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2.22 00:58

(50강) 교회의 통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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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4:4-6http://onlycross.net/videos/eph/eph-040406(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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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 몸이 하나이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설교>

 

교회의 통일성을 말할 때 여러 교파로 분리되어 있는 교회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톨릭처럼 교파가 없이 오직 하나의 교회로만 존재하는 것을 교회의 통일로 인식하고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파가 없는 가톨릭은 통일을 이루고 있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교회로 존재하고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사도 바울이 말한 ‘하나 됨을 지키라’는 말은 교회를 여러 교파로 분리시지 말라는 뜻과 무관합니다.

 

 

가톨릭이 여러 교파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교황정치’라는 제도의 효과일 뿐입니다. 거의 신적 존재로 여기는 교황의 통치 아래 존재하는 것이 가톨릭이기 때문에 설사 교파가 발생하고, 따로 교황을 세운다고 해도 전통에 의한 교황이 아니기에 가톨릭으로 인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가 말한 교회의 하나 됨은 정치적 통일이나 집단적 화합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인간이 그리스도로 인해 화해의 관계에 있게 되고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과 연합하게 되는 은혜의 장막에 거하게 된 관계로서의 하나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됨은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게 된 무리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통일성은 성령에 의해서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주를 위해 살고자 하는 동일한 생각,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의 집단적 화합과 연합을 꿈꾸며 하나 됨을 강조하는 것은 사도가 말한 하나 됨, 교회의 통일과는 무관한 인간의 헛된 꿈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를 위해 사는 인간이 함께 하고 있는 교회가 화합하고 연합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단순히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는 기독교인의 집단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능력이 임해서 거룩한 백성이 된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라는 관계로 묶인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로만 소통됩니다. 구원의 길이 되시고 능력이 되신 그리스도에게 연합된 상태가 곧 생명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죄로 인해 죽은 자로 함께 하기에 ‘죄로 인해 죽었다’는 통일성이 있으며,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에서 건짐 받고 생명을 얻었기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의가 되신다’는 통일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 됨이 지켜지는 교회에서는 인간의 공로와 의로움은 나타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현대 교회는 교회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온통 인간의 공로와 의로움으로 탑을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쌓은 탑의 높이로 ‘누가 더 나은 교회인가?’ 경쟁하면서 오직 내 교회의 이름을 높이는 일에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바벨탑을 쌓았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 이것은 분명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세워진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교회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이고 높이 세워져 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 되고 성격이 되어서 온 성도가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하나 됨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함께 한 현장에서는 인간의 성 쌓기가 멈춰집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흩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을 흩어버리신 하나님은 다시 인간을 모으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은혜를 입고 예수님의 공로에 감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으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높이게 되는 것이고 교회의 교회됨은 이것으로 증거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교회는 누가 잘하고 못했다는 구분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존재하는 사람이 잘한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잘한 것이라고는 죄 짓는 것 밖에 없습니다. 웃고 즐기고 좋아라 하면서 그것이 자신을 넘어지게 하고 죄에 빠지게 하는 것임을 알지 못한 채 죄를 짓습니다. 그런 우리가 남들보다 기도 조금 많이 한다고 해서, 아니면 성경 보고 헌금하고 봉사한다고 해서 잘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것을 잘 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잘한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인간의 자랑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잘 아는 내용이라고 가볍게 생각하지 마시고 늘 자신을 점검하는 항목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행동은 다르고 실천 내용도 다르고 성경을 이해하고 알고 있는 수준도 다르지만 결국 모두가 ‘죄로 인해 죽었다’는 동일한 본질 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바라보는 것이야 말로 한 몸의 관계에 있는 교회이고 교회의 통일성으로 드러나는 모습임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취지는 부르신 분의 위대함을 증거 하라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의 위대함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셨음을 받아들이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실패자인 인간을 부르셔서 성공자의 길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의 길로 갔던 모든 신앙의 인물들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이 부르신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등등의 모든 인간의 공통점은 실패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실패했습니다. 그러한 인간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결국 하나님이 뜻하신 사람이 되게 하시고 믿음의 길로 가는 성공자가 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위대성이고 전지전능하심입니다. 교회는 이 같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거 하는 것에 그 존재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십자가로 확연히 증거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믿지 않고 배척할 수밖에 없는 십자가를 믿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 하나님이 능력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교회는 그 증거를 나타낼 도구로 세워진 것입니다. 이 일에 생각이 같고 뜻이 같은 그들이 교회이며 따라서 교회는 교회의 부흥이나 교회의 이름을 내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교회됨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교회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예수님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교회를 포기하지 않는 욕망을 감추기 위한 핑계일 뿐입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는 늘 부인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교회가 부인되어야 예수님의 은혜가 막힘없이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해된다면 그 또한 성령의 능력이지 여러분의 지식도 자질도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일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 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남에게 없는 체험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더 낫다’는 증거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남들보다 더 부요하게 살고 모든 일이 잘 된다고 해도 역시 ‘내가 더 낫다’는 증거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생각이 교회의 통일성을 훼방하고 결국 자신을 바라보고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바벨탑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본성이 하나님의 뜻에 늘 훼방자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든 뜻하신 바를 이루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위대성이고 전지전능하심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는 것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내가 이루어야 할 것을 품에 안고 그것을 이루지 못해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이루신 일로 인해 감사하고 기뻐하며 박수치는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인한 자유고 가벼움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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