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1:33-36 하나님의 지혜

신앙의 원인과 결과는 오직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신앙의 결과는 하나님에게 두되 원인은 사람에게로부터 출발을 시키려고 합니다. 사람이 한게 있으니까 하나님이 그에 따른 보상을 하시거나 심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이 원인이 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결과를 끌어내었다는 것은 성경에서는 용납하지 않는 생각입니다. 가령 '십일조를 안할 때는 돈도 잘 안벌리고 집안에 우환이 생기더니 십일조를 잘하니까 일이 잘되고 가정이 평안해졌다'라고 한다면 결국 십일조를 한 인간의 행위가 원인이 되어서 복이라는 결과를 끌어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에 끌려 다니면서 복을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말씀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는 오직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33절에 보면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깊으신 하나님의 지혜와 부요하신 지식과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판단과 인간이 찾을 수 없는 하나님의 길에 대해서 찬양을 합니다.

앞에서 사도 바울은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에 하나님의 택하심이라는 방법이 동원된 것은 애초부터 인간의 행위에는 구원을 받을만한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순종치 않음에 가두어 두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순종하고자 하는 인간을 억지로 순종을 못하도록 막았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는 복음에 순종할 수 없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구원은 오직 긍휼로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인간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순종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순종할 수 없는 것이 말씀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주신 이유는 모든 인간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두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말씀은 인간의 실천의 대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를 통해서도 말씀이 실천되어지고 행하여진 적이 없습니다. 어떤 인간도 말씀 앞에서는 순종치 못함만 드러내었을 뿐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을 베풀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지혜, 지식이라고 말하고 인간이 찾을 수 없는 하나님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 반대편에서 행동하십니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하나님의 행동을 측량할 수도 없고 판단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인간의 생각 반대편에서 행동하신다는 명확한 증거물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인간도 생명의 길이 십자가에 있음을 눈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눈치를 채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힘을 다해서 십자가에 있는 생명의 길을 부인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생각했던 생명의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법에 대해서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사 잘 드리고, 제물을 아낌없이 바치며 살면 그것이 곧 생명의 길인 것으로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생명의 길이 있는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착각은 오늘날도 난무하고 있지 않습니까? 생명의 길로서 십자가가 분명히 제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생명의 길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몸으로 단지 십자가에만 있으면 되는데 사람들은 빈몸이라는 것에 대해서 못마땅함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빈손으로 오는 자를 싫어하실 것이라고 제멋대로 상상을 하고서는 잔뜩 뭔가를 들고 나오려고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말하되 생명의 길을 찾지 못한 어리석은 인간의 종교생활인 것입니다.

생명의 길이 우리의 행함과 십자가가 합작된 열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리스도로 인해서 생명의 길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서는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이 기쁜 소식에 대해서 반감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지혜를 깨닫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고전 1:24절에 보면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그리스도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과연 누가 원했습니까? 세상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하나님에게 요청하기라도 했습니까? '하나님 우리는 의에 대해서 너무 무능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의되시는 분을 보내셔서 그분으로 인해서 구원을 얻도록 해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해서 그리스도가 오신 것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언약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고 살았던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34,35절에서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라고 말씀하는 것도 그런 내용입니다. 누가 과연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서 알아준 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드린 자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우리가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의 것이 되고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것이 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36절에서도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이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만물이 없고 주께로 돌아가지 않을 만물이 없습니다. 인간으로부터 나온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자기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세상 만물 안에 있다는 것입니까 없다는 것입니까? 없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새삼스럽게 하나님에게 바치고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바치나 안바치나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마음대로 주셨다가 가져가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 있던 것이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는 아무런 할말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이 다시 가져가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모든 원인과 결과는 오직 여호와께 있음을 말씀하고 있음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일에 보탬이 되거나 도움이 된 적이 없습니다. 아예 하나님의 생각이 어떤 것이며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도 몰랐던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들에게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서 아무런 할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할게 있다면 단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과 공의로우심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되어 있는 삶은 우리를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하신 분이며 긍휼이 풍성하신 분인가를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 있어서 삶의 유익이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사랑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신다는 것을 알아 가는 것에 삶의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머리 숙이며 진심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살아가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에게서 나온 은총이며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원한적도 없고 필요성을 느낀 적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그리스도 앞에 세우시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자가 되게 하신 것만큼 큰복이 없습니다.

여러분, 생명의 길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인정하십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곧 생명의 길 되신다면 우리에게서는 그 어떤 행위도 생명의 길에 있어서 보탬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지혜와 믿음은 누구로부터 나온 것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이 긍휼로 말미암아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신자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하나님 되신 분이십니다. 영광 또한 스스로 받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일에도 하나님께 보탬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신자의 겸손입니다. 이 겸손이 없다는 그는 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자기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결과를 받아 내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바치지 않고 아무 일도 안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는 전혀 손상이 없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인간 쪽에서 뭔가 해야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진다는 발상은 34절에서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라는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있고 하나님을 위하여 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진심으로 아멘 하는 신자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심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인간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