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4:31-37http://onlycross.net/videos/job/job-343137.mp4
<본문>
31.그대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죄를 지었사오니 다시는 범죄하지 아니하겠나이다
32.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나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하였는가
33.하나님께서 그대가 거절한다고 하여 그대의 뜻대로 속전을 치르시겠느냐 그러면 그대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그대는 아는 대로 말하라
34.슬기로운 자와 내 말을 듣는 지혜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내게 말하기를
35.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의 말이 지혜롭지 못하도다 하리라
36.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37.그가 그의 죄에 반역을 더하며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설교>
엘리후는 욥과 세 친구의 말에 대해 분노하는 것으로 자신의 말을 시작했습니다. 욥에 대해서는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고 한 것 때문이고, 세 친구에 대해서는 욥의 말에 대답하지도 못하면서 욥을 정죄한 것 때문입니다.
엘리후가 자기의 말을 시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내가 자세히 들은즉 당신들 가운데 욥을 꺾어 그의 말에 대답하는 자가 없도다”(욥 32:12)에서 잘 드러납니다. 엘리후의 의도는 욥을 꺾는 것입니다. 욥이 말을 잘못 했음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게 하는 것이 엘리후가 입을 열게 된 이유인 것입니다.
엘리후가 욥을 비난한 것은 자신을 의롭다고 한 것입니다(욥 34:5,6). 엘리후에게 그것은 정의가 아니고 선함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욥 34:4)라는 말을 합니다. 이것을 보면 엘리후에게 정의롭고 선한 것은 인간이 자신의 의롭지 않음을 알고 죄인 됨을 고백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31,32절을 보면 “그대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죄를 지었사오니 다시는 범죄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나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하였는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악을 행하였으나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옳은데 욥은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의롭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욥과 같은 악을 행한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욥이 일찌감치 고난의 이유가 자기의 죄에 있음을 인정하고 엘리후의 말처럼 ‘다시는 범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했다면 모든 상황과 논쟁은 세 친구와 엘리후를 만족시키며 종결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욥이 고난으로 인해서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할 줄 아는 신자 되었다고 칭찬할 것입니다. 하지만 욥의 입장에서는 그것으로 고난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믿음은 ‘어떻게 말하는가?’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는가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복음을 설명하는 말인가 아닌가라는 구분은 필요하지만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범죄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복음이 아니며 믿음의 증거가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엘리후는 욥이 어떤 말을 하는가에만 초점을 둡니다. 결국 욥으로 하여금 자신이 의도하는 말을 하게 하는 것으로 욥을 굴복시키겠다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또한 엘리후가 비록 하나님에 대해 뛰어난 논리를 펼친다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인간됨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무지한 자라는 결론을 내리게 할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욥을 향한 엘리후의 요구는 인감 됨을 알지 못한 무지한 요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하는 말은 그의 본심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말하고 예수를 말하지만 그것을 본심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는 신자라면 십자가를 말하고 예수를 말하는 자신의 모든 말을 위선으로 간주할 것입니다. 십자가를 말하나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원하지 않음을 본인이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범죄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는 말을 한다 해도 그 역시 어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함이거나 신앙적인 옳은 말을 했다는 것으로 원하는 무엇인가가 주어지길 기대하는 노림수인 것을 스스로에게서 간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띠라서 말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입니다.
36절에 엘리후는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고 말합니다.
욥이 자신이 범죄 했다는 옳은 말을 하게 될 때까지 시험이 멈추지 않고 계속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욥이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고 굴복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의 말일 것입니다. 계속되는 시험 속에서 결국 자신이 죄 지었음을 인정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드러나는 것은 엘리후의 어떤 말에도 설득되지 않은 욥일 뿐입니다.
