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4.19 08:15

(57강) 어린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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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4:13-16http://onlycross.net/videos/eph/eph-041316(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설교>

교회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이유와 목적은 또 무엇일까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로 모이면서도 정작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소홀히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어쩌면 교회에 대한 생각이 지극히 표피적이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교회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모여서 예배하고 여러 신앙적인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교회를 신앙적인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신앙적인 일을 많이 할수록 모범적이고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의 제도나 분위기, 그리고 그 교회가 어떤 일을 하는가로 점수를 매기고 높은 점수를 받으면 건강한 교회라고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상실된 채 다만 인간적 시각으로 교회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11절에서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라고 말하면서, 여러 직분자들을 세우신 목적을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12절).

 

 

다시 말해서 바울은 교회나 교회의 직분자들을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용도로 바라보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봉사의 일’을 언급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봉사의 일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기존 교회가 이해하는 것과 그 성격을 달리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자가 차별이 없음을 아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관계에는 못난 사람과 잘난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주의 말씀에 실패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런 우리를 주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관계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은 인간의 열심과 의로움과 공로를 근거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를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누구에게든 ‘나의 나 됨은 그리스도의 은혜’임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도록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를 묻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았는가를 물으실 뿐입니다. 신자가 이러한 믿음에 있다면 요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만 받고자 하기 때문에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지게 되고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리며 요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어린아이로 말합니다.

 

 

신자는 무엇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분명히 알 수 있을까요? 거의 모든 기독교인이 추구한다고 할 수 있는 복입니까? 아니면 현대 의학이 포기한 병을 고침 받는 신비한 체험입니까?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그 같은 체험에서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사람의 속임수와 유혹에 빠지고 헛된 교훈에 밀려 요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분명히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은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라는 것은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주의 뜻에 이끌려 갈 뿐이기 때문에 주어진 모든 것을 주의 뜻으로 여기고 받아들이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은 말의 수준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주되심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을 때 그는 흔들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는 신자로 그리스도를 향해 자라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그 속에 분명한 믿음의 내용, 즉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의 일하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참된 앎이 있습니다.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기적과 신비한 체험으로 속이고 유혹해도 흔들리지도 요동하지도 않습니다. 헛된 교훈에도 속지 않습니다. 오직 ‘나의 나 됨은 주의 은혜’라는 고백과 함께 신실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에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갈 뿐입니다. 병이 들면 병든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실패하면 실패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병이 치료되고 실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형편에서든 하나님이 있게 하신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을 의지하며 평강이 있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있는 것이 천사의 말을 하고 모든 것을 팔아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것보다 더 큽니다.

 

 

현대 교인들은 믿음을 달고 맛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고 만족을 누리게 해주는 것을 믿음으로 알기에 아픔과 실패는 믿음의 세계가 아닌 것으로 밀쳐 버립니다. 이처럼 현재의 즐거움을 좇는 것이 어린아이인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어린아이인지 서로를 살피려고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어린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어린아이를 인도하고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삶의 현실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항상 흔들리고 요동하는데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신비의 힘에 의해 무력한 자신을 붙잡고 진리로 이끌어 가시는 주의 은혜가 마음에 담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마음에 은혜가 있게 하시고 그 은혜의 힘으로 주를 의지하는 길로 가게 하시는 분이 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때문에 교회를 선교와 구제에 힘쓰고 사회 사업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는 바람에 날리는 풍선과 같습니다. 믿음은 풍선이 바람이 불어도 날리지 않고 버티는 힘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믿음을 세상의 유혹과 죄와 더불어 싸워 이기는 힘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믿음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고 이런 오해로 인해서 누구의 믿음이 더 센지 경쟁하게 되는 것입니다.

 

 

풍선이 바람에 날린다고 해도 풍선의 끈을 주인이 붙잡고 있다면 풍선은 주인에게서 멀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믿음은 자신이 바람에 날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주가 붙잡고 있기에 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멀어질 수 없음을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붙잡고 있는 주를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자랑의 대상은 내가 아니라 나를 붙들고 있는 주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린아이가 되지 말자’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린아이인 우리를 부르셔서 어린아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어떤 일을 하시는가를 증거하게 하시는 것이 교회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에 실력의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모두 함께 세워져가고 있을 뿐입니다.

 

 

신자에게는 그리스도가 충만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나 같은 자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게 된 것으로 부족함이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충만이 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자신을 채우는 일에 급급하게 될 뿐입니다. 그리고 믿음도 자신을 채워주는 도구로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인 우리를 붙드시고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아가도록 가르치고 일하십니다. 이것을 증거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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