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4.12.28 10:07

(42강) 영광의 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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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3:14-19http://onlycross.net/videos/eph/eph-031419(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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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설교>

 

많은 사람들이 자기 구원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큰 이유는 구원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 버리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원을 확인받았다면 불안감이 없이 마음 편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로 실수가 있고 문제가 있다고 해도 ‘한번 구원은 영원하다’고 하면서 실수도 문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길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확인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길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목적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에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인간이 자기 구원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름 받은 신자 됨에 대해서는 마음 두지 않고 다만 자기 구원으로 만족하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늘 자기 욕구가 채워지기를 원할 뿐이고 욕구가 채워지는 것을 하나님께 영광 되는 것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아는 신자는 구원만으로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에서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사랑에 대해 눈이 열린 신자라면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사용하신다고 해도 하나님이 사용하신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어떤 그릇으로 사용하신다고 해도, 즉 천한 그릇으로 사용하시든 귀한 그릇으로 사용하시든 아무것도 아니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존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신다는 것만으로 족하다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구원 받은 신자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으면서 ‘나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으니 나는 구원 받지 못했는가?’라는 생각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곧 신앙의 목적과 방향을 오로지 자기 구원에 두고 있는 잘못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런 내용들을 통해서 신앙의 방향을 바르게 정립하는 것입니다.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참된 구원의 세계에 대해 눈이 열리고 구원을 누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을 나타내고 증거하는 도구로 살아가는 것에 뜻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구원받기를 원하고 구원 받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 아니라 구원을 알기를 원하는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에 담긴 신자의 부요함을 알게 되고 그 부요를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드러내는 도구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 됨을 알게 되면 자기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충족을 위해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그것이 우상 숭배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은혜를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충족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존재의 변화로 그 의미가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이 존재의 본질입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을 뿐입니다. 그런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즉 그리스도와 연합된 관계에 있게 하신 것이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아는 신자라면 자신에게 보이는 몇 가지의 종교적 행위로 ‘나는 구원 받은 신자다’라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자기 판단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벗어난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은혜와 사랑 안에서 구원의 판단은 인간의 몫이 아닙니다. 구원 받고 받지 못하고의 여부보다는 은혜가 크다는 것을 알고 은혜에 이끌려 살기를 더 강하게 소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자이기에 신자는 자기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를 이렇게 받아들이는 신자가 구원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에 어울린다고 할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삶을 살아내게 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니까 지금 삶에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해결하시고 평안이 있게 해 주실 것이다’라는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자리로 이끄신 사랑에 눈이 열리고 신자가 얼마나 부요한 존재인가를 알게 함으로써 기쁨과 감사의 신앙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따라 살아가야 할 사람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이고 목적입니다. 이것을 위해 신자는 피조물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피조물이 피조물의 자리에서 벗어나면 자기중심이 되어 자기 영광에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내가 주인이 된 자기 삶을 위해 하나님을 부르며 하나님을 수호신처럼 여기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않게 되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봉사할 때 자신이 주체가 되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중심이 되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중심이 되지 않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외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수고한다고 해도 칭찬과 영광이 자신에게로 오지 않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일의 중심에 자신이 있고 싶어 하는 것은 칭찬과 영광의 중심에 있고 싶어 하는 것이고 그것이 피조물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입니다.

 

 

신자는 자신을 증거하고 나타내는 길을 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이 어떤 길이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영광의 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로만 가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께 순종하는 신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신자란 이 길을 기쁘게 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외면하는 길을 기쁘게 가게 되는 것은 그 길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끄심입니다. 우리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끄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영광에서 발을 빼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고 바꾸시고 경륜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삶이 아니라 내가 믿었고 내가 전도했고 내가 봉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영광 받는 것을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일하심만 있습니다. 여러분이 일했고 수고한 것처럼 여겨지는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은혜와 사랑은 우리 자신을 부인하게 하며 모든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함을 고백하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풍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우리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항상 탕자처럼 죄의 길에서 방탕한 자로 살았을 뿐입니다. 은혜와 사랑을 말하면서도 정작 은혜와 사랑과는 반대의 길로만 달려갔습니다. 그러한 우리를 붙드시어 죄를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눈을 뜨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아는 신자는 자신을 자랑할 수 없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죽은 우리를 살리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크고 놀라운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있게 하신 지금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와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으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들판에 피어 있는 꽃들이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그냥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습으로 하나님이 있게 한 그 자리에 묵묵히 있다가 시들어질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인 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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