엘리후의 말이 논리적으로 부족하거나 잘못된 것이 있습니까? 엘리후의 논리는 욥이 아니라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않으시기에 욥의 고난도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하나님의 의로우신 일이 됩니다. 따라서 욥이 하나님께 부당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21,22절의 “그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행악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사망의 그늘이 없느니라”는 것도 사람의 모든 행위를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숨거나 도망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이러한 엘리후의 말은 내용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 ‘맞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말에도 욥은 설득되지 않습니다. 37절에서 “그가 그의 죄에 반역을 더하며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욥은 엘리후의 어떤 말에도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후는 그것을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딤후 2:24-26절에 보면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고 말합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입니다. 신자가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행하심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주의 종의 일은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알게 하고 회개하게 하고 하나님께 사로잡힌 자로 살도록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이 아니면 하나님을 따를 수 없는 인간의 무능을 가르치는 것에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엘리후는 종의 일을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뛰어난 논리를 펼치고 있지만 그 내용에 하나님의 일하심은 없습니다. 엘리후가 욥의 말이 지혜롭지 못하다고 했지만 그것도 자신을 의롭다고 하는 말의 문제로만 봤습니다. 결국 엘리후는 사람이 행위에 있어서 아무 잘못이 없다 해도 하나님이 붙들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는 무능한 존재라는 시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한 시각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서 드러나는 문제도 엘리후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서는 생각을 닫아버립니다. 하나님의 일하심보다는 인간이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몰두합니다. 그로 인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모든 것을 인간의 믿음에 의한 결과, 열매로 가르칩니다.
봉사하라, 기도하라, 믿음에 열심을 내라 등등의 말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이 아닌 인간의 의지와 활동을 선동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적이라고 생각되는 말을 동원해서 인간을 설득하고 목사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하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이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하나님의 일하심에서 자신의 무능함을 알고 하나님께 사로잡혀 인도되는 것으로 감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후 4:7절에서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능력은 우리의 말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말과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였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전한 말이 능력이 되어 믿음에 있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만 자신이 깨닫게 된 복음을 전했을 뿐이고, 그 복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시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 것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사람의 말이 사람을 설득할 수 없고 회개할 수도 없으며 주를 믿게 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을 알게 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할 뿐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하신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인간의 일이나 말로 되는 것은 없음을 실감하는 것입니다.
Chapter 76
Elihu’s Request
Surely it is meet to be said unto God, I have borne chastisement, I will not offend any more:
That which I see not teach thou me: if I have done iniquity, I will do no more.
Should it be according to thy mind? he will recompense it, whether thou refuse, or whether thou choose; and not I: therefore speak what thou knowest.
Let men of understanding tell me, and let a wise man hearken unto me.
Job hath spoken without knowledge, and his words were without wisdom.
My desire is that Job may be tried unto the end because of his answers for wicked men.
For he addeth rebellion unto his sin, he clappeth his hands among us, and multiplieth his words against God. (Job 34:31-37 KJV)
Elihu began to talk in his anger toward Job and his three friends. He was angry with Job because Job had said he was more righteous than God, and with his friends because they judged Job without answering his questions.
Why Elihu had to begin to talk is well described in 32:12, “Yea, I attended unto you, and, behold, there was none of you that convinced Job, or that answered his words.” His intention was to beat Job, making him admit his fault and surrender to God.
Elihu scolded Job for he considered himself righteous (34:5-6). It was neither justice nor goodness to Elihu, saying in 34:4, “Let us choose to us judgment: let us know among ourselves what is good.” Taking a look at it, we can learn that Elihu’s understanding of justice and goodness is for one to know one’s unrighteousness and confess one’s sinful nature.
In Verses 31 and 32, he says, “Surely it is meet to be said unto God, I have borne chastisement, I will not offend any more: That which I see not teach thou me: if I have done iniquity, I will do no more.”
He is saying Job is evil because he considers himself righteous since it is right that he should say, “Surely it is meet to be said unto God, I have borne chastisement, I will not offend any more.”
If Job had admitted the cause of the affliction was his sins and said, ‘I will not offend any more’ like Elihu said, all would have been fine with Elihu and Job’s friends. Furthermore, they would have praised Job for he confessed his sins and repented. Yet, it still wouldn’t have been finished with Job for the matter of the affliction.
