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1:11-12 실패와 부요함

하나님은 구원에 있어서 인간에게는 그 어떤 해결 방법이 없음을 말씀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법칙을 세상 속에 굳게 세우기 위해서 일하심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은혜의 법칙만 바라보고 나오는 자가 누구인가를 찾습니다. 은혜를 아는 자가 은혜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되고 겸손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것, 이것이 겸손이며 은혜를 아는 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성령을 보내신 사건들 모두가 인간에게는 아무런 방도가 없음을 전제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아무런 방도가 없다면 인간이 하는 그 어떤 행위도 믿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은혜가 은혜 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인간의 행위도 긍정적인 것으로 용납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악한 행위를 했다고 해서 구원의 테두리 밖으로 몰아내어서는 안되고 선한 행위를 했다고 해서 구원의 테두리 안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실패했다고 해서 그들을 구원의 테두리 밖으로 몰아내어서는 곤란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11:1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린 것으로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면 바울 자신도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사람이고 베냐민 지파인 틀림없는 이스라엘 사람인데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것을 언급합니다. 11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이방인이 실패함으로 인해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되기 쉽지만 본문의 말은 그런 의미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실패함으로 인해서 이방인에게 구원에 주어지게 된 것이라면 이스라엘이 실패하지 않았다면 이방인에게 구원이 주어질 기회는 상실되고 말았을 것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에는 이스라엘만 있던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애초부터 이스라엘만 선택하셔서 그들만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로 하셨는데 이스라엘이 실패했기 때문에 꿩대신 닭이라고 이방인중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하고 그들을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실패했기 때문에 구원이 이방인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애초부터 구원의 계획에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구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법칙은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는 자입니다. 누구든지라는 것은 주 예수를 믿는 것에는 어떤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든 이방인이든 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이 이방인에게는 이해가 될 수 있지만, 정작 이스라엘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주 예수를 믿지 않아도 충분히 구원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미 구원받은 백성임을 증거 하는 조건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에 또 따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말에 대해서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에게는 이방인에게든 동일하게 주 예수를 믿으라고 말씀하는 것은,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실패입니다. 그들이 경건한 행위에 대해서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경건한 행위로 되어지는 구원이라면 이방인은 구원의 근처에도 다가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처음부터 구원은 이스라엘에만 국한 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이방인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이 실패했기 때문에 이방인에게 구원이 넘어온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이방인도 구원의 계획에 들어있었다면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의 실패를 우리 앞에 있게 하시는 것입니까?

12절에 보면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하고 넘어진 것이 오히려 이방인에게는 잘된 일이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넘어짐과 실패로 인해서 온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가 어떠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세상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에 하나님이 남기신 자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즉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서 약속 안에서 형성되어온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해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이지 인간의 행함이 아니고 인간에게 그 어떤 조건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님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실패로 배울 수 있는 이방인의 부요함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실패에 대해서 책망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곧 우리의 실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실패함과 넘어짐으로서 다 끝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실패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실패한 자 아닙니까? 예수를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를 전하는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실패한 이스라엘 안에도 은혜의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방인은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해서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확실한 답을 내릴 수가 있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확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렀다'는 말의 의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했다고 해도 이방인의 구원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애당초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되어진 것이지 이스라엘이 잘하고 못하고 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실패했다고 해서 '이스라엘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근거는 처음부터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실패와 성공과는 상관없이 하나님 편에서 하시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완전히 실족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은혜를 따라 택하심을 받은 남겨진 자들을 부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를 보십니까? 이스라엘의 실패의 자리에 바로 여러분 자신이 서 있음을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바로 오늘 우리들의 실패를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경건의 행위를 고집하고, 그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짐을 무시하고 나아가서 예수님조차 십자가에 못박은 그들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했다고 해서 이방인이 우리는 실패하지 않은 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미리 앞서서 우리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을 미리 예고편으로 보여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에게 대해서 잘난척할 수 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누군가가 믿음에 실패한 모습을 보였다고 할 때, '나는 저 사람처럼 실패하지 않았다'라는 생각으로 자기 믿음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잘난척한다면 그야말로 실패한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지 않습니까? 그들은 창녀 세리 등을 죄인 취급하면서 그들을 실패한 인생으로 취급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실패한 자들이었습니다. 은혜로 되어짐에 대해서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실패한 자를 부르셔서 일을 맡기시는 것은 인간은 실패할지언정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는 이스라엘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복음은 중지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가 이방인에게 복음이 증거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상식대로라면 이스라엘이 믿음에 대해서 성공을 하고, 그리고 이스라엘로 인해서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복음은 실패하지 않고 이방인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에 실패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실패에 대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실패한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고 은혜로 회복시키시며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시는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되어진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인간의 그 어떤 실패도 하나님의 은혜를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알 때 우리의 믿음은 참으로 부요할 것입니다. 은혜가 주어진 그것으로 이미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패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해도 우리는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인간이 지금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은혜로 되어진 것입니다. 자신의 실패를 알 때 이 은혜가 보여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실패를 극복하고 우리를 그리스도안에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