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4.09.28 09:40

(31강) 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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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2:21-22http://onlycross.net/videos/eph/eph-02212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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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설교>

 

에베소서에는 사도 바울의 교회론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때문에 에베소서를 통해서 교회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으며 교회의 실제적인 본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에베소서에 나타난 교회론만 잘 이해한다 해도 대개의 현대 교회가 추구하는 교회됨이 성경에서 크게 벗어나 있음을 충분히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같은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은 성경이 증거 하는 교회로 세워져 가는 것보다는 사람의 손으로 지어 가는 교회에 더 깊은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으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사도가 증거 하는 교회는 우리의 흥미를 끌만한 것이 없습니다. 사도는 교회의 번성을 말하지 않고, 세상이 인정하고 칭찬하는 교회를 말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만족이 될 만한 교회됨의 기준을 따로 세워서 그것이 마치 하나님이 원하시고 세워 가시는 교회인 것처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보게 되면 사람의 만족이 될 만한 교회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사도는 교회에 대해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 되시고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지혜를 알리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 교회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워졌다고도 말합니다. 이렇게 교회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본문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성전이 되어가고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관계에 있는 것을 교회로 말합니다. 하나님이 지어가시는 것이 교회라면 짓고자 하시는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22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말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세워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지어가고자 하시는 목적 아래 나에 대한 나의 뜻과 목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지어가겠다는 하나님의 목적이 분명히 세워져 있는데 ‘하나님 저는 이런 사람이 되겠습니다’라며 자신의 포부와 뜻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와 연관된 모든 것이 나를 살만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도구로 주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을 찾고 부르지만 정작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지어져 가고 있음을 알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실 집을 하나님의 것으로 내어 놓기를 거부하고 내가 주인 행세를 하려고만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시고 부르시고 신자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는 관심 두지 않고 다만 자기 자리를 확보하고 단단하게 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눅 9:58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거하실 집 한 채도 없는 가난뱅이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세상에 처소를 두기 위해서 살아가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시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으로 만족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안으로 부름 받은 신자 역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안에 있는 신자에게 세상의 처소 문제는 걱정거리로 작용할 수 없어야 합니다. 처소의 크고 작음이 문제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의 신자가 서로 연결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루어진 교회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 교회를 보면 교회의 외적 크기에 많이 민감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더 크고 멋있고 자랑거리가 될 만한 예배당을 짓고자 하는 열망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빚을 내어 예배당을 짓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영광 되는 것으로 포장하지만 그것은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란 과연 무엇일까요? 영이신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필요한 것일까요? 처소로 지어져 간다는 것은 21절에서 말하는 성전이 되어 가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성전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는 구약적 용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구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처소에 대해 먼저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출 15:13절을 보면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7절에서는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처소’는 공간적이고 장소적인 의미가 아니라 상태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천국을 공간적이고 장소적인 의미가 아니라 상태의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처소를 공간적이고 장소적인 의미로 이해하게 되면 결국 거룩한 처소를 눈에 보이는 어떤 공간과 장소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예배당을 두게 됩니다. 그래서 예배당을 거룩한 하나님의 처소로 인식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거룩한 처소가 어디인지가 아니라 주의 백성을 거룩한 처소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에 있습니다. 주의 백성이 거룩한 처소로 인도 받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은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실 때 기준은 거룩입니다. 거룩한 자와 거룩하지 않은 자를 구분하여 거룩하지 않은 모든 자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룩은 인간에게는 해당되지 않은 영역입니다. 무엇으로도 거룩해질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스스로를 거룩한 존재로 여겼던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처럼 거룩하지 않은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겔 37:26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화평의 언약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셔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는 화목의 관계에 있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언약을 성취하실 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로써 성취될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화평의 언약의 성취자로 오신 예수님은 자신을 제물 삼아 영원한 제사를 드린 것으로 주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었음을 알게 된 신자는 상한 심령으로 주를 부르며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 사귐에 있게 됩니다. 이것이 성전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성전에서 배워야 할 것은 ‘상한 심령’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러한 참된 제사가 있는 성전으로 세우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지는 것보다 이방민족처럼 부강하고 힘 있는 나라로 세워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처소는 거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처소로 지어져 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조금씩 거룩해져 간다는 뜻일까요? 신자의 거룩은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지어져 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함께 하는 거룩한 백성을 거룩한 백성답게 다스리며 붙들어 가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이기에 우리의 만족과 즐거움을 위한 교회로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존재하는 것은 상한 심령으로 주를 바라보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살리신 생명이심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나의 열심과 헌신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헌신과 긍휼과 용서하심이 아니면 주의 거룩에 참여할 수 없음을 알기에 생명이신 주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 처소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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