 면에 100원을 기록한다면 결국 수중에는 한푼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장부에는 200원이 남아 있는 것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잘못된 장부 기재에 대해서 전혀 의심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수중이 돈이 없음을 발견하고서야 그 잘못됨을 장부를 통해서 발견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 대해서 이러한 잘못된 장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기입을 해야 하는 것을 자기 자리에 기입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할 것은 자기에게로 돌려버리는 것입니다. 그 결과 실제로는 전혀 없는 의가 장부상으로는 가득 쌓여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삶에 있어서-그것이 신앙적인 문제이든 아니면 평소 살아가는 삶의 문제이든-내 자리에 끌어다 기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직장을 다니고 돈을 벌든, 장사를 해서 돈을 벌든, 자식을 잘 키웠든, 교회가 크게 되었든 그 모든 것이 되어진 이유는 하나님의 자리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서 기입이 되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자리에 '내 힘과 능력'으로 기입을 해 버린다면 비록 장부상으로는 내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이 많이 있을 수 있지만, 실제 하나님 편에서는 빈깡통일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되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앙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결과이고, 회개하게 되어짐도 하나님의 자비의 결과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살아가는 것이 곧 신앙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신앙을 너무 동적으로만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된 자로서의 행동을 생각하지 않고, 단지 행동 자체만을 가지고 신앙으로 판단을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리가 아닌 인간의 자리에 자신의 의를 기입하는 것과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는 하나님의 진노가 쌓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부에 자신의 의가 차곡차곡 쌓여지고 있는 것을 실제 자신의 의가 쌓여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잘못 기입된 장부는 착각만 남길 뿐입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우리의 장부에서 잘못된 것을 하나하나 찾아서 바른 장부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예수님이 오심으로 율법은 마침이 되었으니까 이제 예수님을 믿는 이상 율법은 필요가 없다'는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즉 율법의 자리에서 아예 율법을 송두리째 뽑아 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만 남겨 놓으면 그것이 곧 복음인 줄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뽑아 버려야 비로소 복음이 되는 줄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뽑아 냄으로서 복음만 남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없애는 것이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오셨으니까 이제 율법은 뽑아서 없애버려라는 의미의 말씀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4절의 말씀은 달리 말하는 이런 뜻입니다. '율법의 목표는 그리스도이니 이는 믿는 자 모두에게 의가 되기 위함이다'는 것입니다. 즉 율법이 추구하는 것은 행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율법이 추구하고 목표하는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이지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율법이 그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이제 그 역할이 끝난 이상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율법의 의미를 모르는 잘못된 생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의 목표는 하나님의 의에 있습니다. 율법으로부터 의가 온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의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으로부터 의가 온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율법 안의 의를 좇는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곧 그리스도의 의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진정한 율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정한 율법을 추구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것으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절에서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몰랐다는 것은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율법이 목표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리에 자기들의 의를 차곡차곡 쌓아갔던 것입니다. 오직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 힘을 썼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심으로 율법을 아는 자는 누구입니까? 진정으로 율법을 행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애써 율법을 무시하는 자입니까? 애써 율법을 피하고 율법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까? 앞서 말한 대로 율법을 오해하는 것은 율법을 실천함으로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는 자도 해당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 곧 복음을 따르고 신앙인 것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순종하면 되지 율법에 순종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특히 복음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런 분위기가 많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율법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인간의 죄악 됨과 불의함을 깨닫고 율법을 통해서는 의가 나올 수 없음을 깊이 자각하고 하나님의 한 의를 바라보고 그 의에 복종하게 하는 것이 율법의 목표이고 율법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율법에 순종을 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순종을 해야 한다면 율법에 대한 순종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결론은 율법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요구이고 신자된 자에게 있어야 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율법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율법의 항목 하나하나를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율법이 목표하는 바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순종은 의에 대한 복종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고 자신의 의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이 곧 율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의에 복종한다는 것은 자신의 불의함을 철저하게 깨닫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입으로는 자신의 불의함을 외치면서 그리스도 앞에서 회개함이 없다면 과연 의에 복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율법을 외치고 실천을 강조하는 자를 향해서는 비복음이라고 목청껏 외치면서 왜 그리스도의 의에 복종하지 않고 있는 자신을 향해서는 비복음이라고 외치지를 못합니까? 오늘날 복음을 말하고 있는 분들을 향한 저의 조그마한 우려는 '자기 성찰'이 희미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결론을 내리기가 조심스럽지만 복음을 말하는 분들의 외침을 볼 때 과연 '자기 성찰'에서 외쳐지고 있는 말인지 의심스러워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밖을 향해서 외치는 것은 부지런 하지만 내 안에 외치는 것에 게으르다면 그것은 뭔가 장부 기입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을 행한다는 것을 안식일을 지키고 제사를 드리고 십일조를 지키는 실천으로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행함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지 애당초 율법이 요구하는 바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율법의 행함은 무엇입니까? 앞서 말한 대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분 앞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다고 말합니다. 갈 3:23-24절에 보면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합니다.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한다는 것이 단지 교회를 다니게 한다는 말이겠습니까? 그냥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생각하게 한다는 뜻이겠습니까?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에게 복종하지 않고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을 행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을 뜻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밀쳐 내는 것이 의가 아니고 복음이 아니라 율법이 목표하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삶이 곧 의고 복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