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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강) 인간의 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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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28:1-7

대하 28:1-7>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280107.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아하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 동안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아니하고

2.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3.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4.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니라

5.그러므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아람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이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쳐서 크게 살륙하였으니

6.이는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이만 명을 죽였으며

7.에브라임의 용사 시그리는 왕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대신 아스리감과 총리대신 엘가나를 죽였더라

 

<설교 요약>

성도가 믿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완성되었기에, 성도의 믿음의 내용은 십자가로 증거된 예수님의 행하심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믿자라는 말만으로 믿음에 있다고 단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믿는다는 것은, 곧 인간의 행함에는 가치와 의미를 두지 않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의 행함은 전적으로 배제된 상태에서 예수님이 행하시고 이루신 일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참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에서부터 이야기되는 내용인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그의 자손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들이신 가나안 땅, 곧 약속의 땅이 이스라엘의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가도록 요구되는 땅이라는 점이 그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 전에 여러 가지 경고를 주십니다.

 

 

먼저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8:17-18)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고, "내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이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9:4-6)라고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가나안 족속의 풍습을 따르지 말라"(12:29-31)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능력이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부하는 자신들의 믿음을 의의 근거로 삼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을 신뢰해야 할 것을 보여줍니다.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의 믿음과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드러나는 긍휼과 자비를 증거 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의 의미를 따라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보여준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의지하는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선한 행위로 자기를 구원하는 방식이 전부였습니다.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들이 반복해서 드러낸 죄를 통해서 자신들의 본질이 행함을 자랑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이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데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본문은 요담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아하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않았다고 증언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따라 바알 우상을 만들어 섬겼고,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의 자녀들을 불살라 분향했습니다. 또한 산당과 작은 산 위, 그리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러한 아하스를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의 손에 넘겨서 크게 살육당하게 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우리는 아하스가 이전의 여러 왕보다 더욱 큰 악을 행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가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풍습을 본받아 자기 자녀들을 제물로 바쳐 불사른 것은 이전의 유다 왕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극심한 악행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유다를 아람과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는 심판을 내리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방 민족이나 적국을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여 이스라엘이나 유다를 치신 일은 아하스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하 12장에서는 르호보암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온 유다가 그를 따라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애굽 왕 시삭의 손에 그들을 넘기셨습니다.

 

 

또한 역대하 21장에서는 여호람이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따라 악을 행하고 산당을 세워 유다 백성을 미혹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신 일도 있습니다. 따라서 아하스에게 내려진 심판을 그의 악행이 다른 왕들에 비해 더 큰 것에 따른 결과로 이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물론 아하스는 이전 왕들보다 더욱 노골적이고 가증한 방식으로 우상숭배를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죄는 단순히 행위의 크고 작음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를 위해 이방인의 방식을 따르는 모든 불순종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죄로 규정되며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결과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하스의 심판은 특별히 더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받은 무거운 형벌이라기보다, 하나님을 버린 자들에게 이미 반복해서 나타났던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과연 우리의 현재 모습은 아하스보다 나은가?"라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아마도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두더라도 "적어도 자녀를 불살라 제물로 바치는 일만큼은 하지 않았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무리 죄를 지었다고 해도 아하스와 같은 사람은 아니며, 적어도 그보다는 낫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위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우리의 습관적 시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평가를 거부합니다. 성경은 죄인을 서로의 행위를 비교하여 누가 더 낫고 덜 나쁜지를 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든 인간을 하나님을 떠난 죄인으로 선언합니다.

 

 

그래서 우리 눈에는 아하스의 죄가 더욱 특별하고 충격적이고 가증하게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오로지 자기 유익을 쫓아 자기 뜻을 따르며 살아가는 죄의 본질에 있어서는 우리 역시 아하스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바른 시각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아하스보다 조금 나은 죄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필요한 죄인이라는 점에서 우리 역시 아하스와 동일한 자리에 서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 쉽게 동의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아하스의 악행과 비교하면 훨씬 가볍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것과 같은 끔찍한 악행을 생각하면, 우리는 자신을 그와 같은 죄의 범주에 두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도 죄의 경중에 따라 다르게 행해지는 것을 하나님의 공평으로 생각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성경은 죄를 인간의 행위만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아하스가 자녀를 제물로 바친 것은 자신에게 소중한 자녀를 바치면 신이 그 정성에 감동하여 소원을 이루어줄 것이라는 열망이 담긴 이방인의 방식이며,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인간 세계에서 대대로 이어지는 종교적 풍속이며 죄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자기를 위해 신을 찾는다는 점에서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아하스와 같은 행위가 없다 하더라도 나는 아하스와 다르다라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믿음을 위해서 우리를 아하스와 같은 사건 앞에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깨닫게 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죄인에게 베풀어지는 예수님의 피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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