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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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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11:26)

 

성경은 역사가 아니라 언약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물론 성경에는 인간의 역사가 있다. 하지만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지 인간에 의해서 인간이 만들어간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존재부터 그들이 겪는 사건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개입 없이 순전히 그들의 의도와 힘으로 되어진 것이 없다는 점이 그러하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정착하여 노예로 전락하게 된 것이나 애굽에서 해방되어 광야 생활을 거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된 모든 역사에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행하여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일도 이스라엘의 역사이긴 하지만 실제는 하나님이 만들어 가신 하나님의 역사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모든 역사는 역사를 이해하는 우리의 안목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목에서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안목이 곧 언약이라는 점에서 성경은 언약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는 역사는 인간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인간에 의해 발생한 과거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이것이 역사라면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는 역사가 없다는 뜻이 된다. 바다 한가운데에 인간이 살지 않는 무인도가 있다면 아무리 수천 년이 흐른다 해도 그 무인도에는 역사가 없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이해로 성경을 본다면 성경에서의 역사는 인간이 창조된 후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 있었던 하나님의 세상 창조는 역사가 아니라는 뜻이 된다. 당연히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는 아니다.

 

 

하지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라는 말씀으로 시작하는 성경은 하나님이 주도하신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의 역사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역사 속에 들어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역사로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유대인들은 구약을 자기들의 역사로 해석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 해당하는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을 자기들의 땅으로 인식하고 유럽 각지에 흩어져 박해받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모여들어 국가를 건립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정당성을 성경 역사에서 찾는다. 성경 내용대로라면 팔레스타인, 즉 약속의 땅은 하나님이 주신 자기들의 땅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의 역사관이다.

 

 

이러한 역사 안목으로 성경을 해석하게 되면 현재의 이스라엘, 유대 민족은 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연장선에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에게 있었던 과거 역사를 통해서 지금의 우리를 교훈하는 의미가 된다. 이것이 성경을 역사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고 이러한 해석에서 바울이 말하는 온 이스라엘이 현재의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으로 설교 되는 것이다.

 

 

사실 온 이스라엘을 현재의 이스라엘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가리켜 내 백성이라고 하신 말씀을 역사적 사실 그대로 지금의 이스라엘 민족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을 탕자로 비유하여 하나님은 지금도 이스라엘을 사랑하며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고 하고, 온 이스라엘이 예수께 돌아와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되는 날에 종말이 임한다는 말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언약에 무지한 역사적 안목에서 나오는 허구일 뿐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사이에 언약을 세우셨다. 그 말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등장하는 이스라엘은 언약의 관계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혈통, 민족을 떠나서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그들이 참된 이스라엘이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이스라엘 국가도 유대인도 성경의 이스라엘과 무관하다.

 

 

구약성경의 이스라엘이 혈통으로는 그들의 조상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에게 함께 하시고 그들을 위해서 일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현실화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도구로 삼았을 뿐이다. 그래서 역사적 실체로서의 이스라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언약적 이스라엘로 봐야 한다.

 

 

이스라엘이 언약적 존재라면 온 이스라엘은 언약의 완성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됨은 예수 그리스도로 확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 숫자를 의미하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완성된 언약에 속한 자로 이해해야 한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을 백성의 숫자가 채워진 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그리스도 안에 부름을 받아 온전함을 입은 자라는 의미에서의 이다.

 

 

온 이스라엘을 숫자로 해석하면 우리가 이스라엘에 해당하는 사람을 하나하나 찾아가 전도해서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게 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것이 역사적 안목이고 완성으로 오신 언약은 이러한 인간의 안목을 죄로 정하고 심판한다.

 

 

본문의 그리하여라는 말의 본래 뜻은 이런 방식으로’ ‘이렇게라는 뜻이다. 바울은 본문 앞에서 행위가 아닌 은혜로 되는 구원을 말한다. 은혜의 방식으로 구원받은 그들이 온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적 안목은 행위를 중요시한다. 그래서 원인과 결과를 행위에서 찾는다. 하지만 언약 안에서 모든 결과는 오직 은혜로 증거된다. 행위가 아닌 은혜로 인한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행위가 아닌 언약을 이루신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함을 입은 방식에 속한 이들이 온 이스라엘에 해당한다.

 

 

은혜의 방식으로 구원받은 온 이스라엘은 자신의 역사, 즉 인간의 역사인 행위를 부인하게 되고 하나님의 언약이 완성되어 현실화한 십자가만 자랑한다. 결국 믿음의 중요성을 행위에 두고 행위를 통하여 믿음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온 이스라엘에 속한 자가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자기 방식으로 자기에게 돌리려고 했다. 이것이 경건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경건함으로 복을 얻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시온에서 온 구원자는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감으로써 구원받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언약이다. 언약은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방식이 실패했음을 드러내고 언약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끈다. 이들이 온 이스라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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