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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갈 3:17-19

갈 3:17-19http://onlycross.net/videos/gal/gal-031719.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7.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19.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설교>

바울은 세상의 현실을 아담의 범죄로 사망이 들어와 왕 노릇 하고 있는 것으로 말합니다(5:17). 세상은 아담 이후로 지금까지 이 현실에서 벗어난 적이 없고 마지막 심판 때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누구도 아담의 범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선함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윤리도 아담의 범죄 앞에서는 무능력합니다. 지금껏 윤리로 사망에서 벗어난 자가 없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윤리는 인간이 만든 규칙이고 법입니다. 그것을 지킴으로 선하다는 인정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선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자신이 선하고 의롭다는 착각에 빠진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윤리로 인해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오류에 빠지는 것입니다.

 

 

5:13절을 보면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율법이 없었을 때의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는 규칙과 법을 스스로 만들고 그것으로 선함과 의로움을 세우려고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죄를 죄로 여기지 않게 되는 이유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기들이 만든 신앙 규칙을 지키는 것을 신앙생활로 간주하면서 자신이 죄에서 멀어져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죄를 죄 되게 하시려고 주신 것이 율법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19절에서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범법으로 더하여진 것이 율법이라면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하나님이 주신 기존의 것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약속입니다. 그러면 약속에 부족함이 있어서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율법을 더하셨다는 것일까요? 약속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약속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예수님의 십자가 또한 부족하다는 의미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약속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율법을 보충하여 완벽한 약속으로 만들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정하신 약속은 무엇으로도 폐하거나 더해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는 것도 약속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이루시면 되는 일을 무엇 때문에 율법을 더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를 바울은 인간의 범법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범법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요구와 피조물인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어긴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범법은 아담의 죄로 인해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인데 이것은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인간으로 지으신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에덴에서 내보내시고 생명 나무의 길을 막아 버리신 것은 선악에 대한 지식이 있는 인간은 생명에 들어갈 수 없음을 분명히 드러내는 하나님의 조치입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우리는 인간의 범법과 사망에 이르게 된 모든 내막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이 선악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가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나름대로 선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가 되려고 하고 그것으로 원하는 것을 받고자 하는 자기 뜻 안에서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인간 됨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죄를 죄로 알지 못하고 오히려 선한 것으로 착각합니다. 이것이 율법을 주신 이유입니다.

 

 

6,7절에 보면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의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율법이 오기 전의 일입니다. 율법이 없이도 믿음과 의롭게 되는 일은 아무 지장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430년 후에 율법을 주신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무엇인가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율법은 무엇이냐라는 바울의 물음과 답이 증거 하는 내용입니다.

 

 

인간은 율법을 실천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실천할수록 의가 쌓이고 하나님의 선한 백성으로 인정된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선악 지식을 가진 인간의 본성입니다. 선을 추구하고 실천하여 하나님께 믿음의 사람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고 구원과 복을 이루겠다는 욕망입니다. 율법에 대한 이러한 생각이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약속을 헛된 것으로 치부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에는 자신의 방식으로 자손에 대한 약속을 이루기 위해 이스마엘을 낳은 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고집하지만 하나님은 약속으로 택한 자의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신 아들이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이 낳은 이스마엘을 부인하는 것이 이삭이란 존재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인간의 모든 방식을 부인하고 하나님이 약속으로 이루신 그 일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고 십자가 앞에 서게 되면 인간의 선함과 행함이라는 것을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이 주신 존귀한 선물이심을 알게 됩니다.

 

 

율법이 범법함으로 더하여진 것은 인간의 범법을 추궁하기 위해 주어진 율법이라는 뜻입니다. 날마다 아담의 죄로 살아가는 현실을 추궁받으면서 선을 행하고 말씀을 실천한다는 교만을 무너뜨리는 것이 율법의 역할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게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이라면 율법은 죄라고 하는 우리의 아픔을 드러내고 그 아픔을 대신 지고 죽으신 중보자로 오신 약속의 자손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실천하여 의를 이루겠다는 사람에게는 죄로 인한 아픔의 경험이 없습니다. 이들에게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라는 말은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모르지 않는 내용이고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관심은 말씀을 실천하고 행하는 자신에게 향해 있습니다. 중보자로 오신 그리스도보다 자신의 행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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