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강) 디도서 2:6-10  하나님의 교훈을 위해

 

<본문>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디도서 2:6-10)



<설교>

마태복음을 보면 ‘이루려 하심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천한 신분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나, 오시자마자 헤롯을 피해서 도망을 쳐야 한 것이나,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이루어졌다는 것인데,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셨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결국 예수님이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고 빛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에게는 말씀 하나하나가 고난으로 다가왔습니다. 즉 예수님은 순종할 만한 말씀에 순종하신 것이 아니라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말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 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에 순종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자는 예수님의 일에 부름을 받음으로써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가를 증거할 역할자로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말씀에 순종치 않는 것은 말씀을 훼방하는 것이 됩니다.



본문은 지난 시간 이어서 젊은 남자와 종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젊은 남자와 종들에게 이런 교훈을 하라는 것은 10절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교훈대로 살 때 신자에게 복이 주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위해서,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위해 신자가 존재하는 것이지 신자를 위해 말씀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전혀 반대로 생각합니다. 신자를 위해 말씀이 존재하고, 하나님이 계시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신자를 구원하기 위해 말씀이 있고, 신자로 하여금 바른 삶을 살게 해서 복을 받게 하려고 말씀이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일의 중심에 인간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기 위해 신자가 존재함을 도외시한 것입니다.



설령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신자가 존재함을 안다고 해도 내가 잘되고 뛰어난 사람 되는 것을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교훈이 빛나는 것으로 이해해 버립니다. 그래서 어쨌든 믿는 신자는 세상 사람보다 잘돼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자는 넘어지면 넘어진 가운데서, 실패하면 실패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자의 역할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잘 돼야 하나님의 교훈이 빛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 모든 관심을 두고 있는 증거인 것입니다.



6-8절을 보면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는데, 사도는 디도 자신이 선한 일에 본을 보임으로써 책잡힐 것이 없게 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신자를 악하다고 할 것이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세상으로부터 악하다는 비난을 받는 것이 곧 말씀을 훼방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교훈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맡은 청지기로서 합당치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항상 말씀을 거울삼아 자신을 살피며 자신의 가는 길이 바른가를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9,10절은 종에 대한 것입니다.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종은 상전에게 순종함으로써 상전을 기쁘게 해야 하고, 상전에게 대적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상전의 재물을 횡령하지 말고 오직 충성을 다하는 것이 종의 본분입니다. 오직 주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종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이 역할에 순종함으로써 말씀의 교훈을 빛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내용을 종합하면 신자는 자신을 위해 살 자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말씀을 빛나게 할 말씀의 도구로 부름 받았음을 알게 해 줍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겠습니까? 자신에게 돌아오는 대가가 전혀 없이 오직 순종과 헌신과 충성만을 요구하는 말씀들에게 관심이 있겠습니까?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반감이 일어나기 딱 좋은 내용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인 신자를 그런 존재로 부르셨다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이 그 길을 가셨고 우리에게 그 길로 따라오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손해 보지 않기 위해 거짓말하고, 부당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기 이득을 취하고, 남을 속여서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세상에, 비록 손해가 되더라도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해야 할 사람으로 부름 받았는데 이것을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은 돈으로 삽니다. 하지만 신자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가를 증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자를 돈 있는 자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긍휼이 있고 자비가 있는 자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원한 대로 만들어 주신다면 어떤 모습의 자신을 원합니까? 재벌입니까? 아니면 권력자입니까? 그러면 과연 그러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자가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 뜻을 안다면, 자신이 어떤 모습의 사람이든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할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소원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신자로서 정당한 소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빛으로 새겨지고 그 말씀이 나의 심령을 다스려서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나라가 증거되기를 소원하고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한다는 것은, 신자가 말씀을 실천해서 말씀을 빛내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시고 우리를 다스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고쳐가고자 하시는 그 뜻이 오직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엉뚱한 것을 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안다면, 그 뜻이 나의 뜻이 되어서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 사는 신자가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성령이 함께 신자의 온전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산다면 그가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해도 위선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그 믿음은 신자의 모든 삶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말씀을 보여줌으로써 말씀을 증거할 자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을 생각한다면 신자는 할 일이 많고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해도, 먹든지 마시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일을 해도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봉급만 받으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교훈을 빛내는 자로 남아야 하기에 할 일이 많고 바쁜 것입니다.



신자는 이것을 위해서 근신하면서,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돌아봐야 하고, 세상으로부터 악하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