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설교>
사도는 핍박을 받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가 처한 형편과 상황을 무시하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핍박과 환난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형편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의 이 말은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사도의 말에서 ‘항상’‘쉬지 말고’‘범사’라는 말을 삭제한다면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적당히 형편에 따라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항상’‘쉬지 말고’‘범사’라는 이 말이 걸림돌이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항상 기뻐할 수 없고,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없고, 범사에 감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쉬지 말고’‘범사’라는 말은 현재의 형편과 상황을 모두 초월하라는 뜻입니다. 고통과 어려움이 있고 아픔이 있는 형편에서도 기뻐해야 하고 기도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사람이 살다보면 수많은 일을 겪게 됩니다. 기분 나쁜 일, 슬픈 일, 낙심이 되는 일, 분노하게 하는 일, 등등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만나게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들을 모두 초월하여 기뻐하고 감사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또한 현대는 바쁘게 움직여야 먹고 살 수 있는 사회인데 과연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사도는 인간의 이러한 형편과 나약함을 몰라서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일까요? 사도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잘 알았습니다. 자신을 두고도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한 사도로써 인간의 죄가 무엇인가를 잘 알았고, 따라서 인간은 모든 형편을 초월하여 기뻐하고 감사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와 같은 말을 하는 것입니까?
먼저 5:5절을 보면 사도는 신자를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않은 빛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신자는 빛의 아들로써 어둠에 속한 자들과의 구별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자의 거룩입니다. 이처럼 구별된 길을 가기 위해서는 밤에 취해 밤에 자지 말고 정신을 차려 깨어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자로써 세상에 취해 사는 사람들의 삶의 특징은 자기 인생에 집착을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은 욕망으로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삽니다. 그래서 원하는 인생이 펼쳐지지 않으면 슬퍼하고 낙심하고 불행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에 속한 자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을 물으시고 이뤄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분명한 것은 우리의 뜻대로 되는 인생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밤에 속한 자와 낮에 속한 자가 신을 찾는 이유가 다릅니다. 밤에 속한 자는 자신의 뜻을 위해 신을 찾지만, 낮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세상에 세우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우리의 구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생이 내가 원하는 행복과 축복으로 채워지도록 인도 받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때문에 고통스럽고 힘든 모든 일들도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이 신자로 하여금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인생에 집착하면서 세상에서의 행복을 위해 신을 찾는다면 본문의 사도의 말은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원하는 인생을 위해 신을 찾지 말라는 말이 귀에 거슬릴 수 있습니다. 마치 자기 인생을 포기하거나 버리라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뜻대로 된 인생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여러분이 있는 자리와 삶의 전부가 여러분이 계획하고 원했던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도 자신이 원하고 꿈꾸는 인생을 그대로 이루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인생을 다스리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서 수시로 방향이 틀어지면서 살아왔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한 뜻을 가지고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을 때 인생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신자의 인생에는 우연이 없고 재수가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담겨 있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있는가를 묻는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억지로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려고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인생에 대한 생각,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밤에 속한 자가 아니라 낮에 속한 빛의 아들의 생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신자가 구원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나라에 마음을 둔다면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내가 원하는 인생을 이뤄주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복되다는 것을 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기 위해 일하실 것인가에 대한 답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비록 핍박이 있고 환난이 있다고 해도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 믿음으로 인해서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묵상해 보십시오. 힘든 일들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재수가 없어서 일어나는 일일까요? 만약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면 단지 ‘고생시키기 위함인가, 아니면 선하신 뜻을 가지고 우리를 간섭하시는 일인가?’를 묵상하시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가 여러분에게 정립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은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중심에 자신을 세워둡니다. 그래서 나에게 좋은 일이 있어야 기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기도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주어질 때 감사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픈 일이 있고 힘든 일이 있으면 기쁨도 감사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어려운 일이 없이 편히 살면 기도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지 못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지 못하고,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면 달라집니다. 비록 핍박과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나를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임을 안다면 신자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구원이 내 뜻과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으로 된다는 것을 믿는다면 내 인생이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되기를 소원하면서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고자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그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이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핍박을 받고 있지만, 그 핍박조차도 내 마음을 하나님께 두게 하시고, 세상에 대해 정신 차려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신자로 살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면 핍박과 어려움의 형편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신자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 더 많아지기를 구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감사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신다는 것을 믿고 의지하는 신자만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려고 하고 범사에 감사하려고 애를 쓰지 마십시오. 애쓴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슬픈 일이 있는데도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슬픔을 감추고 기뻐한 척 한다고 해서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식이고 위선일 뿐입니다. 슬픈 일이 있을 때 슬퍼하고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18절을 보면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합니다. 즉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예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받을 수 없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신자라고 하는 우리가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관심을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뜻에 두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핍박과 환난의 배경에 자리하고 있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지 못하고, 내가 겪는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고 낙심하는 것은 아닐까요?
핍박과 환난에 처한 데살로니가 교회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 어떤 핍박과 환난도 하나님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려서 자기 백성을 세상에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되새긴다면 핍박과 환난의 배경에 자리하고 있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신자로 하여금 항상 기뻐하게 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게 합니다.
구원은 우리와 무관한 하나님만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선택에 의해서 우리가 구원될 자로 불려 나온 것이고, 우리의 행위와 무관하게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물론 세상에 취해 있고 세상에서 벗어나기를 거부하는 우리를 정신 차리게 하시고,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에 마음을 두고 소망하는 자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간섭은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간섭이 때로는 우리를 괴롭게 하지만, 그 간섭으로 인해서 결국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 신자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참된 복을 받은 사람이 신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