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4.10.19 09:57

(34강) 복음으로 말미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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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3:5-6http://onlycross.net/videos/eph/eph-030506.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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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설교>

 

 

복음은 그리스도의 비밀이라는 표현을 마음에 새겨두실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 비밀을 서로 공유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비밀을 아는 일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습니다. 또한 누구나 알고 싶다고 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고, 나아가서 비밀에 대해 관심조차 없기에 알고자 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비밀에 대한 관심이 있고 비밀을 함께 알아가며 얘기할 수 있는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율법에 따른 실천이 개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율법에 의한 실천이 개입되게 되면 함께 그리스도의 비밀인 복음을 공유하는 관계는 깨어지고 서로 자기 실천의 높음을 주장하면서 자기의 신앙이 더 낫다는 경쟁적 싸움으로 치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을 향해서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 진심어린 권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 교회는 무엇입니까? 저는 교회가 여러분 각자의 기독교라는 종교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와는 거리가 먼, 단지 인간의 종교 모입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닐뿐더러 그곳에서는 늘 자신이 중심이 되고자 하고 자신의 것을 주장하는 모습만 양산될 것이고 자신의 신앙과 타인의 신앙을 구분하는 판단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 여긴다면 항상 우리 자신을 경계하며 인간적 모임으로 전락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이 있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라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은 비밀조차도 자신들만의 앎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은 비밀을 알 자격이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들에게 바울은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이 아닌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 지체,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경륜이며 계시로 바울에게 알게 하신 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비밀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받아들이기 힘든 어려운 내용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방인을 개보다 못한 존재로 여겼던 유대인들에게 바울의 말은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유대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이방인에 대한 전통적 사고방식과 선입견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유대인에게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그 사람이 말씀을 제대로 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아십니까? 아신다면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여러분의 지혜가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5절의 말씀대로 성령이 우리에게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혀 알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고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열심히 있었다고 해도 복음에 대해 무지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무관하게 복음을 알지 못했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로 말씀을 주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복음에 대해 눈이 열리게 하신 것입니다.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을 때는 유대인처럼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고, 헌신하고,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나는 신자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바른 이해로 들어가게 되면 가장 먼저 나 자신의 무너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말씀의 권능임을 실감합니다. 말씀의 의미를 알아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조금씩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알만한 것들을 동원하여 보여주신 것만큼 보게 되고 알아가면서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알게 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신자 됨은 율법의 복종이 아니라 복음에 있습니다. 율법에 대한 복종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백성 될 수가 없습니다. 누구도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유대인에게도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절대적인 가치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내용들은 얼마든지 이해하면서도 실제로는 유대인과 다를 바 없이 율법이 기준 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안다’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을 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보다는 지금 현재에 마음을 쏟으며 살아갑니다. 때문에 진심으로 복음 안에 있다면 그 복음은 바울처럼 죄인 중의 괴수라는 고백이 있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괴수인 나를 찾아오셔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마음을 두게 하는 것이 참된 복음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깨닫게 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높이고 자랑하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이러한 영광된 교회를 왜들 그렇게 교인수와 돈으로 치장하여 세우고자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욕망입니다. 복음을 말하되 그 마음에 복음은 없고 자신이 꿈꾸는 교회가 세워져 있는 그가 바른 복음을 말할 리가 없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문제 해결을 위해 서신을 보낸 것이 아닙니다. 다툼이 사라지고 서로 친한 관계를 유지하는 평온한 교회가 되게 하는 것이 바울의 관심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관심은 에베소 교회가 그리스도의 비밀인 복음을 알고 복음에 의한 삶으로 나타나지기를 원했습니다. 교회의 문제도 복음을 증거하는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다툼이 있다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다툼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함께 복음을 깨닫는 기회로 삼지 못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다투고 판단하는 모습들을 통해서 ‘나는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내가 있음을 인지함으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게 되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에베소 교회의 문제는 아주 간단하게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만의 교회, 이방인만의 교회로 따로 구분하여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유대인과 이방인의 충돌은 해결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것도 얄팍한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대인만 모인 교회라고 해서 충돌과 다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과의 충돌은 없겠지만 유대인들 안에서의 충돌과 다툼은 필히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죄 있는 인간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복음을 아는 복음의 세계로 세워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에만 초점을 두고 복음 안으로 에베소 교회를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함께 한다고 해도 담이 없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함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관계로 세워지기를 원한 것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라는 이 말은 복음과 연관된 모든 일에 있어서 나의 의지는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안에 세워진 원칙입니다. 이 원칙이 무너진 순간 우리는 교회됨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은혜로만 존재한다는 이 원칙 안에서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복음입니다. 세상을 향한 여러분의 관심을 하나님의 나라로 끌어가는 것도 복음입니다. 우리에게 소리 없이 조용하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역사하면서 우리를 붙들고 도우시는 낙심하지 않게 하시는 성령이 계심을 알게 하시는 것도 복음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나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감사하게 하는 것도 복음입니다. 이처럼 신자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복음 안에 있기에 우리가 내 놓을 것은 복음으로 인한 열매일 뿐입니다. 이 열매는 우리가 힘써서 맺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말미암아 복음에 의해서 자연히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 열매가 무엇일까요? 바로 생명입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함께 생명에 참여한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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