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9 15:49

(18강) 하나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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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전 5:1-3

전 5:1-3http://onlycross.net/videos/ecc/ecc-050103.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2.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3.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설교>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가실 때 제자들은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11)고 말합니다.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신다는 말을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제자들이 목격한 하늘로 가신 그 장면, 그 모습 그대로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하늘로 가신 것을 보지 못한 후대의 사람들은 어떤 입장이 되는 것입니까? 하늘로 올라가시는 장면을 상상해 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막연한 상상 속에서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는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하늘의 영광은 온전히 드러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땅에서 행하셨던 모든 일이 하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비록 세상의 시각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고 하찮게 보인다 해도 결국은 하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음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믿음을 세상의 가치관으로 판단하면 안됩니다. ‘세상사는 일에 도움 된다 되지 않는다는 기준에 있게 되면 사람들은 인간에게 실용적이고 쓸모 있는 믿음을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연히 실용적이지 않는 믿음은 무시될 것입니다.

 

 

믿음은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시 오셨을 때 온전히 드러날 하늘의 영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늘 영광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우매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1절에 보면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고 말합니다.

 

 

구약에는 하나님의 집으로 불리는 성전이 있었습니다. 성전에 나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성전에서 제사하면 하나님이 받으시고 기뻐하신다고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쁨은 당연히 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지금의 세대와 다를 바 없는 지극히 인간적 발상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전도자는 우매한 자들이 행하는 악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집을 구약에서는 성전으로 이해했지만 성전 또한 하나님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 죄인인 인간의 손으로 지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의 손으로 지어진 성전이 성전으로 인정되고 거기에 하나님이 거하신다면 하나님을 찾는 인간은 성전을 지어 바친 공로와 의를 앞세우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청할 것입니다.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도 그러한 발상에 의한 것입니다. 자신이 바치는 제물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근거로 원하는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세계에 믿음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는다고 하는데도 다시 오심으로 이루어질 영광의 나라와 연결된 믿음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한 실용적인 믿음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는 자신의 공로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무지 없애버릴 수 없는 뿌리 깊은 습성입니다. 제사를 드리거나 제물을 바치면서도 자신의 잘함을 생각합니다. 잘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고 그것이 복으로 돌아온다는 자기만의 착각에 철저하게 붙들려 있습니다. 이러한 착각이 착각으로 드러나고 무너지게 되는 곳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11:17절에 보면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세워서 예언하신 집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실 아들로 인해 지어질 성전을 말합니다. 인간이 지은 성전에는 인간의 공로와 의로 가득하지만 아들이 손으로 지어진 성전에는 당연히 인간이 내세울 공로와 의가 없습니다. 다만 아들의 공로와 의만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아들이 지은 집에서 기도한다면 자연히 그 기도는 인간의 공로와 뜻이 포기되어진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집,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나타나는 믿음의 현상인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행한 모든 것을 자기 공로화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말씀을 듣고 있는 자신을 생각하며 자기 믿음을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온 것이 아니고, 말씀 앞에 나온 것이 아니라 저주 앞에 있으면서도 저주를 깨닫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낫다는 것은 말씀을 듣는다면 말씀으로 자신이 하나님께 나올 수 없는 저주의 존재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제물을 드리는 자리에는 자신의 공로만 생각될 뿐 저주의 존재라는 것은 전혀 깨달을 수 없게 됩니다.

 

 

10장에 보면 예수님을 영접한 마르다가 마음이 분주할 때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을 본 마르다는 예수님께 마리아에게 나를 도와주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보다 말씀을 듣는 것이 더 낫다는 비교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말씀을 듣는다면 그것은 저주 아래 있는 자신의 죄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고, 그 죄를 재신 죽음으로 용서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하지만 마르다처럼 예수님을 위해 수고한다고 생각하는 자리에서는 나는 잘하고 너는 못한다는 비교만 있게 됩니다.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말씀을 듣는 것을 좋은 편이라고 하시는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있는 자리에서는 인간의 의가 아니라 죄가 드러나고 예수님의 은혜가 기쁨이 되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발로, 스스로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2절의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는 말의 의미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하늘의 뜻에 의해 존재합니다. 하늘의 뜻이 세상에 나타나고 그 뜻에 의해서 끌려가는 것이 세상의 실상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고 인간이 땅에 있다면 인간은 하늘의 뜻에 순종해야 할 존재로 있는 것이지 자신의 뜻을 하늘에 내어 놓을 입장이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는 것을 자기의 뜻을 내어 놓으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뤄주시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말이 많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6:7)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죽음의 존재입니다. 하지만 신자는 하나님의 희생으로 하나님 앞에서도 살게 된 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희생을 알게 된다면 신자가 입을 열어 하게 되는 말은 하나님의 희생으로 살았다는 자기 고백일 것입니다. 자기를 위한 자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하게 하시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부족함을 느낍니다. 나의 뜻과 소원에 미치지 못한 부족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요청하는 것이 전부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산 자로 나올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누리도록 주신 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부족함인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을 말의 많고 적음으로 빗대어 말합니다.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의해 존재함을 안다면 자신의 꿈을 위한 자기 말을 하는 것이 악을 행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현실은 하나님이 뜻을 세우시고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Chapter 18

 

Before God

 

Keep thy foot when thou goest to the house of God, and be more ready to hear, than to give the sacrifice of fools: for they consider not that they do evil.

Be not rash with thy mouth, and let not thine heart be hasty to utter any thing before God: for God is in heaven, and thou upon earth: therefore let thy words be few.