In fact, faith can’t be proven by what to say. God isn’t interested in what we say either. It is important to discern if the word is of the gospel or not, but ‘I have sinned’ or ‘I will sin no more’ is neither the gospel nor the evidence of faith.
Nevertheless, Elihu focuses only on what Job would say, meaning that his intention is nothing but to make Job say what he wants Job to say. It also means Elihu is ignorant of what the relationship with God is supposed to be even though he had an excellent understanding of God. In this aspect, Elihu’s request toward Job is of ignorance that he doesn’t know what men are before God.
Most of all, what we say is not what we mean. Although we say Jesus and the cross, it doesn’t mean we truly mean what we say. If one is right relationship with God, one will recognize oneself a hypocrite of saying such, knowing one wouldn’t want to live like Jesus, walking on the road to the cross. Thus, even if one cognizes, “I will not offend anymore”, one knows it is to avoid some difficult situations or to gain some good things. Therefore, it is absurd to judge people by what they say.
In Verse 36, Elihu says, “My desire is that Job may be tried unto the end because of his answers for wicked men.”
He means that he wants Job to be in the afflictions until Job confesses his sins, which is righteous. It is probably of his anger with Job, who wouldn’t accept his words of advice. Yet, what is revealed is Job, not persuaded by anything.
Is there anything wrong or illogical in Elihu’s words? His logic is that God is righteous not Job is. Since God is righteous, what Job is experiencing is of the work of God’s righteousness. Thus, Job can’t say God is injustice.
In Verses 21 and 22, it says, “For his eyes are upon the ways of man, and he seeth all his goings. There is no darkness, nor shadow of death, where the workers of iniquity may hide themselves.”
Such words of Elihu are nothing lacking in logic and content. No one would disagree. Yet, Job isn’t persuaded. Looking at Verse 37, “For he addeth rebellion unto his sin, he clappeth his hands among us, and multiplieth his words against God”, we find that Job insists on his opinion in spite of what Elihu says, by which Elihu views Job, being against God.
In 2nd Timothy 2:24-26, it says, “And the servant of the Lord must not strive; but be gentle unto all men, apt to teach, patient, In meekness instructing those that oppose themselves; if God peradventure will give them repentance to the acknowledging of the truth; And that they may recover themselves out of the snare of the devil, who are taken captive by him at his will.”
Realization of sin and repentance is the work of God. Believers’ following the will of God is also the result of the work of God. Thus, what the servant of God is supposed to do is not to teach the truth or urge others to repent, but teach the fact that men are incompetent to follow the will of God unless God works.
In this sense, we can say Elihu is out of the work of the servant of God. Even though he is knowledgeable of God, there is no work of God in his words. Although he says Job is not wise in his words, he only views the matter of words that Job considers himself righteous. After all, Elihu doesn’t know that man is incapable of obeying God unless God holds him even if he seems perfect, which brings us to the point where we see, ‘we should look at ourselves in the relationship with God.’
Our problem is not far from that of Elihu either. Even though we say God is alive, we ignore that God is working. We tend to focus on our work more than God’s. Thus, we’d teach believing in Jesus, realizing sin and repenting all are the fruit of our faith.
‘Commit yourself’, ‘pray’ or ‘have faith’ is nothing but to instigate people’s will and activities, having nothing to do with the will of God. It is to persuade people’s mind and make them follow the preacher. It seems obedient to the will of God, but we should know it is actually rebellious to the will of God. It is because the will of God is to know our incompetence in the work of God and give thanks to God while being caught by Him.
In 2nd Corinthians 4:7, it says, “But we have this treasure in earthen vessels, that the excellency of the power may be of God, and not of us.”
The power doesn’t belong to what we say but God. Paul says his preaching is not of his persuasive words of wisdom but the demonstration of the Holy Spirit, meaning his words doesn’t make people believe in God. Paul is aware that he just delivered the gospel he came to understand to the people and it is the work of the Spirit that calls the people of God by the gospel.
The words of men can neither persuade men nor make them repent or believe in God. The more we know this truth, the more we come to trust in God and give thanks to God for His work while realizing there is nothing we can do in our work or 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