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8:16-18>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081618.mp4
<본문>
16.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의 기초를 쌓던 날부터 준공하기까지 모든 것을 완비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전 공사가 결점 없이 끝나니라
17.그 때에 솔로몬이 에돔 땅의 바닷가 에시온게벨과 엘롯에 이르렀더니
18.후람이 그의 신복들에게 부탁하여 배와 바닷길을 아는 종들을 보내매 그들이 솔로몬의 종들과 함께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사백오십 달란트를 얻어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왔더라
<설교 요약>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을 것을 아셨으면서도 에덴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다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생각하면 선악과를 두신 것은 인간이 죄를 범하게 하여 죽은 자가 되게 하는 목적으로 하신 일이 되기 때문에 사실 인간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하나님은 인간을 단순한 로봇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로 창조하심으로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선택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하셨고 선악과는 이 자유를 시험하는 기회였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가 된 인간의 아이디어라는 점에서 그 또한 죄를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선악 나무를 두시고 인간을 죽은 자가 되게 하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죽은 자가 된 죄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하는 일은 매일매일 죄를 흘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 된 인간의 매일 일과입니다. 생계를 위해 일하든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교회 일을 하든 인간은 매일 죄를 흘리며 삽니다.
이러한 현실에서의 인간의 문제는 자신이 흘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선한 행위라는 허구와 가상에 속하여 진실한 죄의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중대한 오류입니다. 자신의 선한 행위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인간이 되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가상 현실을 좇는 것임을 모릅니다.
이러한 인간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일하심을 바르게 해석하여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모든 생각이 자신이 좇는 믿음의 가상 현실을 미화하고 정당한 것으로 조작합니다. 자기 인생을 믿음으로 사느라고 수고하고 고생한 것으로 후하게 평가합니다. 이것이 ‘자기 위주’의 인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은 말씀 위주의 세계로 들어감을 뜻합니다. 그러면 말씀 위주가 되면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요? 자기 위주로 살아왔던 믿음의 가상 현실이 허구로 드러나면서 저주받은 죽은 자라는 실체가 발각됩니다. 그렇게 자기 실체가 발각된 자리에서 비로소 말씀이 해석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 말씀의 참된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성전을 건축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그 성전은 하나님에 의해 무너질 성전이었습니다. 참된 성전이 아니라 가상의 성전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인간으로 손으로 가상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행하는 모든 것이 구원에 효력이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을 훼방하는 것임을 드러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모세의 명령을 따라 매일의 일과대로 안식일과 초하루와 일 년의 세 절기에 빠짐없이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상번제도 이스라엘의 일과에 하나님의 명령으로 자리하여 계속됩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행하는 매일의 일과가 이스라엘의 구원에 아무 효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모세의 명령으로 주어진 제사의 목적은 인간을 상한 심령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제사는 제물을 바치는 번제가 아니라 자신을 저주받은 자로 아는 상한 심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성전에 나와 모세의 명령을 따라 하는 제사가 자신들을 유익하게 할 것으로 알았습니다. 이처럼 성전이 있고 제사 규례가 있으므로 해서 인간 내면에 감추어진 죄가 노출된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후에 이스라엘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한 건축에 힘씁니다. 그리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국고 일에든지 무슨 일에든지 왕이 명령한 것을 전혀 어기지 않았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일에 힘을 썼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분열되었고 분열된 이스라엘과 유다도 무너졌으며 성전도 범죄로 인하여 무너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가 인간의 행함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신 하나님의 일입니다. 인간이 어떤 행함과 정성을 보인다 해도 은총과 은혜는 언약궤가 있는 성전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건축한 가상의 성전 뒤에 참된 구원을 이루는 성전이 있습니다. 이 성전은 가상의 성전이 부서지므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가상의 성전을 성전으로 알고 몰두했기에 참된 성전을 알지 못한 것이고 이것이 예수님이 버림받으신 이유입니다. 눈에 보이는 가짜 성전을 찾는 자신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로 연결된다는 생각으로 예수를 필요 없는 존재로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버림받으신 예수님 앞에서 예수를 버린 죄인 되는 것이 성전이 되는 성도입니다.
16절에 보면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의 기초를 쌓던 날부터 준공하기까지 모든 것을 완비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전 공사가 결점 없이 끝나니라”라고 말합니다.
성전이라는 건축물 자체가 아무 결점 없이 완벽하게 끝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전을 건축하게 하여 성전에 나오는 인간의 의도와 행동이 모두 악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일에 결점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전은 인간을 죄인으로 나오게 하여 용서의 은총과 자비하심이 언약궤, 즉 언약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전으로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언약을 이루심으로 성전 안에서, 예수 안에서 자랑할 우리 것은 먼지만큼도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피 흘리신 예수님의 희생만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는 그 피의 희생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것이 신약이 증거하는 참된 성전의 의미입니다.
다윗으로 시작한 솔로몬의 성전은 이렇게 예수님으로 연결되고 이것을 언약으로 말합니다. 이것이 결점 없는 완전한 성전이기에 자신의 선함을 하나님의 은혜와 연결하는 것은 결점 없는 성전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가상의 성전만 바라보는 인간의 악함입니다.