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2 12:11

살전 5:19-22

조회 수 14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 5:19-22)

 

기독교에서 부활 신앙과 함께 중요하게 강조되는 것이 재림 신앙이다. 그런데 재림을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시는 마지막 때의 사건으로만 이해함으로써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와 다시 오실 때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처음 오셨을 때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하고 재림은 믿지 않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서라고 말은 하지만 그것은 성경과 다르다.

 

 

9:28절에 보면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처음 오신 것은 하나님이 택한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담당하기 위하여 자신을 제물로 단번에 드리기 위해서다. 그로 인해 세상에는 죄 사함을 받아 죄와 상관이 없는 거룩한 자, 성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성도를 구원에 이르게 하겠다는 취지로 두 번째 오시는 것이 재림이다.

 

 

교회는 재림 신앙을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고 그날을 기다리며 소망하는 자로 사는 것에 중점을 두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 속에서 자기를 위한 인생을 포기하지 못한 인간이 재림의 날을 기다리고 소망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무엇보다 자기 구원을 바라보고 재림을 기다린다면 그 신앙은 가짜다. 자기 구원에 목적을 둔 재림으로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성경의 모든 사건은 예수님의 주되심을 증거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피로 죄와 상관없게 된 성도가 발생하고 그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성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주되심을 증거하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재림의 이유와 목적을 자기 구원을 위한 것으로 믿는 것은 지옥 백성의 헛된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두 번째 나타나시는 대상인 성도는 죄와 상관없이 예수를 기다리는 자다. 예수님의 피로 죄 용서받은 성도는 자신을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되게 한 예수님의 피의 공로만을 바라본다. 그래서 자기의 믿음으로 의를 행하여야 할 필요성이 없고 이들이 기다리는 예수 또한 자신의 믿음과 행함에 보상해 주는 예수가 아니다. 이들이 두 번째 나타나시는 예수를 알고 기다리는 참된 성도다.

 

 

성도는 십자가 사건에 종속된 자로 존재한다. 따라서 성도의 삶은 자신을 죄와 상관없게 한 피의 능력과 의를 증거하는 것으로 향한다. 물론 이 일은 성도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성도의 힘이라는 것 또한 다른 인간과 다를 바 없이 항상 자기 유익을 위해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개입이 계속되는 것이고 성도 안에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일하시는 이유다.

 

 

따라서 성도는 항상 하나님이 일하시는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이지 성도가 한 일이 원인이 되어 결과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필요한 원인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악으로 규정된다.

 

 

이들이 성령을 소멸하고 예언을 멸시하며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헤아리는 안목이 없어서 악을 좋은 것으로 알고 취하면서 선으로 주장하며 행하는 자다. 한마디로 말해서 십자가의 은혜로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되게 하신 예수님을 믿고 기다리는 신앙의 성도가 아니며 다시 오시는 예수님과도 상관이 없다. 다만 자신이 행한 대로 심판받을 자일 뿐이다.

 

 

하늘로 가신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성령을 보내시는 것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시기 위해서다(16:8). 예수님이 하늘로 가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루셨음을 의미하는데 세상은 하늘로 가신 예수가 다시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린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이 이루어야 할 일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책망이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의로 생각하고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행함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는 성경과 다른 생각을 책망하는 것이 성령이다.

 

 

성령의 책망을 받은 자는 자기의 모든 의가 무너지고 죄인으로만 드러난다. 이것이 성령이 보여주는 십자가의 세계다. 인간의 의는 요구되지 않고 주의 의로 거룩한 자로 여김 받는 세계로 부름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평안이다. 자신의 믿음과 행함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자신의 힘으로 예수를 믿고 재림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성령을 소멸하는 것에 해당한다. 성령 자체를 소멸한다는 것이 아니라 죄를 책망하여 죄인으로 드러나게 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 기쁨이 되게 하는 것을 자기 행함을 바라봄으로써 소멸한다는 뜻이다.

 

 

예언을 멸시하는 것도 다 이루신 십자가 사건을 믿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모든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되었다는 것은 예언에 인간의 할 일은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성도가 예언의 말씀을 믿고 지켜 행하는 것은 자신이 행해야 할 일이 없는 자로 예수님의 다 이루심을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예수의 증인으로 일방적이고 끝없는 사랑만 자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행함에 보상해 주기 위해 오시는 예수로 알고 기다리는 것은 예언을 멸시하는 것이 된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는 것은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알아볼 안목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좋고 나쁨을 자기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인간은 위로부터 오는 좋은 것을 알아볼 안목이 없다. 그래서 항상 자신에게 좋은 것을 하나님께 요구한다. 예수의 재림도 자기 믿음과 행함에 좋은 것으로 상 받는 것에 의미를 둔다.

 

 

이처럼 어떤 모양의 행함이든 자신의 것에 가치와 의미를 두는 모든 것은 악으로 규정된다. 세상 기준에서의 악을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행함을 죄로 여기고 우리를 죄와 상관없게 하신 십자가의 의를 믿으라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님이 하신 일이 항상 기쁨이 되고, 모든 것이 주의 권능으로 이루셨음을 알기에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되고, 어떤 일에서도 주 안에 있음을 알기에 모든 일에서 주로 인해 감사하면서 다시 오실 주를 기다리는 성령의 사람으로 산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 요 2:17 신윤식 2024.06.08 364
23 마 8:32 신윤식 2024.06.15 202
22 갈 3:23 신윤식 2024.06.22 195
21 마 21:19 신윤식 2024.06.29 212
20 요 1:47 신윤식 2024.07.06 232
19 엡 2:13 신윤식 2024.07.13 255
18 눅 18:27 신윤식 2024.07.20 233
17 행 4:32 신윤식 2024.07.27 224
16 롬 14:10 신윤식 2024.08.03 239
15 고후 5:10 신윤식 2024.08.10 332
14 계 2:4 신윤식 2024.09.14 278
13 딤전 5:8 신윤식 2024.09.21 310
12 딤전 5:12 신윤식 2024.10.05 192
11 약 4:17 신윤식 2024.10.12 164
10 레 19:23 신윤식 2024.10.19 136
9 단 5:5 신윤식 2024.10.26 137
» 살전 5:19-22 신윤식 2024.11.02 145
7 신 23:21 신윤식 2024.11.16 131
6 출 4:24 신윤식 2024.11.23 235
5 막 11:10 신윤식 2024.11.30 12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