For a dream cometh through the multitude of business; and a fool's voice is known by multitude of words. (Ecclesiastes 5:1-3 KJV)

 

(Sermon)

 

The disciples were looking up to the heaven as the Lord was ascending. Then, in the Book of Acts 1:11, it says, “Which also said, Ye men of Galilee, why stand ye gazing up into heaven? this same Jesus, which is taken up from you into heaven, shall so come in like manner as ye have seen him go into heaven.”

 

Most christians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verse as the Lord would come again in the same figure that the disciples saw Him. Then, what about the generations afterwards? They would have nothing else but having to try to imagine it, thinking it is OK to believe that He would come again.

 

When the Lord comes again, the glory of heaven will fully be revealed, meaning that what He did on earth was for the heaven’s glory. If so, although His work seemed trivial in the world’s point of view, it is to proclaim the glory of heaven.

 

That’s why we can’t evaluate the faith of believers in the common sense of the world. Otherwise, it would be seen only ‘useless’, resulting in ‘being ignored.’

 

Faith of believers is linked with the glory of heaven, which will be revealed when the Lord comes back. It is not for earthly benefits. Therefore, we ought to focus on the work of God, who gives the faith to such foolish people like us.

 

In Verse 1, it says, “Keep thy foot when thou goest to the house of God, and be more ready to hear, than to give the sacrifice of fools: for they consider not that they do evil.”

 

In the Old Testament, there is a place, called ‘the temple.’ The Israelites thought they would meet God, thinking God was pleased with their offerings, which led to a thought God would bless them with what they wanted. However, it is solely a man-centered thought. The Preacher says it is the evil mind of the silly.

 

Even though it is true that the temple was deemed the House of God in the Old Testament, it was not. The House of God can’t be built by the hand of man. Otherwise, the people would ask God for blessings they want by claiming their work done at the temple.

 

The silly give offerings to God in the same manner, thinking God would be pleased with what they do. It is the understanding of faith in the human society. People say they believe in His coming, but it is not the glory of heaven but their pragmatic part of life.

 

Our problem is ‘not giving up on self-righteousness.’ It is our deeply rooted nature in mind. We look at ourselves while offering to God, captured by the mind that God would give us back for what we did good. It is the House of God to destroy such thoughts of ours.

 

In Mark 11:17, it says, “And he taught, saying unto them, Is it not written, My house shall be called of all nations the house of prayer? but ye have made it a den of thieves.”

 

The House, which God said in the Book of Isaiah, is not by the hand of man but the temple, built by the Son, sent by God. Whereas the temple by man is full of man’s labor, there is nothing in the temple, built by the Son, but full of His work and righteousness. Thus, if one prays in the temple, one’s will and work is naturally subdued in the prayer. This is the phenomenon of faith in the House of God, ‘in Jesus Christ.’

 

As spoken earlier, christians tend to think their service as their righteousness. Even when hearing the Word of God, they justify their faith, looking at themselves. Yet, it is not to hear the Word of God. It is not to come before God but miserable under the curse while being ignorant of it.

 

That it is better for one to hear the Word of God means to have a chance to know one is the cursed being by hearing it. On the contrary, those who give offerings to God can’t have the chance but looking at themselves.

 

In Chapter 10 of Luke, we can see two women: Martha, being busy to serve the Lord and Maria, hearing the Word of the Lord. When Martha saw Maria, she asked the Lord to tell Maria to help her. Yet, the Lord says Maria chose the good part.

 

It doesn’t mean hearing the preaching is better than serving at church. Maria’s hearing the Lord gives her an opportunity to think she is a sinner, leading her to the grace of the Lord, forgiving the sin in her thanksgiving.

 

Yet, the seat of serving like Martha’s leaves nothing but comparing by saying, ‘I am doing better than you.’ We can learn what the Lord meant if we think of what can be the glory of God. It is because where the Word of God is reveals our sinful nature, leading us to the grace of the Lord in rejoicing, which can be the glory to God. That’s why Verse 1 says, ‘Keep thy foot when thou goest to the house of God’ because no one can enter it alone.

 

If we keep that in mind, we can know the meaning of Verse 2, “Be not rash with thy mouth, and let not thine heart be hasty to utter any thing before God: for God is in heaven, and thou upon earth: therefore let thy words be few.”

 

The world exists by the will of God. It is the reality of the world that God shows His will in the world and fulfills it accordingly. Thus, we must obey the will of God in the fact that God is in heaven and reigns us. Yet, it is our wrong doing that we would use God to fulfill our wills, making us have a lot of excuses and reasons.

 

That’s why the Lord says in Matthew 6:7, “But when ye pray, use not vain repetitions, as the heathen do: for they think that they shall be heard for their much speaking.”

 

Before God, all are dead. Yet, believers are the ones who have come to receive the life through the sacrifice of God. Therefore, knowing the sacrifice of God, what believers can say is nothing but the confession that they live by the sacrifice of God. It is by the Holy Spirit, not for themselves.

 

We always feel what we are given is insufficient, far from what we want. That’s why we always ask God to give us something we lack. However, if we think of the fact that we are alive before God by His sacrifice, the true insufficiency is that we are not enjoying what we are given in His infinite grace.

 

Living before God is uttered in the relation to voice and silence. If we know we are in the will of God, not ours, we come to realize it is a sin that we say our words for our dreams. Our reality is of God by His will. Therefore, believers are to say all things as the ones before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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