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4.12 06:15

(56강) 온전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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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4:13-16http://onlycross.net/videos/eph/eph-041316.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설교>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일은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것이며 지체의 관계로 모이는 교회는 이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대 교회의 관심은 늘 교인 수에 집중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교회를 세우신 그 뜻과 의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교회 부흥이라는 자신의 뜻과 관심에 묻힘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일에서는 멀리 떠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기독교인의 생각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교회로 생각하고, 주일에 예배드리고 교회가 진행하는 행사에 참석하면서 성도라고 이름하는 인간의 친분적 관계 속에 만족을 누리며 ‘우리 교회가 좋아’라며 출입합니다.

 

 

목사의 설교에 대해서도 여느 교회처럼 헌금강조 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 것을 가르치며 인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우리 교회 목사님은 참 좋아’라며 신뢰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위험한 함정입니다. 예수님께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관심을 두는 것이고 내 마음에 맞는 교회이기 때문에 바른 교회라는 자기 판단에 붙들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13절을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교리에 대해 통일성이 있을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는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과 교리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지식과 교리를 주장한다면 그 교회는 큰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과 교리가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가에 마음을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자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이 있다면 그는 무엇을 추구하게 될까요? 당연히 그리스도입니다. 교리적인 문제 역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어떤 이단적 말에 흔들리지 않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나아가게 합니다. 지식과 교리에만 머물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전 2:1.2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 외에 다른 지식은 배울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 속에서 세상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을 십자가의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을 새롭게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 3:7-9절에서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 되지 못하면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드러내게 됩니다. 물론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관계로 모일 때 어려운 점이 이것입니다. 서로가 자기 생각을 드러냄으로 충돌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자신의 앎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양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여러분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 함께 하는 것도 서로의 옳음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 자신이 누군가에게 지지 않으려는 고집으로 살아왔을 뿐임을 발견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로 인해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것이 나의 자존심과 고집에 의한 것이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온전이란 단어는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만 실현가능합니다.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인간의 그 어떤 노력과 도덕, 윤리로도 실현될 수 없는 것이 온전입니다. 물론 행실을 기준하면 온전에 해당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행실을 보지 않습니다. 속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인간은 항상 죄인으로 규정되는 것이고 다만 그리스도의 의로우심 안에서 죄가 용서된 의로운 자로 여김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온전한 사람은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보혈의 은혜를 믿음의 토대로 삼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을 온전한 교회로 바꾸어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이 온전한 교회일까요? 이런 물음에 대개의 사람들은 교회가 어떤 일을 행하는가에 초점을 둡니다. 사회적인 일에 관심을 두고 행하며 도덕과 윤리적인 면에서 본을 보여주는 것이 온전한 교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교회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물론 이것을 부인하는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고 항변할 것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적 활동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에 붙들려 있는 것이 저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정신은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내려놓는 자기 부인과 희생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배우기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여서 얻게 되는 유익을 알지 못하면 교회는 예배를 드리면 되는 곳으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성도의 모임이나 교제도 필요 없이 내 마음에 드는 설교 한편 듣는 것으로 교회에 오는 목적을 이루었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본질적인 의미와 유익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적인 설교를 들으면 성경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있을 것이고 복음에 대해 옳은 지식이 쌓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알아야 하는 것은 복음적인 설교를 들으며 쌓게 된 옳다고 생각되는 그 지식까지 깨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식이 깨어지지 않으면 결국 옳은 지식이 있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 옳음으로 서로 충돌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로 모이게 하시고 성도의 교제가 있게 하시며 내 속에 감추어져 있는 악한 본성이 드러나는 길로 이끌어 가시기도 합니다. 소위 복음을 아는 지식이 있다고 자부하는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보게 하십니다. 그럴 때 성령에 붙들린 신자는 자신의 앎을 부인하게 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불순종의 자녀, 진노의 자식이라는 자신의 실상을 그대로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과 믿는 일에 하나 되게 하시고 온전한 사람으로 이뤄 가십니다.

 

 

교회에 대한 환상을 버리십시오. 교회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욕망일 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워가고 계십니다. 우리의 관심을 예수 그리스도께 두게 하시면서 온전한 사람으로 이뤄지는 길로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관심을 두고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믿는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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